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C 황금어장서 대박 낚았지요”

태초에 ‘디씨(디시인사이드)’가 있었느니라. 웹이 혼돈하고 공허하여 흑암이 깊음 위에 있으니 ‘디씨’는 스스로 열려 유저(사용자)를 위한 많은 자리를 만들었음이라. 이르시대, 캐논과 카시오를 있으라 하시고 둘째 날에 삼성과 후지를 있으라 하셨으니 디씨 동산에는 올림푸스와 캐논이 사이좋게 노닐고 삼성과 후지가 다정하게 풀을 뜯으며 카시오와 엡손이 뛰어 놀음이라. 이 모든 것을 일거에 이루시니 보기에 좋으시더라.”(매거진리 1장) 개죽이 개벽이 개똥녀는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가 배출해낸 ‘스타’들이다. 귀여운 강아지와 실사 사진을 합성한 개죽이 개벽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컴퓨터 바탕화면을 바꿔놓았다. 또 몰지각한 여성의 지하철 행동을 찍어 올린 개똥녀는 ‘생각 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됐다.‘디씨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대선을 앞두고 선관위는 디시인사이드 등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도는 특정 정치인의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 동영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단순한 애들 장난거리라고 생각했던 UCC가 수천 명의 표심을 좌지우지하는 홍보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디시인사이드의 정치적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용산전자상가나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매장에 가면 다음과 같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저씨 이 디지털카메라 얼마예요?” “네 그건 30만 원인데요. 디시인사이드에 가보셔도 그 정도 수준일 겁니다.” 특정 제품의 가격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디시인사이드의 영향력은 용산전자상가와 맞먹는다.디시인사이드 설립자인 김유식 대표는 회원들에게 ‘유식대장’으로 통한다. 그는 회원들 사이에서 사이버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의 손가락 하나에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기 때문이다.그에게 컴퓨터는 평생을 함께 해온 동지나 다름없다. 우연히 아버지 회사에 갔다가 처음 본 컴퓨터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정규 수업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그였지만 컴퓨터만 생각하면 몇 날 며칠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그는 인터뷰 도중 컴퓨터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수도 없이 쏟아냈다. 1996년 9월 그는 강릉 북한 잠수정 침투 사건이 일어나자 PC통신 하이텔 게시판에 ‘방송 3사가 똑같은 화면만 내보내고 있다. 뭔가 수상하다’는 글을 올렸다. 글이 올라가자마자 그는 공안당국의 조사 리스트에 올랐다. 그 후 시작된 두 달 간의 미행. 공안당국이 보기에 그는 의심 가는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직업도 없는 사람이 매일 오후 7시면 술집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새벽 2시에 퇴근하는 게 다반사였다. 더군다나 그는 일본 유학파였다. 아무래도 조총련의 지시를 받는 것 같았다. 그는 단순히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무슨 CD같은 것을 주고받았다. 결국 경찰은 그를 그해 11월 고정간첩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그러나 곧 그는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CD는 일본 음란물이었으며 그냥 매일 저녁 친구들과 술자리를 한 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1990년대 초 그는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를 조립해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그에겐 사람들이 가장 많이는 곳에 어떻게 회사 이름을 알리느냐가 중요한 과제였다. 어떤 문구를 사용할까 고민하다 생각해낸 것이 바로 ‘가격 파괴’.용산에서 컴퓨터 사업으로 한창 돈을 벌던 그는 갑자기 일본으로 건너갔다. 딱히 일본에서 무엇을 공부하겠다는 것은 아니었고 정보기술(IT) 분야가 우리보다 한참 앞서 있던 일본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는 사업수완을 발휘했다. 모 대학 인터넷 접속 프로그램을 이용해 국내 네티즌에게 컴퓨터 오디오 등 전자제품과 CD, LD 등을 판매한 이 사업으로 그는 매달 1억 원 이상의 순이익을 거뒀다. 다만 이 사업 아이템은 관련 부처의 허가를 얻지 않았을 뿐더러 소득세 등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그는 일본에서 돌아오자마자 구속됐고 25일 동안 구치소 생활을 한 뒤 집행유예로 풀려났다.디시인사이드는 파란닷컴을 운영하는 KTH의 전신인 하이텔에 콘텐츠를 제공하던 노트북 커뮤니티에서 시작됐다. 노트북을 구입해 직접 써보고 사용 후기를 PC통신에 올려놓던 것이 발전해 오늘날 국내 대표적인 커뮤니티로 발전한 것이다.“노트북을 오래전부터 써왔기에 각 제품별 성능을 비교하는데 소질이 있었습니다. 3~4년 동안 400개의 제품을 써 볼 정도였으니까요. 그냥 무심코 사용 후기를 PC통신에 올려놨는데 1999년 어느 날 하이텔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좀 더 전문적으로 써주면 원고료를 주겠다면서 말이죠. 