련된 옷맵시에 깔끔한 외모의 P 사장님. 하지만 그의 이런 이미지는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단번에 깨지고 말았다. 웨이터가 빵을 가져오자 대뜸 접시 위에 올려진 버터나이프로 빵을 톱질하듯 자른 후 버터 한 조각을 과감히 빵 사이에 바르고 꼭꼭 야무지게 눌렀다. 하얀 클로스가 깔린 테이블은 식사 시작 전에 이미 지저분해졌다. 그가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이 레스토랑 빵 맛이 서울에서 최고 같아요! 하 하 하.”라며 흐뭇해한다. 이 상황이 과연 P 사장에게만 일어나는 일일까.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녀에게 식빵에 잼 또는 버터를 발라 건네 줄 때도 마찬가지다. 매너란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는 예절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사소한 행동에도 조심해야 한다. 무의식중에 부모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녀들이 자연스레 따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버터나이프는 반드시 빵에 버터를 바를 때만 사용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그 외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빵은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기 때문에 빵에 칼을 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빵은 항상 한입 크기로 손으로 뜯어서 한 조각씩 먹는다.미각적인 측면에서도 미리 빵을 조각내 접시 위에 둔다면 분명 건조해질 것이다. 그리고 버터를 바르거나 올리브 오일에 담그는 것도 입 안에 넣기 직전에 하는 게 좋다. 빵 전체에 버터를 바르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야 빵을 먹은 후 손에 묻은 기름기를 닦아내는 행동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게 될 것이다.빵 껍질이 딱딱한 경우라면 빵 부스러기가 테이블에 떨어져 지저분해지기 쉬우므로 되도록 빵 접시 위에서 뜯는 것이 좋다. 식탁 위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손으로 훔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자신의 옷에 흘린 빵가루는 털어낼 수 있다. 그리고 빵이 담긴 바구니는 테이블을 따라 시계 방향, 즉 자신의 왼쪽에 앉은 사람에게 전달한다.만약 서양식 정찬에 갔다면 빵의 종류는 하드 롤, 소프트 롤, 호밀빵, 바게트 등이 다양하게 구비돼 있을 것이다. 머핀, 토스트 등은 조식용 빵이므로 점심이나 저녁 때 요구하면 안 된다. 오찬이나 만찬 때 제공되는 빵은 달지 않아 버터와 잘 어울리므로 잼은 요구하지 않는 것이 좋다.이렇게 제공되는 빵은 대부분 질기고 딱딱한데, 오래 씹으면 침샘의 분비가 왕성하게 되고 컬컬한 입 안이 부드럽게 돼 식욕을 돋우게 된다.서양식 코스 요리에서 빵을 먹는 것은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 코스 사이에 입 안에 남아 있는 음식 맛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연회에 가면 이미 빵 접시에 빵이 하나씩 준비돼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 빵이 첫 코스부터 메인 요리까지 함께 할 빵이다. 물론 웨이터에게 더 갖다 달라고 할 수도 있다.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최고의 품질을 지키기 위해 직접 빵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자기 식당의 명성에 걸맞은 빵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이 점을 감안해 각 식당의 빵 맛을 음미해 보는 것 또한 식사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김치 맛으로 그 집의 음식 맛을 평가하듯 서양에서는 식사와 함께 제공되는 빵 맛이 그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빵 하나를 집는 작은 매너에도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안다면 테이블 매너를 거창하고 부담스럽게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