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시장 ‘족집게’예측 김영익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

신증권 김영익 리서치센터장(상무)은 현재 증권가에서 가장 각광받는 애널리스트다. 9·11테러 전 주가 급락을 예견했고, 2002년 대세 상승장이 온다고 예측했으며 올해 초 시장 참가자들이 모두 장밋빛 전망에 열광할 때 홀로 주가 하락을 예측, 족집게처럼 맞췄기 때문이다. 그가 예측치의 정확성을 스스로 평가한 결과, 1년 전망의 경우 85%란 경이적인 적중률을 보였다고 한다.주가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하는 모델은 만들 수 없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처럼 높은 예측 성공률을 기록했을까. 비밀은 그가 통계학적 방법론을 사용해 독자적으로 개발한 주가 예측 모델에 숨어 있다. 신통한 예측력의 원천을 알기 위해 우선 그 모델부터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현재까지 5가지 모델을 개발했습니다. 석·박사 과정에서 계량경제 공부를 많이 했는데 여기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주가를 예측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모델을 만들어봤습니다. 수많은 시도 끝에 5가지 정도 모델을 만들었고 이 가운데 경상수지와 유가를 적절히 결합한 모델이 주가를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나머지 4가지보다 이 모델의 정확성이 훨씬 높습니다.”실제 우리나라는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경상수지와 유가가 주가의 움직임을 미리 보여주는 선행지표로서 높은 설명력을 갖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가 나면 환율이 떨어지고 물가와 금리가 안정되며 유동성이 불어나 시차를 두고 주가가 오를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유가가 오르면 수입 제품 가격과 물가가 올라 주가에 악영향을 끼친다. 김 상무는 이를 통계적으로 검증해 독특한 모델을 만들었다.“경상수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주가보다 17개월 정도 선행하는 지표였고 유가는 12개월 정도 선행했습니다. 또 경상수지는 늘어날수록 주가가 오르는 양의 상관관계를, 유가는 오를수록 주가가 떨어지는 음의 상관관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변수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가 차이가 났습니다. 그래서 각 변수에 가중치를 부여해 주가 예측 모델을 만들었습니다.”두 변수의 가중치를 묻자 그는 ‘영업 비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가 스스로 평가해본 결과, 이 모델의 예측 성공률은 월별 전망의 경우 68%, 1년 정도 추세 예상은 85%에 달했다. 물론 시간에 따라 조금씩 모델을 수정하고 있다고 한다. 일례로 주가보다 17개월 정도 선행했던 경상수지가 최근엔 13개월 선행하는 것으로 나타나 시차를 조절하기도 했다.김 상무는 이 모델에 기초해 주가를 전망한 결과, 올해 4분기 초에 조정을 거치지만 내년 1분기까지 주가가 다시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최근 주가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데요, 4분기 초에 좋지 않은 경제지표가 발표될 경우 투자 심리가 위축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제 모델도 4분기에 주가가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말과 내년 1분기까지는 강세가 이어질 것 같습니다. 특히 연말 연초에 코스피지수가 1500을 돌파하는 등 좋은 장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내년 2분기에는 조정이 예상됩니다. 물론 대세 상승 국면의 일시적 조정이라 1분기에 현금화해 2분기에 싼 값으로 주식을 사는 전략이 좋습니다.”그는 당분간 정보기술(IT)과 자동차, 금융 관련주가 상승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반도체 경기가 서서히 좋아지고 있어 IT 관련주의 수혜가 예상됩니다. 또 현대자동차의 미국 시장점유율이 상승세인 데다 국내 판매량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자동차 관련주도 주목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환율이 떨어지면서 내수 관련 업종의 수혜가 예상되는 가운데 가장 큰 혜택을 받는 금융 업종이 주가 상승을 이끌어갈 것입니다. 나머지 내수주들의 경우 차별화가 진행될 것 같습니다. 일례로 건설업 전반은 어려움을 겪겠지만 대형 우량 업체의 이익은 더 늘어나는 양극화 현상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따라서 업종보다는 기업별 접근이 필요합니다.”그는 특히 2009년 주가지수가 3000까지 오를 것이라고 과감하게 예측했다.“장기적인 주가 예측은 경제성장률과 환율, 국고채 수익률을 변수로 한 모델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률 등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 불확실성이 더 높은 모델이지만, 나름대로 제 예측이 맞는다고 가정하면 2009년 주가가 2800선까지 오를 것으로 보이며 이후에는 하락세를 보일 것 같습니다. 2800 정도로 예측하니까 약 3000까지 오를 것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합니다. 