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석 굿모닝신한증권 투자분석부장의 정석투자 훈수

품 주식을 갖고 싶다면 지속적으로 이익을 내왔던 종목에 장기 투자해야 합니다. 반대로 짝퉁으로 승부하고 싶다면 철저하게 ‘타짜’가 돼야 합니다.”정의석 굿모닝신한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명품에 투자하거나 짝퉁으로 승부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짝퉁이 높은 수익률을 낼 수도 있지만 복권이나 도박과 같이 돈을 잃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정 부장은 증권가에서 ‘미스터 쓴소리’로 불린다. 그는 다작(多作)하는 다른 애널리스트와 달리 17년간 불과 10여개의 보고서만 냈다. 하지만 내놓는 보고서마다 시장을 뒤흔들 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대표적인 게 ‘멍멍이(한계기업) 시리즈’(1992년)다. 그는 보고서를 통해 부도 위험이 큰 상장 종목 25개를 실명으로 지목했고 해당 종목 주가는 추락했다. 기업과 투자자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지만 그가 지목한 기업 중 18개가 실제 부도를 내고 시장에서 사라졌다.정 부장은 이후에도 대우그룹 위험을 경고한 ‘이무기가 돼버린 용에 대한 보고서’(1997년), ‘주식시장 야사록’(2000년), ‘한국증시의 잃어버린 15년을 찾아서’(2004년) 등 소신을 담은 굵직한 보고서를 써 증시 안팎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 부장은 MONEY와 만나 주식시장과 주가에 대한 독특한 통찰을 털어놓았다.- “아직도 1992년 보고서가 회자되는 걸 보면 그동안 제가 열심히 일하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봅니다. 보고서와 관련된 일화로는 1998년 쌍용증권의 스티브 마빈 이사가 한국 시장에 대해 잇따라 비관적 전망을 내놨던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대부분 한국 애널리스트들은 그를 비난했습니다. 심지어 쌍용증권 법인부조차 마빈 이사를 비난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90년대 초반 국내 증시에 변변한 전략가가 없던 시절에 마빈 이사만큼 분석의 틀을 갖추고 시장을 전망한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그 사람의 보고서를 분석해보니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시장을 비교적 잘 예측했습니다.다만 극단적 비관론으로 가면서 막판에 좀 예측이 어긋났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80%는 잘 맞췄고 20% 정도 실패한 셈이죠. 당시 저는 이런 사실을 제시하면서 마빈 이사를 일방적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습니다. 애널리스트가 잘못된 전망을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의 소신을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훨씬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전략가는 시장 전망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자산배분 비율과 투자 방식을 조언해줘야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일을 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주식을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더 욕심이 있다면 한국 증시의 역사를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역사는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돈을 벌기 위한 인간의 욕심은 매번 유사한 사건을 만들어 왔습니다.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 튤립 투기 거품이 일어난 지 수 백 년이 지난 2000년 초에 닷컴 거품이 일어난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패턴을 연구해 ‘주가학 원론’ 이란 책을 냈습니다. 지금까지 주가에 대한 이론은 투자론이 전부였는데 제대로 주가를 알기 위해서는 투자 대상인 기업과 함께 투자 주체인 인간을 함께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런 관점에서 주식시장을 고찰한 것입니다.”- “저는 지난 2003년 ‘한국 증시에 한국이 없다’는 보고서를 썼습니다. 외국인들이 증시를 좌우하기 때문에 외국인들만 따라하면 된다는 취지였습니다. 사실 IMF 관리체제도 외국인 주식 매도로 촉발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97년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 주가가 떨어졌고 이로 인해 기업 신용평가 등급이 낮아져 다시 주가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1997년 9월부터 11월까지 외국인이 팔아치운 주식 규모가 1조3000억 원 정도였는데 이런 매도 공세로 한국은 부도가 난 거죠. 그런데 작년부터 올해까지 외국인이 처분한 금액이 얼마인지 아시나요. 