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연기자로도 인정받고 싶어요”
‘어쩌면 계집애가 그리 고우냐 / 어린 것이 봄밤의 향기를 혼자 머금었는지 / 머리채에 밤새 이슬이나 내리게 할 것을…’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돼 화제가 됐던 ‘이효리’라는 시(김윤식 작)의 한 구절이다. ‘봄밤의 향기’라는 시어에 시인이 보는 이효리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가수 이효리는 이 한마디 시어만으로 함축하기 어려운, 훨씬 다양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녀가 휴대폰부터 화장품, 건강음료, 상가분양에까지 폭넓게 CF모델로 등장하는 것도 이런 복합적인 이미지 덕일 것이다. 최근 소속사를 옮기며 거액의 계약금을 받아 또 한 번 화제가 된 이효리를 MONEY가 만나 스타로서의 삶에 대해 진솔한 얘기를 들어봤다.이효리와의 인터뷰는 그녀의 스케줄 조정으로 인해 약속 시간을 세 차례나 변경한 끝에 오후 4시에 이뤄졌다. 장소는 강남구 청담동의 한 헤어숍. 정시에 나타난 그녀는 캐주얼한 차림이었지만 인터뷰 경험이 드물어서인지 다소 긴장한 듯한 느낌도 받았다.대중은 ‘이효리’라고 하면 패션 아이콘이란 이미지부터 떠올리는 것같던데요.“많은 연예인 중에서도 아이콘이 됐다면 큰 영광이지요. 노래나 연기로 즐거움을 주는 역할을 넘어 대중문화나 패션 코드를 이끌어가는 것은 굉장히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요즘은 대중의 기호가 워낙 변화무쌍해서 트렌드를 선도하기가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사람들의 취향이 변하는 만큼 저 자신도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대중보다 한발 앞서 변화하려고 노력했고 앞으로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은 제가 예쁘고 춤 잘 춰서 인기를 얻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난 10년 간 꾸준히 변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사랑받았다고 생각합니다.”스타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상품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그런 측면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타고난 것도 필요하고 만들어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두 조건이 모두 맞아야 진정한 스타가 될 수 있습니다. 밸런스가 맞지 않으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없습니다.”데뷔 후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워낙 바빠서 못하기도 했지만, 와전되고 하는 점들이 있었고요, 기사도 너무 많이 나오고 해서 부담이 됐습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지 않으니 다른 불만도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말을 좀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데뷔 후 돈도 많이 벌었는데 재테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개인적으로 재테크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있어요. 부모님들이 돈 관리를 다 해 주시는 데다 제가 천성적으로 재테크에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이죠. 저는 벌기만 하고 용돈을 타서 쓰고 있어요. 재정 관리를 해 주는 분이 따로 있어서 그 분과 부모님이 제 앞으로 투자를 해주는데, 단기보다는 10년, 20년 후에도 안정적으로 수입이 발생하는 자산을 구입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동산이나 채권, 주식 등은 잘 모르는데… 나중에 이런 분야를 잘 알고 있는 남편을 만나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돈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다른 분들이 재수 없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돈은 제가 노력한 만큼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돈을 벌어봐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어요. 또 비싼 옷이나 명품 같은 것에도 별 관심이 없어요. 물론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서는 제 씀씀이가 크겠지만 버는 액수와 비교해 보면 지출이 적은 편이에요. 좋은 차를 타는 것도 아니고… 휴대폰 CF모델이라 휴대폰도 공짜로 받아서 쓰고 있으니까요(웃음).”인생에서 승부를 건 적이 언제였나요.“가수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승부를 걸었지요. 천성에 딱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원래 오빠와 언니가 미대를 나왔고 집에 그림 그리는 사람이 많아서 저도 고등학교 시절 자연스럽게 미술을 하게 됐어요. 하지만 한곳에 가만히 앉아서 석고상을 그리는 일은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또 입시 미술은 수학처럼 반드시 정해진 공식을 따라야 했기 때문에 너무 답답하기도 했고…. 그래서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는데 제가 과연 해낼 수 있을지 의심이 들어 갈팡질팡한 적도 있어요. 다행히 기회가 찾아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수가 될 수 있었죠.”폭넓은 계층에서 인기를 얻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다양한 개성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요. 웃기기도 하고 섹시하기도 하고 털털해 보이다가도 새침해 보이기도 하는 등 여러 모습을 보여드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제 안에 ‘다중이’ 성격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털털한 척하거나 섹시한 척하는 게 아니라 원래 자연스럽게 제 안에 들어있는 다양한 성격이 표출되거든요. 그러고 보니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마니아층이 없다는 단점도 되는 것 같긴 하네요.”애니콜 CF 모델로 경쟁하고 있는 전지현 씨와는 친한가요.“몇 번 인사는 했지만 친한 관계라고까지 할 수는 없어요. 저는 사실 특별히 친한 연예인이 적은 편이에요. 일반인 친구는 많은데 연예인과는 친구 하기가 좀 어렵더라고요.”지금까지 일을 해오면서 가장 큰 변신의 모멘텀이 있었다면.“핑클로 약 5년 정도 활동하다가 솔로로 데뷔한 것과 MC를 했던 게 연예인으로서 인생의 전환점이 됐던 것 같아요. MC를 하면서 인간적이며 털털하고 소박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었고 대중에게 더 어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얼마 전 취객을 구한 선행이 화제가 됐는데.“사실 그때 저는 화장도 하지 않고 모자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술 취한 분이 못 알아볼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분이 나중에 인터넷에 글을 올리셨더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술 마시고 엘리베이터나 계단에 쓰러져 본 경험이 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주량은 얼마나 되죠.“소주 두 병 정도라고 써주세요.”연예계에 발을 들여놓고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요.“저는 겉으로 보기엔 털털하지만 알고 보면 쉽게 상처를 받는 성격이에요. 특히 연예계는 말이 많은 곳이어서 말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지요. 동료 연예인이 저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거나 시기하는 경우도 있었고 인터넷의 악의적인 글들도 큰 상처를 주곤 했습니다. 이제 인터넷은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테러를 가하는 매체가 됐으니 정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자꾸 마음에 상처를 받으니 옛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더군요.”결혼을 일찍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요.“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생각이 달라져서 늦게 하고 싶어요. 그땐 제가 결혼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는 무엇입니까.“연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어요. 연기로 성공하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좋은 연기로 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어요. 저도 잘 할 수 있는데…. 다행히 새해에 소속사에서 제작하는 뮤직드라마에 출연하게 됐어요. 이전에 ‘세잎 클로버’라는 드라마에서 연기했을 때는 수업도 열심히 받고 준비도 많이 했는데 빛을 보지 못해 안타까웠어요. 지금은 경험과 생각이 많아졌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많다고 생각합니까.“굉장히 많죠. 지금도 연예인으로 갈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는 아직 3분의 1도 못 갔어요. 특히 앞으로는 베풀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왔는데 저도 이제부터는 남한테 더 많이 베풀며 살아야겠지요.”©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