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은 북방 문화에서 비롯된 구들 온돌방과 남방 문화인 마루를 깐 대청이 한 건물 안에 있는 살림집이다. 북방과 남방문화의 연합이란 점에서 세계적으로 우수성이 입증됐는데, 한옥의 또 다른 특징인 후원(後園)도 한국의 전통 조경에만 독특하게 나타난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은 산천의 정기를 받아 태어나기 때문에 뒷산에서 집으로 뻗어온 지맥과 지기가 온전히 보존돼야 훌륭한 인물이 태어난다고 믿어왔다. 그 결과 배산임수의 지형에 터를 잡고는 집을 산기슭에 바짝 붙여 지었는데, 후원은 산의 비탈면을 깎아 여러 단의 화단을 만들고 계단에는 철따라 꽃을 피우는 화초와 꽃나무를 심고, 더 멋을 부려 괴석을 몇 점 놓기도 했다. 이것은 집으로 흘러드는 진산의 정기가 훼손되지 않도록 초목으로 보호한 것이다.여기서 배산임수는 뒤쪽에 산을 두고 앞에 내와 들이 있는 전저후고의 지형을 말하는데, 집터의 뒤가 높고 앞이 낮으면 겨울엔 일조량이 많아 따뜻하고, 여름엔 남동풍이 불어와 시원하다. 뒷산에 무성한 나무는 물과 흙을 보호·유지해 쾌적한 미기후를 조성하고, 배수가 용이해 집안에 오물이 고여 썩지 않으니 예로부터 ‘진토(晉土)’라 하여 귀하게 여겼다. 또 지기는 흙에 따라 흐르고 흙에 머무르기 때문에 흙을 파내고 땅을 평평하게 고른 후 집을 짓는 것을 꺼렸다. 어떤 경우든 지표면의 흙을 훼손하지 않은 채 돌이나 나무로 흙을 다진 후 그 위에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하지만 요즘에 짓는 집과 건물은 지맥과 지기의 보전이라고 하는 전통 가치관이 상당히 무시되고 있다. 가급적 도로에서 접근이 편리한 터가 선호되고, 지하주차장을 위해 땅속을 깊이 판 뒤 부지를 평탄히 고르고 골조를 세운다. 여기서 도로의 양 옆에 건물을 지을 경우 대개는 양쪽의 건물 모두 도로를 바라보도록 건물의 향을 놓는데 이 중의 하나는 지맥의 흐름에 역행으로 건물의 방향이 놓여 흉하다. 즉 아무리 평탄한 땅도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지맥도 산에서 내와 강 쪽으로 흘러가는데, 이 지맥에 순행해 지어진 건물은 배산임수 터라 길하지만 그 반대쪽 건물은 역으로 전고후저 터라 번영할 운이 없고 분란이 잦다. 마치 말을 타고 달릴 때 말 갈기를 붙잡고 달리는 경우(순행)와 말 꼬리를 붙잡고 달리는 경우(역행)에 비유된다. 따라서 도로를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보는 터는 시세 차가 별로 없어도 풍수적 가치는 천양지차로 벌어진다.또 집터의 지기를 보존하기 위해 땅이 생긴 경사도에 맞추되, 경사지를 단(terrace)으로 깎은 뒤 단면에는 돌계단이나 대를 높여서 층차감 있게 집을 지었다. 땅을 깊게 파 암반 위에 집을 지으면 지기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 중턱을 깊게 파낸 다음 부지를 평탄히 고르고 지은 아파트를 ‘기가 센 집’이라 부른다. 지기가 쇠약한 터의 다른 표현이다. 하지만 현대의 땅값은 금값보다 비싸다. 따라서 건물을 지을 때면 당연히 지표면의 흙을 걷어내고 땅을 깊이 판 다음 지하주차장, 지하상가, 공조실 등을 둔다. 이럴 경우 지기의 보전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풍수는 흙을 기 덩어리로 보니, 땅 속에 석 자 정도로 생토를 고르게 깐 다음 그 위에 콘크리트 타설을 하고 골조를 세운다. 이것은 상처 입은 땅을 치료해 지덕을 발동시키는 풍수의 비책이다. 지맥의 흐름에 순응한 터를 가려 택하고, 터의 지기를 보존하며 건물을 짓는 것이 이 시대의 새로운 건설 문화가 돼야 한다.우리 속담에 ‘남향집에 살려면 3대가 적선(積善)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남향집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는 햇볕이 깊숙이 들어와 따뜻하고 아늑한 집이 돼 살기에 편리하다. 