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우리는 사회 또는 국가 전체를 인간의 몸에 비유하곤 했다. 우에노 이타루가 쓴 ‘세계사를 지배한 경제학자 이야기’는 고대 오리엔트의 해상 무역 국가인 페니키아의 우화 중 ‘위장에 대항해서 손발이 파업하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위장에 대항한 손발의 파업위장은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고 음식물을 받아들이기만 한다. 반면 손과 발, 입, 귀, 눈, 코 등 신체의 각 기관은 음식물을 위장에 제공하기 위해 많은 노동을 해야 한다. 각 기관은 이에 불만을 품고 드디어는 파업을 결행한다. 즉 서로 합의하여 식당에 가지 않고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며칠 지나지 않아 손발을 비롯한 신체의 각 기관이 쇠약해졌고 마침내는 파업을 철회하게 됐다. 이때 위장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음식물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골고루 영양분이 분배되는 거야.” 이 우화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서로 도와주고 의존하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어서 각자의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전체의 몸, 즉 사회가 잘 돌아간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쓸모’란 상대적이다이렇게 자신의 입장에서 언뜻 보면 쓸모없어 보이는 것도 상관관계를 알고 보면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장자는 ‘잡편, 외물’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설파한다.혜자(惠子)가 장자에게 말했다.당신의 말은 쓸모가 없소.이 말에 장자가 대답했다.쓸모가 없음을 알고 나서 비로소 쓸모 있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이오. 저 땅은 턱없이 넓고 크지만 사람이 이용하여 걸을 때 소용되는 곳이란 발이 닿는 땅뿐이오. 그렇다고 발이 닿는 부분만 남겨두고 그 둘레를 파 내려가 황천에까지 이른다면 사람들에게 그래도 쓸모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쓸모없는 것이 실은 쓸모 있는 것임이 분명하지 않소!?이 얼마나 통렬한 역설인가! 그러나 사람들은 각자 속에 숨어 있는 장점, 즉 쓸모를 잘 발견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단점만을 자책하며 남을 부러워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래서 장자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최대 행복의 원리’를 부르짖는 벤담의 유해런던대학의 회의실에는 지금도 유리 케이스 속에 제러미 벤담(1748~1832)이 앉아 있다. 공리주의, 즉 ‘최대 행복의 원리’를 주장해 너무나도 유명한 벤담은 부유한 변호사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덕분에 평생을 사색과 집필에만 몰두한 이상주의자로, 뉴턴의 ‘만유인력의 원리’가 물리학의 기초가 되듯이 도덕 이론의 중심에 이 ‘최대 행복의 원리’가 기초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덕과 입법의 원리서설(1789)’이란 저서에서 개인의 쾌락과 고통은 어떤 식으로든 객관적인 방법에 의해 측정 가능하고 그것을 모두 더해 ‘사회의 쾌락 총계’가 가장 높도록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벤담의 이론은 반론의 여지가 많지만, 그가 런던대학 회의실 유리 케이스 속에 앉아 있는 사연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벤담은 부유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전 재산을 런던대학에 기증했는데 좀 특이한 조건을 달았다. 자신의 ‘유해’를 대학의 모든 회의에 출석시킨다는 조건을 단 것이다. 이런 조건이 받아들여져 그의 유골은 박제처럼 속이 채워진 채 옷이 입혀지고 밀랍 머리를 얹은 상태로 대학의 회의실 유리 케이스 속에 앉아 있게 됐다. 그리고 그의 조건에 따라 지금도 평의회에서 그의 출석을 체크한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제러미 벤담, 출석. 그러나 투표는 하지 않음.”유산을 기부하면서 이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남기고 간 부자가 또 있을까. 벤담은 죽은 지 170년이 넘었지만 런던대학의 중요 회의 때마다 참석자들은 유리 케이스 속에서 ‘공리주의’를 되뇌면서 보고 있는 벤담의 시선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자신의 불행을 부로 승화한 오프라 윈프리최근 포브스지는 10억 달러 이상의 부자 중에서 미국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여성 부자로 오프라 윈프리(15억 달러, 664위)를 들었다.‘오프라 윈프리, 위대한 인생’을 쓴 에바 일루즈는 이렇게 말한다.“오프라 윈프리는 우리에게 자아를 합리적으로 되돌아보게 함으로써 혼돈을 이겨내고, 자아를 잘 관리해 변화시키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심리적 고통이 국민 대다수를 짓누르는 일종의 질환이 되고, 행복은 성공적인 자기 관리에 있다는 문화가 팽배해진 이 시점에서 ‘오프라 윈프리 쇼’는 고통을 이해하고 있는 대중문화의 새로운 모습이다.”여기서 우리는 오프라 윈프리의 문화적 행위에 담긴 핵심적 문화 코드가 ‘고통’임을 알 수 있다. 1954년 미국 미시시피 주에서 태어난 오프라 윈프리는 아프리카계 흑인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가난, 가족 파탄, 성폭력, 비만 등 불행한 미국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고통을 모두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칫 잘못 생각하면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절망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러한 자신의 고통과 불행을 ‘진정성’을 가지고 텔레비전에서 당당히 고백함으로써 자유를 얻었고,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었고 마침내 부를 일궈 그 돈으로 사회활동을 함으로써 존경을 받았다. 쇼의 서두 코멘트의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안녕하세요, 여러분. 오프라 윈프리입니다. 오늘은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만연돼 있어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여러분의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다뤄보려 합니다. 그 문제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못할 겁니다. 아주 놀라운 문제입니다. 그 문제는 당신 아이들에게도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겪은 일부터 말할까요. 그래요, 나는 친척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때 그 남자는 겨우 열네 살이었습니다.”이와 같이 그녀는 자신의 치부를 과감히 밝힘으로써, 또 다이어트의 처절한 노력을 숨김없이 밝힘으로써 수치의 베일을 벗겨주었다.사회적 고통 치유자, 사회적 행복 창조자오프라 윈프리가 토크쇼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현상은 ‘사회적 고통의 치유’이며 ‘사회적 행복의 창조’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벤담이 추구한 최대 행복의 원리에도 부합한다. 부자의 기부 행위는 크게 자선(charity)과 박애(philanthropy)로 구별될 수가 있다고 한다. 자선은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인 반면에, 박애는 부유한 제도적 기관에 주어지는 것이 많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벤담이 유산을 런던대학에 기부한 것이나, 카네기나 록펠러가 사회에 기부한 것이나 존 하버드가 하버드대학에 기부한 것은 모두 박애에 해당하는 반면, 오프라 윈프리는 오히려 자선 쪽에 더 가깝다.오프라 윈프리의 자선재단 ‘에인절 네트워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4000만 달러 이상의 거액을 들여 ‘오프라 윈프리 리더십 여학교’를 세운데 이어 최근에는 공립 초등학교 건물을 건립했다. 최근 이 학교가 지나치게 학생을 규제해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오프라 윈프리는 “모든 교칙은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남아공의 가난한 엘리트 학생들의 삶의 궤도를 바꾸겠다”는 설립 정신을 실천, 사회적 행복 창조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오프라 윈프리가 미국의 여자 빌리어니어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이유는 그가 베푸는 이러한 정신적 물질적 ‘공익성’ 때문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