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는 단순한 소통의 기능만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편지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고 읽고 또 읽었다.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방법은 많지만 자신의 마음을 실수 없이 전하는 것 중 편지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연인들은 달 밝은 밤이면 몸살을 앓듯 편지를 써내려갔다. 편지는 연인들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주는 고리로서 굉장히 중요한 연락수단이었다. 얀 베르메르(1633~75)의 ‘연애편지’에서 편지는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연락 수단이다. 이 그림은 안주인에게 편지를 건네는 하녀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서 풍속화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풍속화는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혼외정사를 주제로 삼았는데 이 작품도 연인들의 내밀한 사랑을 담고 있다. 묶여 있는 커튼 사이로 안주인이 벽난로 옆에 앉아 편지를 건네는 하녀를 바라보고 있다. 두 사람은 시선을 주고받으면서 주인과 하녀라는 신분을 뛰어넘어 연애를 공모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왼쪽 벽에는 지도가 흐릿하게 보이고 안주인의 무릎에 악기 류트가 올려져 있다.이 작품은 언뜻 보면 평범한 일상을 그린 것 같지만 숨겨진 의미가 곳곳에 있다. 네덜란드 풍속화에서 사랑의 열기를 의미하는 소재로 쓰이는 벽난로가 이 작품에도 예외 없이 등장하고 있다. 또 보통 그림속의 악기 연주는 행복과 화목을 상징하고 있지만 혼외정사를 다룬 그림 속에서 악기는 향락과 음란함과 경박함을 상징한다. 또한 이 작품 속에서 류트를 무릎에 놓고 있는 안주인은 현재 음악을 연주하면서 사랑의 몽상에 잠겨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류트는 연인을 상징하는 악기로서 그림뿐만 아니라 문학작품 속에서도 등장한다.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두 점의 그림 중 구름 낀 하늘 아래 폭풍우 치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위험한 사랑을 상징하는 17세기의 통속적인 표현법 중 하나다. 또 커튼에 가려 반쯤 보이는 그림 속의 남자는 길을 걷고 있다. 남자가 걷는 길은 사랑의 여정을 암시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바닥에 벗어놓은 실내화는 여성의 음부를 상징하고 문에 비스듬히 놓여 있는 빗자루는 부정한 연애 사건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또 바닥에 있는 빨래와 쿠션은 안주인이 사랑에 빠져 가정생활을 소홀히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얀 베르메르는 편지를 주제로 가장 많은 작품은 남겼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한 명 아니면 두 명의 인물들을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화면 속의 인물들이 항상 창문 옆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연애편지는 혼자만 은밀하게 보기도 하지만 소녀들은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답장 받은 것을 자랑하고 싶지만 편지의 내용을 해석하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녀들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 로코코 시대의 화가 프랑수아 부셰(1703~70)의 ‘사랑의 편지’다. 이 그림은 전원에서 소녀들이 들뜬 표정으로 편지를 읽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이 작품에서 편지를 들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핑크빛 드레스의 소녀가 사랑에 빠진 소녀다. 소녀는 편지를 받고 사랑의 기대감으로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다. 편지를 들고 있는 소녀의 손에는 비둘기가 있는데 비둘기는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전령사를 상징하고 있다. 회색빛 드레스를 입은 소녀는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다. 화면 속의 양들은 평화를 상징하고 있고 양치기 개들은 소녀의 사랑을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지켜주는 존재다.사랑에 빠져 있는 연인들의 연애편지를 몰래 읽는 것처럼 즐거운 일도 없다. 사랑놀이는 유치하고 재미있어 기를 쓰고 엿보는 수고로움을 즐거이 자청하게 된다. 이 즐거운 수고를 그린 작품이 카를 슈피츠베크(1808~85)의 ‘빼돌린 연애편지’다. 슈피츠베크는 연애편지를 훔치는 장면을 포착해 경쾌하게 표현했다.화면 전체에 걸쳐 마을 청년들에게 연애편지를 받아 정신없이 읽고 있는 아래층 여자와 창문을 열고 몰래 아랫집 여자에게 온 편지 하나를 빼돌려 실로 건져 올리고 있는 윗집의 여자를 묘사했다. 편지를 읽고 있는 아래층 여자 옆에는 어머니가 지켜보고 있다.담쟁이덩굴, 지붕에 한가롭게 앉아 있는 새 등 작품의 배경은 바쁘게 움직이는 여인들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 여인은 옷차림과 표정이 제각각이다. 편지를 훔치는 윗집 여인의 표정은 익살스럽고 경쾌하지만 편지를 읽고 있는 아래층 여자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를 감독하고 있는 어머니는 단정한 옷차림을 한 채 경직된 표정을 짓고 있어 각각의 표정이 재미있는 대비를 이룬다.슈피츠베크는 19세기 독일의 화가다. 이 작품에서 그는 섬세한 필치로 장면을 묘사했는데 그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한 편의 영화나 소설의 일부를 보는 듯한 착각을 준다.박희숙 화가동덕여대 졸업. 성신여대 조형산업대학원 미술 석사.저서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