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일식당 ‘와라이’

박하면서도 아름다운 도예작품 같은 그릇에 가지런히 놓인 각양각색의 신선한 생선회.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손대면 흐트러질 것 같아 조심조심 젓가락을 옮겨본다. 두툼하고 큼직하게 썰어놓은 사시미가 입에 들어가는 순간 눈 녹듯 녹아버린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흐른다.서울 성수대교 남단에 있는 일식 레스토랑 ‘와라이’. ‘미소 짓다’란 뜻이다. 척 보기에도 정성이 듬뿍 들어간 요리는 손님을 기분 좋게 한다. 옥호처럼 음식을 맛보고 미소 가득한 채 문을 나설 수 있을 것 같다. 눈으로 반하고 맛으로 감동받는다는 일본 요리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와라이의 맛을 책임지고 있는 박지수(37) 조리장은 신라 롯데 리츠칼튼 등 국내 굴지의 호텔들을 거쳐 일본 도쿄 오쿠라 호텔에서 정통 일식을 배워 왔다. 남다른 요리 철학을 가지고 있을 터.“일식은 품위와 재료, 방식에 따라 다양한 레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최고의 일식 이라 꼽히는 ‘에도마에 스타일’의 일식을 고수합니다. 에도마에 스타일의 스시는 생선 고유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반드시 8시간 정도 숙성한 생선을 쓰고 소스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소스를 써야 할 때는 해당 생선을 여러 번 삶은 물을 사용합니다.”박 조리장은 조리 스타일뿐 아니라 요리 재료로도 여타 일식집과 차별화를 시도한다. 계절에 맞지 않는 재료를 써야 하는 요리는 과감히 메뉴에서 삭제하고 철저히 제철 생선을 고집한다. 제철 생선이라야 영양이 풍부하고 지방이 많아 맛도 좋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는 민어나 우럭이 제철이고 요즘은 전어와 문어가 제철이라고 귀띔한다.“여름 광어는 고양이도 안 먹는다는 일본 속담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제철 생선이 아니면 잘 팔리지 않을 정도로 재료 선택에 엄격합니다. 음식은 재료로 판가름 난다고 믿기 때문에 매일 아침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 엄선한 생선만을 사용합니다. ”2004년 오픈한 이 집은 어느새 미식가들 사이에 ‘일식 제대로 하는 집’으로 소문이 났다. 지난 8월 이 같은 고품격 일식집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히기 위해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했다. 룸을 10개로 늘리고, 테이블은 3개로 줄였다. 대로를 마주하고 앉게 되는 테이블 손님들을 위해서는 이글루 모양의 커다란 갓으로 주위의 시선을 차단했다. 한지로 만든 갓에 조명이 켜지면 아늑하면서도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 커플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다.이 집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스시바’다. 주방과 붙어 있는 스시다이(주방장 앞에 놓인 식탁)의 끝부분을 막아 룸으로 만든 공간이다. 주방장과 마주하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바의 기능과 주위의 시선이 차단되는 룸의 기능을 합친 것. 하루에 한 팀만 들어올 수 있으며 적어도 2주 전에 예약해야 한다. 그날그날 박 조리장이 알아서 만들어주는 스시 메뉴를 코스대로 맛볼 수 있다. 정·재계 인사나 미식가 동호회원 등이 주로 찾는다. 스시바에서만 하룻밤 매출이 200만~300만 원을 웃돈다고.이렇듯 조리장의 역할이 큰 만큼 박 조리장은 일본을 한달에 두세 번씩 오가며 새로운 요리를 배워 온다. 최근에 배워온 ‘전복내장구이’는 요즘 손님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비린내가 심해 잘 먹지 않는 전복 내장을 구이로 만들어 비린내를 싹 없앴기 때문이다. 이 밖에 추천 메뉴는 조리장이 그날그날 재료를 정해 만드는 ‘조리장 회석(15만 원)’, 송이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서비스하는 ‘송이코스(15만 원)’ 등이 있다. 또 모둠초밥과 도미머리조림, 사시미 정식 등도 인기 메뉴다. 모둠초밥에는 구운 참치 뱃살, 구운 광어 지느러미 살, 일본 매실 소스와 생마 등이 재료로 쓰이는데 그 맛이 새콤한 초밥과 어우러져 깔끔하고 색다르다. 여름내 잠자고 있던 혀의 미각이 하나하나 되살아나는 듯해 입가에 미소가 가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