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환 하나투어 사장의 스피드경영 백서

상환 하나투어 사장은 스피드 경영 전도사다. 정보기술(IT)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지금의 기업환경에서 속도와 변화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명제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무실에 걸린 공변자무발전(恐變者無發展-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발전이 없다)이라는 글귀를 하루에도 수십 번 씩 되새긴다.“여행업은 글로벌 시대를 선도하는 산업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가까워지고 있는 국제 현실을 몸소 체험하는 업종의 특성상 여행업체 최고경영자(CEO)라면 혁신적인 마인드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경영자가 깨어 있지 않으면 그 기업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죠.”IT산업의 기린아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그가 가장 닮고 싶어 하는 경영자상이다. 빌 게이츠의 명저인 ‘생각의 속도’와 ‘미래로 가는 길’을 박 사장은 수십 번 독파했다. “제가 생각하는 올바른 경영자는 20은 현장 속에서 부딪치며 살아야 하고 나머지 80은 회사의 미래를 구상하는 데 몰두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경영철학을 20 대 80이라는 파레토의 법칙을 적용해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투어는 국내 최대의 도매 전문여행사로 시장점유율(21.0%,2006년 6월 말 기준)이 모두투어(9.3%), 롯데관광(8.8%), 자유투어(7.4%)를 크게 앞서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당분간 하나투어의 독주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하나투어의 이 같은 성공은 박 사장의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장 제일주의를 바탕으로 고객 만족도를 극대화하면서 조직을 운용한 것이 하나투어를 명실상부한 국내 대표여행사로 올려놓은 결정적 요인이다.박 사장이 여행업계에 투신한 것은 1981년 아웃바운드 전문(내국인 해외여행 알선) 여행사인 고려여행사에 입사하면서부터다. 중앙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그는 공채 1기로 입사하면서 여행업계에 발을 디뎠다. 고려여행사에서 그가 맡은 업무는 여행 가이드 외에도 상품 개발, 패키지 투어 개발 등 다양했다. 내공을 쌓기 시작하던 그에게 첫 번째 도전이 찾아왔다. 1989년 내국인들의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자 그는 앞으로 여행업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뜻이 맞는 직장동료들과 의기투합, 모두투어를 창업했다. 당시 모두투어는 특수상품만을 취급함으로써 후발주자라는 한계 속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기존 여행사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뭔가 다른 상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회사 설립과 함께 상품 차별화를 무기로 밀고 나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직접 판매를 하지 않고 소매업체들과의 협력을 돈독하게 했습니다.”하지만 모두투어에서의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는 회사를 키우기 위해선 투명 경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동료들과의 의견충돌로 이어지는 불씨가 됐다. 자회사인 국진여행사를 맡아 회사를 운영했던 그는 결국 1996년 모두투어와 계열분리를 하고 상호를 하나투어로 바꿨다. 초기의 시련은 창업자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물론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려여행사→모두투어→국진여행사를 거치면서 잔뼈가 굵었지만 신생 업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당장 수익이 급하니 저가로 치고 나갈까. 아니면 정공법을 택할까.’ 그는 이런 질문을 수없이 반복했다.그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서 저가시장에 뛰어들기에는 지금까지 지켜온 신조가 허락하지 않았다. 박 사장은 발생되는 적자를 투자비용이라고 생각하고 항공요금과 호텔요금에서의 손실을 감수했다. 싼 호텔과 항공사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눈앞의 이익보다는 먼 미래를 생각했다.그러던 중 예기치 못한 암운이 닥쳤다. 1998년 외환위기는 여행업계 전반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전년 대비 여행객이 95%나 감소했으며 대부분의 여행사들이 80% 정도의 인력을 감축했다. 불과 반년 사이 여행업체 중 50%가 파산했다. 국내 여행업계의 존립기반 자체가 사라질 위기였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현재보다는 미래를 내다봤다. 반 이상이 파산했지만 경기가 회복되기만 하면 분명 호황기가 다시 올 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박 사장은 직원 수를 줄여 당장의 손실을 막기보다는 고통을 분담해 호황기를 대비하자고 호소했다.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 수준을 밝히고 6개월간 급여를 50% 수준으로 줄일 것을 제시했다. 추후 시장이 정상궤도에 오를 때를 대비하려면 현재 인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대신 그는 그전까지 중점적으로 추진해 오던 기업 마케팅 비중을 줄이고 항공권 도매 쪽으로 주력 시장을 바꿨다. 박 사장의 예상대로 6개월 후부터 국내 여행객 규모는 바닥을 치고 반등하기 시작했다. 다른 업체들이 인력난을 호소할 때 하나투어는 선두권으로 치고나갔다. 그는 2003년 중국, 홍콩, 동남아를 강타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쇼크 때에도 인력 감축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강조한다.“우리 회사 매출의 60% 이상을 동남아와 중국시장에서 벌어들였는데 갑자기 사스(SARS)가 발생하니 여행객들이 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물론 인력 감축만큼 매력적인 카드는 없습니다. 결정만 하면 이익이 회복되는 게 뻔히 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이 기회를 통해 회사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신경을 썼습니다. 전산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했고 내부 프로세스 정비도 본격화했습니다. 자발적 휴가 신청을 받아 최장 1년까지 무급 휴가를 줬습니다.”회사 설립부터 도입한 종업원지주제 역시 ‘여행업은 사람이 전부’라는 신념에서 비롯됐다. 2001년에는 스톡옵션제를 도입해 회사 이익을 사원들에게 돌리고 있다. 2006년 10월 현재 직원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33.58%가량 된다. 때문에 하나투어 직원들은 여느 샐러리맨들에 비해 훨씬 많은 보너스를 받고 있다. 