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 식당에서 한국인들은 접시에 다양한 음식을 한꺼번에 수북하게 담아 온다. 반면 서양 사람들은 조금씩 담아 오지만 여러 번 다닌다. 문화적 차이다. 한국인들은 밥상에 모든 음식을 한꺼번에 차려 놓는다. 손님은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다. 안주인은 손님이 잘 먹는 음식이 떨어지면 기다리고 있다가 얼른 보충해 놓는다. 서양 사람들은 음식을 한 가지씩 순서대로 내놓는다. 일본인들도 그렇게 한다. 손님은 주인이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다음에 어떤 음식이 나올지 예측할 수도 없다.이런 음식 문화를 보면서 나는 한국인이 유별나게도 손님 중심적이고 개방적이라고 느낀다. 어떤 심리학자는 한국인의 밥상을 보고 “한국인은 스파이가 되기 어려운 민족.”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신의학적으로는 아주 건강한 문화다.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기 때문이다.한국인의 음식문화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바로 찌개다. 밥상 가운데 찌개 냄비가 있고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 형수와 손님들이 각자의 수저로 냄비의 찌개를 떠먹는다. 서양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각자의 입에 들어갔던 수저를 남들이 먹는 찌개 냄비에 담근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비위생적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찌개 냄비의 공동 사용은 한국인의 심성을 보여 준다. 같은 그릇의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는 것을 정신 의학에서는 ‘친근 행동’으로 본다. 우리말에 ‘한솥밥을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가족 관계라는 말이다. 손님과 같은 그릇의 찌개를 나누어 먹는 것은 손님을 가족으로 대접한다는 의미다. 이런 문화 행동을 보면 한국인들은 참 정 많은 민족이다. 말로만 인정이 많은 것이 아니고 문화 자체가 그것을 말해 준다.정신과 의사로서 내 경험에 의하면 마음이 병드는 사람들은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당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를 존중해 주고 인정해 주는 치료자를 만나는 것이다. 솔직하고 예측 가능한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유쾌하고 편해진다. 반대로 뭔가 비밀이 많은 것 같고 반응을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불안해지는 것이 인간이다. 어린애들은 이런 불안이 유난히 심하다. 어머니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는 아이들은 불안이 높은 성격이 된다. 유치원에 가도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한다. 친구들과 노는 사이에 어머니가 달아나 버릴지도 모른다고 예측하기 때문이다. 자란 후에는 걱정을 많이 하는 성격이 된다. 배가 조금만 아파도 ‘위암인가(?)’ 걱정하고 검사를 받는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에게 예측 가능한 분들이어야 한다.특히 어머니들은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 한 여의사는 불안 노이로제였는데 어머니에 대한 아픈 기억을 이야기했다. 유치원 다닐 때 어머니가 데리러 온다고 하고는 나타나지 않는 일이 많았다. 어머니가 정말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서웠다. 또 우등상을 타면 게임기를 사준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번번이 값싼 운동화나 학용품을 사줬다. ‘이번에는 정말 게임기를 사줄까? 아닐 거야. 그래도…?’ 마음속에서 수 없이 많은 기대와 포기를 반복했다. 어머니가 약속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약속해 놓고 어기면 예측 불가능한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사람이 정신적으로 힘들고 병이 나는 것은 정에 굶주려서다.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휴식이고 치료다. 혹시 당신의 주변에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정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가. 오늘 밤 그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