그래서 하이텔의 지원을 받아 그해 10월 ‘노트북 인사이드’라는 커뮤니티를 개설했습니다. 그러나 노트북은 제품군이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디지털 카메라였습니다.”PC통신 노트북 커뮤니티에서 시작초창기 디시인사이드는 구매 후 사용방법이나 사용 후기 등을 서로 주고받는 정보 교환의 장소였다. 그러나 김 대표에게 디시인사이드라는 공간은 물 반, 고기 반의 연못과 같았다. 인터넷에서 그는 프로슈머(생산자와 소비자의 결합)의 개념을 생각해냈다. 그는 공동구매 방식을 도입해 저렴한 값에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생각해냈다.“원래 노트북 전문 커뮤니티로 키울 생각이었는데, 디지털 카메라 붐이 일면서 카메라 전문 커뮤니티로 바뀌었습니다. 어쨌든 그해 12월 첫 공동구매를 실시했는데 총 5000만 원의 수입을 올렸습니다. 예상보다 큰 성과였죠. 그래서 직원 2명을 채용하고 본격적으로 법인을 설립했습니다.”이듬해 디시인사이드는 모 벤처캐피털과 하이텔로부터 각각 5억 원, 7억 원의 자금을 지원받아 사세를 넓혔다. 공동구매 시장을 확대하고 카메라와 노트북에 대한 정보도 대폭 늘렸다.회원들이 직접 제작한 합성사진들이 올라오는 갤러리는 디시인사이드의 핵심 코너다. 회원들 사이 ‘갤’로 통하는 갤러리는 개죽이, 개똥녀와 같은 스타(?)들을 만들어 냈다.“디시인사이드는 PC통신 마니아들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PC통신에서 웹으로 변화하기 전까지 PC통신은 하드웨어 전문가와 글쟁이 비율이 7 대 3 정도였습니다. 웹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의 발달로 글쟁이들은 대자보, 오마이뉴스, 딴지일보 등으로 간데 비해 70%를 차지하던 하드웨어 전문가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었죠. 그들을 모이게 해 엄청난 힘을 결집한 게 단기간에 성장하게 된 이유입니다.”이후 디시인사이드는 스스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포토샵 전문가들이 하나둘씩 모인 커뮤니티에서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킬 만한 화두가 던져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황우석 사건은 이미 6개월 전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 제보된 것이었고. 명품 소비에 찬물을 끼얹은 지오모나코 짝퉁 사건도 디시인사이드 이용자들이 찾아낸 쾌거였다.올 하반기 우회상장 추진디시인사이드의 회원들은 커뮤니티의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운영자이기도 하고, 생산자이면서 소비자다. 때문에 디시인사이드의 회원들은 커뮤니티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 일부에서는 디시인사이드 회원들을 가리켜 ‘디씨 폐인’이라고 칭한다.디시인사이드는 커뮤니티 활성화와 공동구매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쫓고 있다. 이벤트를 대행해주고 배너 광고를 개설해 주며 공동구매 방식으로도 수입을 올린다. 매출도 크게 성장해 지난 2000년 24억 원에서 2001년 65억 원, 지난해에는 130억 원을 기록했다.김 대표는 지난해 말 320억 원을 들여 코스닥 등록 건설업체인 IC코퍼레이션의 지분 31%를 인수했다. 올 하반기에는 IC코퍼레이션과 법인 통합을 마무리해 디시인사이드를 우회 상장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올해 각종 제휴사업을 통해 디시인사이드를 국내 최고의 UCC 업체로 키울 생각이다. 이를 위해 디시인사이드는 현재 구글과 검색 광고, 사진 인화 기술을 제공하는 제휴를 추진 중이다. 구글에서 기사를 보다가 관련 단어를 클릭하면 자연스럽게 제품 광고, 콘텐츠와 연결되는 방식이다. 또 다음과는 검색 서비스와 관련된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우회 상장을 통해 끌어들인 자금을 이용해 그는 UCC 포털을 구축, 현재 1일 평균 3500만인 페이지뷰를 1억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디시인사이드는 포털 사이트 파란과 UCC 활성화 사업에 필요한 콘텐츠, 저작권, 관련 기술, 서비스 등을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또 지난 2월에는 엔터테인먼트 업체인 라이브코드와 모바일 콘텐츠 제공 업체인 인포뱅크와 사업제휴를 체결했다. 디지털 카메라, 노트북 등 가전제품으로 한정돼 있던 콘텐츠 서비스를 여행, 자동차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며 블로그와 미니 홈페이지에 다이어리, 검색 기능이 결합된 신개념 커뮤니티 ‘행자마을(까페)’을 연내 선보일 예정이다.김 대표는 UCC를 엄청난 부를 안겨달 줄 황금어장이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언제나 수익이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UCC는 앞으로 인터넷 환경을 엄청나게 바꿀 것입니다. 우리 생활과 인터넷이 하나로 연결되는 가교를 바로 UCC가 담당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물론 수익과 연결될 부분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특정 서비스 업체의 동영상 홍보물을 제작해 수익을 나누는 것은 기본적인 것입니다.”김 대표는 올해 구체적인 사업 목표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국내 검색 엔진 순위 5위인 엠파스를 뛰어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현재 600여 개인 갤러리 수를 10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