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와 건물의 가치를 올려주는 선택
울 강남 신사동에 있는 가로수 길을 최근 걸어 보신 적이 있으신지. 아니 5년 전의 가로수 길과 최근 가로수 길의 변화를 기억하시는지. 가로수 길은 한남동에서 한남대교를 건너 신사사거리에서 좌회전한 후 첫 번째 신호등에서 왼쪽으로 미성아파트 앞 큰 길까지 나 있는 도로 이름이다. 5년 전 이 길에 접어들었을 때 받은 느낌은 칙칙함이었다. 신사동 사거리 일대나 미성아파트 쪽 압구정동 초입의 화려함과는 정반대로 가로수 길은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거리 하나 사이에 이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 의아할 정도였다.그랬던 가로수 길이 확 달라졌다. 길이 넓어졌다거나 가로수가 새 단장한 건 아니다. 가로수 길 양쪽의 건물 모습이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바뀌었다. 이곳에 밀집해 있던 단독주택과 소형 빌딩을 하나둘 리모델링하면서 거리가 전혀 달라졌다. 테이블 서너 개의 아주 작은 와인바, 지나가다 엉덩이를 걸치고 싶은 작은 찻집, 한복집 분위기의 전통 떡집, 창고 같기도 하지만 외부 치장이 눈길을 끄는 중국 음식점, 세련된 느낌의 옷가게들…. 이제 가로수 길을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5년 전 걸을 때 아주 멀고 지루하게 느껴졌던 거리가 아주 짧아진 느낌이다. 볼 게 많아져서다.가로수 길에서 오랫동안 헤어갤러리를 운영해 온 주인에게 물어봤다. 가로수 길의 건물들이 언제부터 바뀌었느냐고. 최근 2~3년 동안 하나둘씩 리모델링됐다고 했다. 지자체나 추진위원회 같은 특정 주체가 리모델링을 주도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가로수 길 초입에 대형 건물이 들어선 게 리모델링의 도화선이 됐다는 의견도 있지만 인과관계가 증명된 것은 아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가로수 길을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우선 기존 건물을 헐지 않고 리모델링한 것이 마음에 든다. 물론 새로 지은 건물도 일부 눈에 띄지만 전반적으로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했기 때문에 가로수 길을 걷다보면 포근함, 또는 아늑함이 느껴진다. 작은 와인바, 그리고 찻집은 사랑방처럼 보인다. 건물을 헐고 새로 지었다면 사랑방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가로수 길을 걸으면 기분 좋아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건물 하나하나의 개성이다. 적어도 건물 1층의 모습은 모두 달라 보인다. 입구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건물 실내 인테리어도 각양각색이다. 개성 있는 건물 1층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가로수 길이 짧게 느껴진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을 보면 리모델링 이후 건물의 가치가 얼마나 올랐을지는 일일이 확인해 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가로수 길과 함께 최근에 다시 발견한 개성 있는 공간은 서울 반포동의 고급 빌라촌인 동광단지다. 강남고속터미널 인근 팔래스호텔 뒤쪽에 프랑스인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서래마을과 이웃한 곳이 동광단지다. 한때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자택이 있던 단지여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동광단지에 있는 최고급 빌라는 올해 기준시가가 타워팰리스를 앞질러 다시 주목받고 있다. 동광단지는 고급 빌라를 신축하는 형태로 동네 전체가 리모델링되는 경우다. 스카이라인 계획이 다소 부족해 보이기는 하지만 동광단지 내 빌라들은 같은 모습들이 아니다. 나름대로의 개성 있는 외관을 하고 있다.외관의 개성 때문에 동네 전체가 리모델링된 분위기다. 성냥갑처럼 틀에 박힌 듯한 주택이 아니어서 동광단지를 지나면 집 구경 자체로도 흥미를 가질 수 있다. 고급주택가의 대명사인 ‘베벌리힐스’도 개성 있는 주택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가치가 높은 것처럼 동광단지도 한국판 베벌리힐스로 자리 잡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가로수 길과 동광단지는 리모델링 주제와 형태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찾자면, 바로 개성이다. 개성이 거리와 건물의 가치를 올리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다. 서울 청담동에 있는 한 단독주택은 리모델링하면서 담을 헐어 버렸다. 리모델링 이후 주변에서 이 집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고 개성 있는 집으로 각인되면서 가치도 올랐다. 리모델링하겠다고 마음먹으면서 개성을 발휘하는 데는 용기와 안목이 필요하다. 하지만 개성 발휘란 내 자신을 찾는 과정이자 자신의 표출 방법이다. 스스로 개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 헤어스타일을 바꾸려고 할 때 스스로 머리를 깎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한편으론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거방식이 돼 버린 상황에서 내 집만 리모델링한다고 해서 가치가 올라간다고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집을 고쳐서 가치가 올라가는 경우보다 입지 여건이나 아파트 인지도에 따라 시세가 달라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게 현실이다. 그렇더라도 실내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다면 나만의 개성을 꼭 발휘해야 한다. 개성을 추구하는 듯 하면서도 의외로 남의 집 사례를 따라가며 리모델링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마이너스 효과가 날 가능성이 크다.프랑스 출신으로 국내 방송을 통해 이름과 얼굴이 많이 알려진 이다 도시는 자신의 저서 ‘행복공감’에서 한국 지인들의 집을 방문해 본 소감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실내 인테리어가 거의 똑같다는 것과 남의 집에 관심이 많다는 것으로 요약했다. 나를 표현하기보다는 남을 염두에 두고 집을 인테리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다 도시처럼 두 문화를 경험한 사람의 눈에는 금방 발견되지만 부지불식간에 굳어져 버려 습관화된 실내 공간의 몰개성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입지 여건이나 아파트 인지도에 따라 집값이 크게 좌우되면서 외형적인 계량화는 쉽게 나타난다. 반면 리모델링 효과는 수치로 당장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특히 실내로 들어가야 확인되는 경우가 많은 리모델링은 시세 반영의 기준으로 미약할 수도 있다. 그렇게 놓고 보면 리모델링은 밖으로 보여주기보다는 내부 구성원, 즉 가족을 위한 집안 꾸미기나 고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얼굴이 모두 다르듯 가정마다 생활 패턴이나 선호하는 색상이 다르게 마련이다. 그런 패턴을 무시하고 남의 집 리모델링 사례를 따오는 게 몰개성이다. 부모가 개성을 못 살리면 아이들도 따라가기 십상이다. 그러면 장기적으로 마이너스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창의(creativity)가 우리의 살 길이라는 얘기가 보편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