그만한 복록을 누리려면 그에 상당하는 희생도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남향은 양기가 가장 성한 제왕의 방위로, ‘임금은 남면(南面)해 정사를 본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급적 남향 혹은 동남향의 집을 지을 수 있는 남북의 길이가 길고 동서의 길이는 짧은 집터가 선호됐다. 현대에 들어서도 남향집이 다른 집들에 비해 분양이 잘 되고 더 높은 값에 거래되는 등 선호되자 급기야는 지세나 바람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개의 아파트는 남쪽을 향해 마치 병풍을 펼쳐놓은 듯한 직선형 배열이 유행했다. 그렇지만 남향집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고창군 줄포면 인촌리에 있는 경성방직 창업자 인촌 김성수 선생의 생가는 한국에 전해지는 대표적 양택 명당의 하나다. 이 집은 대대로 호남의 만석꾼 부자의 집이었는데, 산으로 둘러싸인 남쪽을 배경으로 북쪽의 바다를 바라보는 북향 대문에 북향집이다. 북향집을 지으면 살기에 불편함을 모른 것이 아니다. 산줄기의 지기가 뭉친 곳에 집터를 잡고는 지맥의 흐름에 순응해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배산임수의 배치를 취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북향집이 된 것이다. 여기서 전통적으로 배산임수는 집터뿐만 아니라 집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도 결정적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이것은 지맥의 흐름에 순응해야 지덕이 발동해 복을 받는다는 풍수상의 원칙이 건축 원리에도 반영된 것이다. 지맥을 따라 물은 흐르고 물길은 곧 바람 길이니 결국 지맥의 흐름에 순응한 집의 방향이 순하고 신선한 바람을 얻을 수 있어 좋은 집이 되는 것이다.바람은 산천 지형의 형세를 따라 일정한 순환궤도를 거치며 어느 곳은 빠르고 어느 곳은 느리게 흘러 다니며 사람의 생명 유지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때 바람의 세기 중 사람이 건강하게 성장해 큰 결실을 보기에 가장 알맞은 바람을 얻는 방위가 있는데 이것을 좌향(坐向)이라 부른다. 좌향은 통념적으로 햇볕을 많이 얻는 남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산천 지세를 따라 흘러 다니는 바람 중 최적의 것을 얻는 방위이니 결국 아파트를 비롯한 주택의 좌향은 햇볕이 아닌 바람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또 현대 주택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도로가 중요한데, 대개의 경우 도로를 통해 편리하게 진입토록 주택의 전방위를 정한다. 그렇지만 도로에서 접근이 용이한 방향은 자칫 지세의 흐름을 역행하는 방위가 되어 풍병(風病)이 생길 수 있고 일조량까지 취약할 수 있다. 그리고 초고층으로 짓는 주상복합의 아파트는 경관이 좋은 방위가 선호되는데, 이것 역시 생기로써 취해야 할 최적의 바람과 햇볕과는 동떨어진 기준이다. 신선한 바람은 내와 강이 있는 낮은 지대에서 산 쪽으로 불어오니, 역으로 물을 향해 대문을 배치해야 신선한 바람이 집 내부로 잘 들어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게 된다. 따라서 가족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아파트든 단독 주택이든 꼭 남향집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