물론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그도 돈방석에 올랐다. 현재 그가 보유한 주식 수는 95만 주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513억 원이다(10월 10일 현재 주가 5만4000원).지난해 국내 서점계를 강타했던 ‘블루 오션 전략(김위찬·르네 마보안 공저)’에서는 가치혁신의 중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한다. 이 책에 따르면 가치혁신은 기업활동이 회사의 비용구조와 구매자에게 제공하는 가치 두 가지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곳에서 발생하며 가치혁신의 초석이 되는 블루 오션은 반드시 시장 진입을 빨리 해야 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그런 면에서 볼 때 하나투어는 국내 여행업계의 대표적인 가치혁신기업이다. 전산화의 필요성을 크게 느껴 그는 업계 최초로 실시간 예약 현황 조회가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해 불필요한 비용을 최소화했다. 당연히 이는 고객에게 양질의 상품으로 돌아갔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투어는 업계에서 유일하게 가이드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해 서비스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 2004년부터는 잡 셰어링(Job sharing)제도를 도입해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 제도는 50세부터 일주일에 하루 이상 반드시 쉬고 급여를 적게 받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대신 정년을 65세까지 보장해 고용안정을 도모했다.노사 화합을 위해 하나발전협의회를 구성했고 사내 열린 소리라는 제도를 만들어 직원들이 무기명으로 자신들의 고충과 불만, 궁금증 등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했다. 지난 2000년 국내 여행업체로는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들 중 상당수가 ‘업계 최초’다. 그 중에서도 B2B2C는 하나투어만의 고유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IT기술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 모델은 앞으로 하나투어의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전망한다. 이 모델을 이용하면 고객들은 하나투어닷컴(www.hanatour.com)을 통해 도우미 여행사를 선정하고 이는 곧장 해당 여행사로 통보된다. 해당 여행사는 고객에게 직접 예약상황, 여행정보, 절차 등을 설명한다. 온라인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하나투어는 수수료 비중을 낮출 수가 있으며 당연히 고객은 저렴한 값에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물론 도우미 여행사도 영업 및 마케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하나투어, 여행사, 고객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윈윈(WIN-WIN) 모델인 셈이다. 현재 하나투어닷컴에는 900여 개 여행사가 등록돼 있다.“저는 앞으로 국내 여행업계의 희망을 IT에서 찾을 생각입니다. 국내에 패키지 여행상품이 도입된 것이 일본보다 25년이나 늦습니다. 그래서 일본과 우리의 패키지 여행 시장 규모는 상당한 차이가 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우리의 강점인 IT기술을 잘 접목하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봅니다.”이러한 노고를 인정받아 박 사장은 지난해 미국 CNBC방송이 주관하는 ‘올해의 혁신경영자상’을 수상했다. CNBC방송이 주관하고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이 심사를 맡아 수상자를 선발하는 이 상은 한국인 중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과 박 사장만 수상했다. 박 사장은 앞으로의 시장 상황에 대해서도 낙관한다. “일본 최대 여행사인 JTB의 연 판매액이 13조 원입니다. 우리 회사는 고작 1100억 원인데요. 물론 여행시장 규모만 놓고 보면 일본이 우리보다는 훨씬 큰 시장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다만 커져가는 국내 시장 여건을 보면 하나투어의 잠재력은 아직도 충분하다는 분석입니다.” 현재 하나투어는 전국 5000여 개 소매여행사와 협력관계를 체결했으며 전 세계 22개국에 현지 계열사와 사무소를 개설해 놓고 있다. 직원 수만 1300명이다.증권가에서도 하나투어에 대해 낙관론을 펴고 있다. 하나투어는 한경비즈니스가 조사한 올 하반기 주목할 코스닥 미인주 톱 10에 당당히 선정됐다. 항공사의 판단에 따라 항공편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패키지 여행을 기반으로 한 하나투어의 성장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분석이다. 대우증권 김창권 애널리스트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전년 대비 매출 성장률이 평균 39.9%를 기록한 하나투어의 실적 개선 흐름은 올해도 계속될 것.”이라면서 올 매출은 전년도보다 46.2% 증가한 1623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지금 여행 산업의 호황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공통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나라는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지 17년밖에 되지 않은 초기시장인데, 우리와 상황이 비슷한 나라는 대만입니다. 지난해 대만의 해외여행 인구는 전체 인구의 35.0%였고 우리나라는 19.5%를 기록했습니다. 영국 같은 나라는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해외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해외 여행시장은 고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됩니다.”박 사장은 앞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주력할 계획임을 밝혔다. “중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15억 명 시장의 중심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한·중·일을 잇는 동북아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지난해 일본 법인을 설립했고 중국 내 법인 설립도 진행 중입니다. 또 현재 22곳인 해외 네트워크를 더욱 늘려 2010년까지는 50개로 확대할 방침입니다.”하나투어는 올해 런던증권거래소 상장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상장을 통해 확보하는 자금은 △온라인 비즈니스 모델 구축 △글로벌 경영체제 구축 △인적자원개발 확대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이를 토대로 하나투어는 오는 2020년에 세계 최대의 여행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가다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