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이 따뜻해야 고유향미 제대로 나요
집에서 커피를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없을까. 요즘 커피 시장의 트렌드는 간편성과 신선함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 커피 시장은 인스턴트커피가 90% 이상을 점유한 것으로 볼 때 아직까지도 달콤함과 편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하루아침에 입맛이 바뀔 수는 없다. 그러나 인스턴트커피라도 제대로 알고 먹으면 원두커피 이상으로 좋은 맛을 경험할 수 있다.국내 인스턴트커피의 역사는 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스턴트커피는 원래 1901년 일본계 미국인인 사토이 가토이가 최초의 용해성 커피를 만든 것에서 비롯됐다. 2차 세계대전 때 뜨거운 물만 있으면 마실 수 있는 편리한 인스턴트커피가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전쟁을 계기로 가속화됐고 이것이 오늘날 대중적인 커피로 자리 잡게 됐다. 어찌 보면 아픈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이 인스턴트커피가 달짝지근한 맛으로 한국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인스턴트커피를 마실 때는 물이 커피의 맛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리 받아놓은 물 혹은 여러 번 끓인 물은 커피의 맛을 떨어뜨린다. 마그네슘이나 칼슘이 많은 물 또한 커피의 성분을 충분히 추출해 내지 못하기 때문에 커피 본래의 맛을 느낄 수 없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정수기 물을 사용하는 게 좋다.커피 잔에 섭씨 100도의 물을 적절히 따른 후 2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물의 온도가 섭시 5~7도 떨어지면 그때 커피를 넣는데 너무 높은 온도는 카페인이 너무 많이 나오게 해 쓴맛을 내게 한다. 따라서 너무 뜨겁게 끓일 필요는 없다.그런 다음 설탕, 크림 순으로 넣는다. 이유는 커피에 함유된 산이 크림의 단백질이 굳는 현상을 막아 커피의 풍부한 향과 맛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커피를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온도는 섭씨 60~70도. 너무 뜨거운 커피는 입을 데일 수 있을 뿐더러 맛과 향을 제대로 못 느끼게 해준다.잔의 온도도 중요하다. 잔이 따뜻해야 하는 이유는 마시는 동안 커피 잔의 온기로 커피 고유의 향미를 잘 느낄 수 있기 때문. 만약 좀 더 부드럽고 색다른 맛을 원할 때는 설탕 대신 꿀을, 크림 대신 우유를 넣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유를 너무 뜨겁게 끓이면 단백질의 얇은 막이 생겨 커피를 마실 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만큼 전자레인지에 1분 정도 데우는 게 좋고 꿀은 1~2스푼 정도 첨가하는 게 적당하다. 그래야 커피와 꿀이 어우러져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만약 구수하고 부드러운 커피를 원한다면 물 대신 보리차나 우롱차에 타 마셔도 된다.최근엔 커피가 하나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으면서 직접 원두를 갈아 마시는 핸드드립도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다. 1711년 프랑스에서 플란넬을 이용해 여과하는 방법이 처음 시도된 핸드드립은 19세기 초, 두베로와의 드립 포트가 개발되면서 더 발전하게 된다. 최근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방식은 분쇄 커피에 드립 전용 주전자로 직접 뜨거운 물을 부어 여과해 커피 액을 얻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가장 이상적인 맛을 추출해 낼 수 있다. 커피는 사람이 직접 맛을 추출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제조하는 사람마다 맛과 향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물론 여기에는 기구도 필요하다. 한국인의 성격상 핸드 드립이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고급 커피를 경험하기 위해선 핸드드립의 기초 상식은 알아두는 것이 좋다.우선 드리퍼(칼리타 혹은 고노), 서버(드립 전용 주전자) 드립 포트, 드립 페이퍼, 온도계를 준비해야 한다. 미리 사놓은 원두커피를 분쇄기로 10g 정도 간다. 물의 온도는 섭씨 85~90도를 유지하며 100cc 정도 추출을 전제로 한다. 전용 그라인더나 핸드 밀 혹은 믹서기를 이용해 원두커피를 분쇄한다. 여과지를 용기에 완전히 밀착하고 분쇄된 커피를 여과지에 넣은 뒤 손으로 용기를 툭툭 치며 최대한 수평으로 만든다. 그리고 핸드 드립에서 가장 중요한 뜸 들이기와 1차 추출에 들어가면 일단 50%는 성공이다.처음엔 가능한 한 얇은 물줄기로 커피 분말 위에 나선형으로 돌리면서 분말 전체를 적셔주는 정도로 붓는 것이 좋다. 만약 커피가 신선하다면 곧바로 부풀어 오르는 걸 볼 수 있다. 뜸 들이기는 약 20~30초 사이가 적당하다. 부풀어 오른 커피 가루가 서서히 꺼지기 전에 바로 2차 추출에 들어가며 이런 식으로 보통 3~4차까지 진행하면 추출이 완료된다. 그리고 적당한 양의 물이 차면 곧바로 추출 기구를 치운다. 이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총 2~3분 사이. 추출된 커피를 오랫동안 방치하면 커피의 맛과 향에 관계되는 성분이 휘발되거나, 산화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바로 마시는 것이 좋다. 원두는 아주 균일하게 분쇄해야 한다. 분쇄된 커피 가루가 들쑥날쑥하면 커피의 성분이 균일하게 추출되지 않는다. 핸드 밀, 가정용 믹서도 아닌 전용 그라인더가 필요한 것이 바로 그 이유다. 드립 중에는 절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추출 도중에 손이 흔들릴 경우 물과 커피가 뒤섞여 커피 가루에 교반이 일어나 떫은맛이 날 수 있다.커피를 우려낼 때 생기는 물줄기도 중요하다. 섬세하고 깊은 맛은 가늘게, 부드럽고 가벼운 맛은 굵은 물줄기가 적당하다. 이와 함께 왼쪽 팔과 다리는 일직선으로 유지하고 주전자와 드리퍼 또한 일직선으로 놓고 추출하며 팔목이 아닌 팔 전체로 돌려야 한다. 잘된 핸드 드립은 처음 원두가 있었던 모양 그대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만큼 어떻게 거품이 생기는지도 유념해 살필 필요가 있다.글 김일호 W호텔 소믈리에·사진 동서식품©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