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불안해지면 투자자들의 마음은 한결같아진다. ‘시장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그냥 오랫동안 묻어두고 잊어버릴 수 있는 종목은 없을까’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답은 제각각이다. 증권가의 대표적 가치 투자자로 알려진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전무는 무엇보다 자산을 많이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저평가된 가치주가 대안이라고 말한다. 보유 자산이 많으면 단기적으로 실적이 좋지 않더라도 회사가 먹고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자산이 일종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에 비해 가치 투자 업계에서도 지독한 보수주의자로 통하는 박정구 가치투자자문 사장의 경우는 다소 독특하다. 따분해 보이는 주식이 최고라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성장의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 매력이 없어 보이는 주식 가운데 의외로 알짜 주식이 숨어 있다는 얘기다. 배당 투자 신봉자로 유명한 곽태선 SEI에셋코리아 사장은 배당을 많이 주는 주식이 최고 대안이라고 말한다. 주가가 부진하더라도 배당을 받으면 오랫동안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 속에서 가치주를 발견한다’는 투자 철학을 가진 강방천 에셋플러스 회장은 독점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그렇다면 이런 기준들에 부합하는 종목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한국전력(사장 한준호)이야말로 이들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는 몇 안 되는 장기 투자 유망주라고 꼽는다. 우선 한국전력은 생활 필수재인 전력 발전과 송배전 등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대체재가 없다는 점에서 향후에도 안정적인 매출이 가능하다. 전력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선 대규모 시설 투자와 함께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만큼 경쟁 업체의 신규 진입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만큼 경쟁에 대한 우려도 적다.한국전력은 또 순자산총액이 2006년 3분기 말 43조5876억 원에 달할 정도로 자산 가치가 우수하다. 한국수력원자력 등 발전 자회사들에 대한 보유 지분 가치도 무려 27조4415억 원에 이른다. 현재 주가순자산배율(PBR)은 0.6배 수준에 불과하다. 주가가 회사의 순자산가치(청산가치)를 밑돌 만큼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따분해 보인다는 것도 한국전력의 특징이다. 사실 한국전력과 같은 유틸리티 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은 보급률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성장의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한전이 판매하는 전기의 경우도 보급률이 100%에 달하고 있어 추가 성장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실제 뜯어보면 한전은 매출액 기준으로 매년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실제 한국전력은 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최근 2년간 주가는 2배 이상 올랐다. 한국전력 주가에서 가장 큰 특징은 시장 흐름에 상관없이 제 갈 길을 간다는 점이다. 시장이 큰 폭의 조정을 받아도 한국전력 주가는 미세한 조정에 그치거나 오히려 강보합을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강세장에서는 주가가 상대적으로 덜 올라 답답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한국전력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주가는 더디게 올라도 마음만은 가장 편한 주식”이라고들 얘기한다. 한국전력 주가는 분기 실적에도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그렇다면 한국전력이 장기 보유할 만한 주식으로서 어떤 매력이 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자. 최근 2년간 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평가된 자산주라는 게 한전 주식의 첫 번째 매력이다. 한전은 정보기술(IT) 관련주가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한 1999년부터 시장 대비 할인 거래됐다. 2002년에는 주가수익률(PER)이 4.6배까지 하락해 시장 평균 대비 57% 수준에서 거래될 만큼 소외된 적도 있다. 그러다 2004년 말 이후 주가가 레벨업되면서 시장 대비 할인 폭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PBR는 여전히 1배 미만인 데다, 아시아권 다른 발전 회사들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절대 수치로 비교해 보면 2007년 예상 PER는 한전이 9.7배로 일본 전력회사인 도쿄전력 15.7배, 간사이전력 15.2배에 비해 낮다. 또 홍콩전력 10.8배, 말레이시아 TENAGA의 13.7배와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지수 대비 상대 수치도 따져봐야 한다. 지수대비 PER는 해당업체의 PER를 각 해당 국가 전체 PER로 나눈 수치로 해당 기업이 전체 시장 대비 거래되는 수준을 보여준다. 각국의 시장지수 PER 대비로 분석한 결과 한전의 PER는 시장 대비 96% 수준으로 일본 업체와 비슷한 수준이고, 중국 업체들보다는 높게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한전의 시가총액이 일본 업체를 제외한 다른 기업들의 2배가 넘는 대형주라는 점, PBR가 1배 미만으로 자산가치에 못 미치고 있다는 점,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매출액 등을 감안한다면 해외 전력 업체 대비 한국전력의 투자 메리트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안정적인 배당도 한국전력의 장기 투자 매력으로 꼽힌다. 