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유명 컬렉터들의 미술품 투자
2차 세계대전 동안 사라진 미술품을 찾아 헤매는 화상(畵商)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전쟁의 피해를 보지 않은 한 조그만 시골마을에 귀한 판화를 많이 가지고 있는 컬렉터(수집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가 그 컬렉터의 집에 도착했을 때 판화들은 이미 자식들에 의해 한 점씩 다 팔려 사라지고 없어진 뒤였다. 자식들은 노안으로 시력을 잃은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대신 백지들을 쌓아 놓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노인은 백지를 아름다운 판화라고 생각하고 한 장 한 장 소중히 꺼내 화상들에게 작품의 유래와 소장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비록 시력을 잃었지만, 작품을 눈으로 보듯 환한 얼굴로 설명했으며 그 얼굴을 보고 있는 화상들은 차마 그에게 그 그림이 백지라는 말할 수 없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컬렉션’이란 책의 내용이다. 볼 수는 없지만 자신이 열정을 가지고 수집한 미술품으로부터 얻는 기쁨은 아마도 노 컬렉터에게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즐거움이었을 것이다.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컬렉터로 하여금 일반 재력가와는 뭔가 다른 이미지를 준다. 미술품이 다른 투자 대상보다 그 매력을 더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와는 달리 완상의 묘미를 맛보면서 투자하는 아트 재테크는 오래전부터 서구의 격조 있는 재산 소유 방식으로 인정받아 왔다. 일례로 리히텐슈타인의 한스 아담 2세와 모나코의 국왕인 알베르 2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베아트릭스 네덜란드 여왕 등 유럽의 군주들의 주요 자산에는 조상 대대로부터 물려받은 미술품 컬렉션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컬렉션은 미술관이나 문화재단을 통해 전시되며, 간혹 유상으로 대형 전시를 위해 대여되고 있다. 한마디로 조상들이 모아준 그림 덕에 후세들은 편안히 부수입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왕족과 귀족들뿐만 아니라 신흥 부유층들도 미술품 컬렉션은 중요한 투자 대상이자 이미지 메이킹의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1870년대부터 네덜란드에서 대형 상점들을 경영하기 시작한 피에터 드리스만의 집안에서 미술품 컬렉션은 가장 중요한 유산이다. 드리스만 집안의 컬렉션은 증조부가 암스테르담 역사에 심취, 가구와 예술품들을 모으면서 시작됐으며 본격적으로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아버지 안톤 드리스만은 피에터에게 3003만 유로(395억 원)어치의 컬렉션을 유산으로 남겼다. 현재 피에터 드리스만은 런던에 살면서 렘브란트의 작품들을 수집하고 있다. 그는 선조들과는 달리 몇몇 장르로 대상을 축소해 수집에 몰두하고 있다. 피에터 드리스만은 미술 시장에 나오고 있는 렘브란트의 그림들, 특히 A급 초상화를 투자 대상으로 정했으며 목표로 정한 작품 5개 중 이미 몇 작품을 소유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공개되지 않은 그의 컬렉션의 가치를 환산할 수 없지만 2000년 12월 런던 크리스티에서 경매에 부쳐진 렘브란트의 작품 ‘노부인의 초상-Potrait of a Lady, Aged 62’ 이 1980만 파운드(약 350억 원)에 낙찰된 것을 보면, 피에터 드리스만의 컬렉션 전략은 100%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그는 아버지가 물려준 3003만 유로의 몇 배에 해당하는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화장품 회사인 에스티로더의 회장 로널드 로더는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I(1907년 작)’을 구입해 화제가 됐다. 1억3500만 달러(1291억 원)라는 경매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은 1983년 나치에게 몰수됐다가 얼마 전 아델레의 상속자들이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법정 투쟁을 벌여 소유권을 되찾은 작품이다. 로널드 로더는 구입 당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그림’이라는 짧은 코멘트로 작품을 소유하게 된 기쁨을 표시했다. 현재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은 로널드 로더가 세운 노이어 갤러리에 소장돼 있다. 이번 구스타프 클림트 그림의 매입으로 에스티로더는 유럽과 미주 지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컬렉터 CEO를 둔 문화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홍보 효과를 톡톡히 얻고 있다.맨손으로 뛰어든 젊은 컬렉터가 미술 시장에서 승리한 경우도 있다. 29세의 릭 라인킨(Rik Reinkin)은 요즘 유럽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컬렉터 중 한 명이다. 16세 때, 동네에 있는 조그마한 갤러리에서 작은 크로키를 용돈을 모아 구입한 것이 첫 소장품이라는 소박한 청년의 컬렉션은 2005년, 세계 10대 아트 페어에 속하는 쾰른 아트페어 주최 측의 초청으로 무상으로 제공된 부스에서 소개됐다. 독일의 현대 미술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는 그의 컬렉션은 컨템퍼러리 미술의 약진과 함께 매해 그 가치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으며 세계 미술관들의 끝임 없는 러브콜을 받고 있다.지금까지 소개한 해외 컬렉터들의 성공적인 컬렉션 사례는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규모가 커져가는 한국 미술 시장을 감안한다면 컬렉션의 가치 상승폭은 점점 더 높아져 갈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근래 한국 미술 시장에서도 박수근 작품이 9억 원에 낙찰되는 등 미술품 초기 투자 자본이 커져가고 있다. 또한 해외 작품에 대한 투자도 점점 높아지고 있어 이번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 때 소개된 장 미셸 바스키아의 고가 작품이 현재 컬렉터와 가격 협상 중이라고 한다. 이런 고가품의 작품을 구입할 때는 자신의 컬렉션 방향과 향후 관리·운영에 대한 방향을 정해 놓아야 한다. 멀리 볼수록 더욱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 바로 미술품 투자이기 때문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