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색칠했더니 상식이 뒤집히더라”
"작품 감상을 ‘보는 것’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바꾸어 준 작가.” “화가이기보다는 철학자, 철학자이기보다는 시인.”벨기에가 낳은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1898~1967)에 대한 평단의 평가다. 영화 매트릭스 등 대중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 그의 작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경제신문이 갤러리현대, 서울시립미술관, 벨기에 왕립미술관 등과 공동으로 기획한 ‘현실을 꿈꾸는 화가-르네 마그리트展(전)’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2007년 4월 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벨기에 레신에서 태어난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 작가군 중에서도 차별화된 작가로 꼽힌다. 동시대 작가들이 오토마티즘, 레이오그램, 데페이즈망 등의 기법으로 무의식 세계를 표현했다면 마그리트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을 역설적으로 뒤집어 내면을 표현했다. 여기에는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바탕이 됐다. 그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을 묘사했지만, 우리의 논리와 상식은 그의 작품 속에서 완전히 무너진다. 마그리트는 자신의 이런 작품 세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했다.“내 그림은 어떤 것도 숨기지 않은 이미지 그 자체다. 내 그림들은 신비를 깨우며 어떨 때는 스스로에게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질문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어떤 의미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내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장이기 때문이다.”그가 1929년에 그린 대표작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이미지의 배반(Ceci n’est pas une pipe)’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파이프가 과연 진짜 파이프인가.’, ‘파이프보다 더 적합한 말을 찾을 순 없을까.’ 마그리트는 작품 속에서 ‘왜 이것을 파이프라고 부르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그는 또 ‘나는 단순히 어떤 사물을 캔버스 위에 그려놓은 것뿐이고, 이것은 아무 기능도 없는데 왜 사람들은 이것을 파이프라고 부르는가’라고 관객들에게 질문한다. 후대 평론가들이 그의 작품을 ‘선입견에 대한 도전’이라고 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1928년 작 ‘허상의 거울’은 ‘우리가 보고 있는 풍경은 사물을 그대로 반영한 것인가. 나는 허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사물에 대한 진실의 창을 묘사한다는 이유로 이 작품은 현재 미 CBS방송의 로고로 사용되고 있다. 양복 입은 신사들을 화면 곳곳에 무중력 상태로 배치한 ‘겨울비’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의 복제인간들이 등장하는 신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현재 그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현대미술박물관, 구겐하임미술관과 런던 테이트국립갤러리 등에 소장돼 있으며 3월에는 벨기에 왕립미술관에 전용전시관이 마련된다. “나 혼자 꿈을 꾸면 그건 한낮 꿈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다. 조금만 현실을 다르게 바라보아도 현실은 신비롭게 다가올 수 있다.” 그의 미술철학은 영화 외에도 음악 광고 문학 건축 등에 많은 영향을 줬으며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청소년을 위한 교육적 효과도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이번에 한국을 찾은 마그리트 작품은 회화가 120점이고 사진과 영상자료까지 포함하면 총 270점이다. 특히 그의 대표적 후기작으로 평가받는 ‘빛의 제국(1961)’을 비롯해 공중에 나는 비둘기가 화면을 장악하는 ‘회귀(1940)’, 중절모 신사의 코앞에 파이프가 떠 있는 ‘신뢰(1964~65)’ 등이 한국 땅을 밟았다. 이번 전시는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이 개관하기 전 열리는 마지막 대규모 해외 전시회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