“마음 시커먼데 걸작 나오나 수신하면서 생명을 새겨야…”
김수환 추기경, 소설가 박경리,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국내 저명인사들의 두상을 제작한 초상 조각가이자 호미 낫 연탄집게 등을 소재로 한 새 조각으로도 잘 알려진 이영학. 2004년 열린 그의 개인전에서 돌확 작품을 본 후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이전 작품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담백한 돌확을 보는 순간 마치 몇 마디의 짧은 시구(詩句)를 읽고 작은 깨우침을 얻은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에게 이런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조각가는 어떤 사람일까. 그 후 3년여 만에 수유리에 있는 그의 작업실로 향했다.30년 가까이 작업실 겸 집으로 쓰고 있는 그의 집은 작품만큼이나 소박한 곳이다. 담벼락 주변에는 돌이 겹겹이 쌓여 있고 대문조차 그 흔한 자동이 아닌 수동식에다 실내에는 값비싼 가구 하나 놓여 있지 않다. 집 안에 들어서면 우리가 익히 알 만한 사람들의 초상 조각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조각 중에 제일 멋있는 게 자신의 두상 조각이지만 제일 만들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얼굴에는 수십 가지 모양이 있다. 나이 듦에 따라 변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침 점심 저녁이 다르고 이발만 해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석고 마스크를 본떠 만들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내 얼굴 같지 않고 어색해 보이는 것은 그 안에 감정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작품을 하면서 상대방과 여러 번 만나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등을 주고받다 보면 내면을 얼굴 조각에 표현할 수 있게 된다.”불가에서 말하는 ‘찰나’에도 변하게 마련인 얼굴에는 완성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얼굴은 평소의 생각과 마음이 모이고 오랜 시간 이어져 형성돼 가는 것이다. 상대방의 모습을 보고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 공무원이구나, 예술가로구나 하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겠는가. 눈에 보이는 얼굴과 눈에 보이지 않는 아우라(aura)가 어우러져 그가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영학의 작품이 공원이나 학교에 놓여 있는 동상과 다른 것도 개개인의 아우라를 조각에 담아내기 때문이다.이영학의 두상 조각은 표면을 매끄럽게 처리한 여타의 작품과 다르다. 이탈리아의 조각가 마리노 마리니(Marino Marini)처럼 반죽을 손가락으로 쳐올려 표면을 거칠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1980년대만 해도 초상 조각에 대해 지금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죽지도 않았는데 왜 만드느냐”에서부터 “만들다 만 것처럼 보인다. 이게 완성품이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영학은 대중의 반응을 무시하지 않고 그들을 이해시키면서 새로운 것을 제안해간 ‘부드러운 변화가’다.“내가 유학했던 이탈리아에서는 재력가나 권력가들이 자신의 초상 조각을 집 안 곳곳에 놓아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유명인들의 초상 조각을 했던 마리노 마리니의 작품을 보아도 입을 벌린 것, 고개를 뒤로 젖힌 것 등 모습이 다양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그들과 문화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은 사람들이 봐줘야 예술품의 가치를 논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표면을 부드럽게 하던 것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한 것이 내 역할이었다면 또 다른 것을 시도해 변화시키는 것은 다음 세대의 몫이다. 예술은 혁명이 아닌 이상 조금씩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라가야 한다.”독기를 품지 않은 이런 여유로운 마음 때문일까. 한양대 윤재근 교수의 말처럼 그의 손길을 거친 작품들은 신경과민증에 걸려 있는 현대인들에게 넉넉하게, 그리고 너그럽게 소리 없이 한 번 웃어볼 수 없느냐고 묻는 듯하다. 예컨대 그의 새 조각품은 투박한 부엌칼이 새의 몸집이 되고 칼 목은 꽁지가 되고 칼끝에 가위가 붙어 새의 부리가 되어 완성된다. 낫은 목이 긴 학이, 호미의 날은 오리의 배가 되는 식이다. 말만 들으면 으스스하지만 완성품의 모습은 결코 그렇지 않다.그가 이런 아이디어를 얻게 된 것은 대학교 3학년 때. 철조 수업에 동판이나 철판을 사오라고 했는데 돈이 없어서 고물상에서 문고리 연탄집게 호미 등을 사가면서 시작된 것이다. 이후 ‘새 조각가 이영학’이 한 단어처럼 붙어 다녔다. 그러다 2004년 돌확 작품을 새롭게 선보였다. 돌확이란 사찰이나 한옥 정원에서 볼 수 있는 가운데가 움푹 파인 돌을 말한다. 그는 전국을 다니며 모은 댓돌, 집터 둘레석, 주춧돌 위에 사각형, 기역자, 혹은 달팽이관처럼 돌돌 말린 사각 모양을 조각해 그 안에 이끼나 생이가래로 채워 넣어 돌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호미를 가지고 조금씩 땅을 파다보면 언젠가 물이 나온다. 물은 나오게 되어 있다. 작가가 작품을 할 때에는 이런 마음가짐에서부터 시작한다. 보는 사람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돌확 작품도 단 며칠 만에 만든 것이 아니다. 작가는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보면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게 된다. 그 생각을 하면서 한두 달을 보내기도 한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원에 물을 뿌리면서 해소한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려서부터 자연과 가까이 지내서인지 모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자연에서 구하는 편이다. 어린 시절 뒷산에 졸졸졸 흐르던 맑은 개천, 작은 풀들, 벌레들…. 단순하고 청명한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원초적인, 생명에 관한 얘기를 수다스럽지 않게 은근슬쩍 들려주고 싶다.”속마음은 시커먼데 맑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여기는 그는 평소 외출을 삼가고 인터뷰 요청에도 잘 응하지 않는 편이다. 일상에서 수신(修身)하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수도승처럼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4월이면 겹꽃이 만발하는 살구나무 한 그루와 작품에 쓸 이끼가 심어져 있는 정원, 이탈리아 유학시절부터 꿈꿔왔던 (그가 만든) 벽난로, 전국 곳곳에서 공수해 오는 최고의 식재료로 만든 음식은 그가 즐기는 삶의 여유와 사치다. 그가 식재료를 구입하는 곳의 리스트만 입수한다면 최고의 음식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많다. 그런 만큼 그의 집에서 대접받는 음식은 하나같이 입 안에 착착 감겨든다. 흔히 먹는 치즈, 곶감, 생선구이, 고기 구이지만 그의 집을 나서면서부터 그 맛이 그리워질 정도다. ‘무엇이든 내 주머니에 넣지 말고 나누라’는 계시라도 받은 것일까. 그는 귀한 것에서부터 작고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에 아낌이 없다. 그와 아내 단 두 식구 살림인 데도 김장을 300포기나 담그는 이유도 많은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기 위한 것이란다. 그의 작품에서 찐득찐득한 욕심이 묻어나지 않고 마음까지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힘이 나오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일 게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