작년에만 7조 원, 올해 들어서도 9조 원에 달합니다. IMF 관리체제를 몇 번이나 유발할 수 있을 정도의 공격적인 매도세였죠.하지만 우리 증시는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텨냈습니다. 이유는 외국인의 매도 물량을 모두 소화할 정도로 내국인의 간접투자 자금이 유입됐기 때문이죠. 사실 유가와 고금리, 원화가치 상승 등으로 80년대 후반과 정 반대인 ‘3고(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 매도까지 겹쳤는데도 주가가 급락하지 않은 것은 꾸준히 주식을 사 모으고 있는 민초의 힘 때문입니다. 한국 증시의 주인이 외국인에서 한국인으로 다시 바뀐 셈입니다.”- “2005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해서 증시의 수급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로 인해 주가가 대세 상승하는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세 차례의 기관화 장세를 경험했습니다.첫 기관화 장세는 1993~1994년으로 은행 위주의 기관화 장세가 형성됐습니다. 두 번째 기관화 장세는 바이코리아 펀드로 시작된 1999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식시장에 투기세력이 많았고 장기투자가 정착되지 않은데다 정부 정책에도 문제가 많아 결국 두 번의 기관화 장세는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그런데 이번 기관화 장세는 이전과 많이 다릅니다. 시장이 성숙했고 관리 감독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는데다 장기 투자 문화가 정착됐기 때문입니다. 주가 하락기에 주식을 사는 투자자가 늘어난 것만 봐도 상황 변화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긴 호흡을 갖고 주가가 조정받을 때마다 주식을 사 모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한 안보 불안 상황과 미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 등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또 내년이 대통령 임기 말인데, 역대 대통령 모두 임기 마지막 해에 레임덕 상황에 빠지고 경제도 악화된 전례가 있습니다. 리더십의 붕괴 같은 정치적 요인이 증시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BCG매트릭스(경영전략 수립을 위해 보스턴컨설팅그룹이 개발한 사업 포트폴리오 분석 방법론·그림 참조)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1992년 멍멍이 보고서는 BCG매트릭스에서 성장성도 낮고 시장점유율도 낮은 사업을 의미하는 ‘개’(dog)에서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또 1991년에 ‘금송아지를 찾아서’란 보고서를 냈는데 이는 시장점유율은 높아 수익을 많이 내지만 성장률이 낮아 캐시카우(cash cow)로 불리는 회사를 분석한 내용입니다. 또 점유율은 낮지만 성장률이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성장주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게 황우석 신화를 다뤘던 ‘인지부조화 현상과 스톡홀름신드롬’이란 보고서입니다. BCG매트릭스의 완결판 격인 성장률과 점유율이 모두 높은 스타 기업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발간한 게 ‘명품주식을 찾아서’란 보고서입니다.”- “명품 주식에 투자하자는 얘기는 10년 후에도 증시에 남아있는 종목을 찾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10년 후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나마 기댈 수 있는 자료가 과거 기록입니다. 경기 부침 속에서도 꾸준히 순이익이 증가한 기업이라면 그렇지 못한 기업에 비해 생존 확률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당순이익(EPS)의 역사적 추이를 분석해 1990년부터 꾸준히 이익이 증가한 기업을 찾아 명품 주식으로 규정했습니다. 에스원 오뚜기 계룡건설 신세계 현대모비스 등 30종목이 꼽혔는데 주로 의식주와 관련돼 있어 경기 부침을 상대적으로 덜 타고, 시장 내에서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기업들입니다.”- “명품 주식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장기투자를 해야 합니다. 단기적으로 승부를 보려면 짝퉁 주식에 투자해야겠죠. 하지만 최악의 선택은 짝퉁 주식을 장기 투자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짝퉁 주식을 장기 보유하면 안됩니다.일부 코스닥 중소형주가 짝퉁에 해당하는데 하락세를 보이던 주식이 바닥권에서 대량 거래가 터지고, 봉차트에서 양봉을 기록하면 과감하게 주식을 샀다가 중간에 흔들리더라도 5일 이동 평균선을 이탈하지 않으면 팔지 않고 버티는 게 좋습니다. 물론 5일선을 이탈하면 뒤도 보지 말고 주식을 팔고 떠나야 합니다. 짝퉁 주식에 투자하려면 도박꾼처럼 진짜로 타짜가 돼야 합니다. 타짜가 될 자신이 없다면 간접투자를 하는 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