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과장인 김모(42) 씨는 주식시장이 개장하는 오전 9시가 임박하면 잔뜩 신경이 곤두선다.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하기 10여 차례. 줄담배를 피워대며 안절부절못하고 사무실을 서성거리다 개장이 되면 비로소 안정을 되찾는다. 그리고 오후 3시, 주식 시장이 문을 닫으면 다음 날 뭘 살까, 뭘 팔까 고민하느라 다른 생각을 못한다. 주식 거래가 없는 주말은 세상의 시계가 멈춰버린 것 같이 지루하고 답답하다. 월요일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주가가 폭락한 날은 신경질이 나 일을 못할 정도가 된다. 아내에게 폭언을 퍼붓고 아이들은 아버지 눈치를 살피며 피한다. 그러다가 주식 값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기분이 좋아져서 부하 직원들에게 마구 술을 사곤 한다.김 씨는 ‘주식중독증, 스톡홀릭(stockholic)’이다. 주식중독증은 보통 3단계를 거친다. 첫 단계는 유혹기다. 돈을 따는 재미를 보는 것이 시작이다. 그리고 투자를 시작하고 점차 빠져든다. 그래서 주식으로 돈을 버는 것은 축복이 아닌 경우가 많다. 둘째는 상실기다. 생활이 온통 주식과 관련돼 있으며, 점점 더 많이 투자한다. 주식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 진다. 그래서 또 시작한다. 돈을 잃고 친구나 친척들에게 빌리고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자주하게 된다. 직장에 불성실하게 되고 공금에 손을 대 직장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절망기에 도달한다. 큰 돈을 잃고 갚을 여력이 없어서 파산한다. 친구들에게 신용이 떨어져서 이미 많은 친구들이 그에게 실망하고 떠나 버린다. 그리고 가족, 친척들에게 보증 서게 해서 그들까지 동반 파산시킨다.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2년이다.왜 이런 병이 생기는가. 세가지 측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성장한 가정환경이다. 돈이 최고라는 가정 분위기가 문제다.도박하는 부모, 알코올중독의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많다. 둘째 원인은 성격이다. 성격이 밝지 못하고 항시 우울한 사람들은 흥분되는 일이 필요하다. 우울이 너무 괴롭기 때문에 흥분과 도전으로 우울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느낀다. 투자해 놓고 기다리는 시간의 흥분이 권태로운 우울감을 잊게 해준다. 완벽주의적인 성격도 중독증에 잘 빠진다. 어른들이나 윗사람 앞에서 주눅드는 성격도 자신의 용기를 실험해 보고 싶어서 도박중독증에 빠진다. 세 번째 원인은 뇌전달물질의 결핍이다. 이런 중독증에 빠진 사람들은 신경호르몬인 세로토닌이 결핍돼 있다고 한다.그러면 어떻게 치료할까. 마약중독이나 알코올중독처럼 어느 중독이나 치료가 어렵다. 일단 주식으로부터 떼어 놓는 것이 좋다. 금단 증상 때문에 쉽지 않다면 가족들이 총동원돼 압력을 넣어야 한다. 돈의 흐름을 감시하고 협박도 한다. 환자의 친구들이나 그 누구도 절대로 돈을 빌려주면 안 된다. 스스로 끊기가 어려우면 파산하기 전에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정신과 의사는 원인을 분석하고 자살 위험을 평가한다. 자살 위험이 높거나 너무 중증일 때는 입원시킨다. 보통 3개월 정도가 필요하다. 주식을 떠나 있는 기간이 이 정도는 돼야 환자는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산거야(?)’하고 정신이 든다고 한다. 세로토닌을 높여 주는 항우울제도 투여한다. 주식중독증인 환자들의 모임도 소개해 준다. 서로 경험을 나누면서 노하우를 배우게 한다.조기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 스스로 자신이 주식중독증은 아닌가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중독증이라고 판단된다면 즉시 손을 뗄 수 있어야 한다. 귀한 인생과 가정이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