이 회사는 2001년 6월 발전 자회사 분할 이후 발전 부문에 대한 연간 설비투자 비용 감소로 잉여현금흐름이 대폭 개선됐다. 이는 다시 말해 배당 가능 여력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실제 한국전력은 매년 순이익의 30% 이상을 배당으로 주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은 한전의 주당 배당금이 2005년 1150원에서 2006년에는 1250원으로, 2007년에는 1350원으로 매년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배당수익률은 4% 안팎에 달한다.한국전력은 재무 구조도 우량하다. 이 회사는 발전 원료를 주로 수입에 의존하는 까닭에 외화 부채가 많은 편이나,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차입금 만기 구조에 따라 매년 2조5000억 원 이상의 차입금을 상환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순차입금 비율은 올해 29.1%에서 2008년에는 27.8%로 낮아지게 된다. 이자보상배율 역시 올해 2.7배에서 2008년에는 3.0배로 높아질 전망이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금융비용(이자비용-이자수익)으로 나눈 값으로 기업이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성장의 한계에 부닥친 것 아니냐는 일반적인 우려와 달리 여전히 성장이 진행 중인 점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실제 한국전력을 포함한 국내 전력산업은 1990년대 이후 외환위기로 극심한 경제 침체를 겪었던 1998년을 제외하면 매년 플러스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경제 성장이 유지되는 한 전기나 가스와 같은 전력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의 내부 전망치에 따르면 국내 GDP 성장률은 2006년 4.7%, 2007년 3.8%, 2008년 5.1%로 예상되고, 전력 판매량은 2006년 5.7%, 2007년 5.1%, 2008년 7.1% 증가가 예상되고 있다.물론 매출의 꾸준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측면에서는 2002년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이다. 특히 유가 석탄 LNG 등 국제 에너지 상품 가격이 급등세를 탔던 올 상반기에는 실적이 크게 부진했다. 그러나 이재원 동양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연료비와 감가상각비 감소와 전력 판매량 증가로 지난 3분기부터 수익성이 4년여 만에 분기별로는 처음 증가세로 돌아섰다”며 “한전 수익성에 우호적인 유가 하락과 원화 강세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2007년에도 수익성 개선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그런데 한전 주가흐름에서 특이한 점은 최근 수년간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악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오히려 상승 기조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실제 한전 주가는 환율 유가 등 수익성 관련 지표의 방향과도 별개로 움직인다. 수익성은 2002년을 정점으로 매년 악화되고 있으나 주가는 2004년 하반기부터 상승 반전했다. 증시 호황 국면에 편승해 시장을 아웃퍼폼(Outperform:상회)하기도 했다. 주가와 이익의 상관관계가 낮다면 한전 주가는 어떤 요소에 의해 움직이는 것일까. 이에 대해 윤희도 애널리스트는 “답을 시장의 수급과 패턴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시장의 수급을 주도하는 외국인과 국내 기관들 사이에 한국전력을 장기 투자 유망주로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려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주가가 꾸준히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최근 환율 급락 추이도 한국전력 주가에는 커다란 호재다. 환율 하락, 즉 원화 강세는 한전의 원료 구입비를 절감시켜줌과 동시에 외화차입금의 평가이익 증가를 통해 영업외수지 개선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창목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한전의 경우 매년 80억 달러에 달하는 연료를 해외로부터 구입하고 있다”며 “환율 1% 하락은 한전 영업이익을 1.5%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또 “한전은 지난 9월 말 현재 총 19조 원의 차입금 중 3조2000억 원을 외화차입금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달러는 1조8000억 원, 엔화는 1조 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물론 한국전력에도 위험 요인은 있다. 정부가 소유한 공기업인 만큼 경영 목적이 일반적인 기업처럼 이윤추구라기보다는 국민들에게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해주는 데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이는 다시 말해 연료비가 상승해 전기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하더라도 전력은 공공재 성격이 강해 한국전력 마음대로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또 매년 한 자릿수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지만 국내 에너지 가격이 올 상반기처럼 급등세를 보일 경우 뚜렷한 대처 방안이 없다는 점도 리스크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