경제성장률은 연 4.5% 정도로 추산했고 환율은 내년 평균이 920원, 2008년부터는 800원 대가 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또 국고채 수익률은 내년 5.2%, 이듬해에는 5.3%, 2009년에는 5.8% 정도로 전망했습니다.”김 상무는 예측 모델뿐만 아니라 주위 환경도 이런 전망의 현실화 가능성을 높인다고 말한다.“미국 경제의 버블이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0%이고 미국인의 소비가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미국 경제가 성장세를 보인 것은 주택 가격이 오르고 이에 따라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 일반인들의 소비가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금융회사 부채가 너무 높은 수준인 데다 앞으로 주택 소비도 둔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2009년 이후 미국 경제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경기가 침체되면 중국 한국 등 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도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전 세계가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습니다.”하지만 2009년 이후 불황이 아주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지금 한국의 상황이 80년대 중반의 일본 상황과 여러 가지로 비슷합니다. 40대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수준인데 2010년께부터는 40대 인구 비중이 점점 축소되고 세계 경제도 나빠지기 때문에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보다는 버블이 덜 심각한 수준이고, 한국은행 등 정책당국도 일본의 과거 사례를 잘 연구했기 때문에 효과적인 대응책을 찾아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일본보다는 빨리 불황에서 탈출할 것 같습니다. 4~5년 정도면 불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 불황이 마무리되면 세계 경제의 축이 미국에서 중국과 인도로 급속히 이동할 것 같습니다.”2010년 안팎까지 큰 거품이 형성됐다가 이후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질 것이란 전망은 이미 ‘버블 붐’ 같은 책을 통해 제기됐었다. 여기에 김 상무는 통계적 모델을 통해 더 정교한 예측을 시도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런 미래 전망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지난 3년 동안은 주식이나 아파트 등 어떤 자산을 사도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사실 큰 리스크 없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지요. 물론 앞으로 3년간은 주식과 부동산 값이 모두 오를 것입니다. 이후 주가가 2800 이상 오르면 버블 영역에 들어선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버블이 생겼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주식과 부동산의 비중을 줄이고 대신 안전한 국채에 투자해야 합니다. 세계 경제가 함께 어려워지기 때문에 미국 등 외국에 투자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많은 강남 부자들이 미국에 집을 샀는데 제가 볼 때는 조만간 집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버블이라고 판단되면 가급적 모든 자산을 현금화해야 합니다. 물론 거품 붕괴 후 자산 가격이 폭락했을 때에는 새로운 매입 기회를 저울질해야겠죠.”그의 모델이 아직까지 높은 적중률을 보여 왔지만 과거의 성과가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경제 체질이 바뀌고 증시가 선진화할수록 모델을 통한 예측은 더 힘들어진다. 그도 적잖이 고민하고 있다.“선진국으로 갈수록 모델에 의한 설명력이 떨어집니다. 일본에서도 80년대 중반까지 저와 같은 모델로 예측했던 사람이 많았는데 이후에는 주가가 안정적으로 오르면서 이런 모델이 필요 없어졌다고 합니다. 경제 구조가 선진화돼 증시도 안정적인 상승세를 보일 경우 제 모델은 필요 없어질 것입니다. 대신 개별 기업, 좋은 종목을 찾는 게 훨씬 중요해지겠죠.”김 상무는 입지전적 인생 역정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초등학교 졸업 후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서울의 명문 사립대를 갈 수 있었지만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지 못해 눈물을 머금고 지방대학을 다녔다고 한다. 대신증권 입사 후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하는 등 악착같이 일해 늦은 나이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최고령 베스트 애널리스트로도 이름을 올렸다.“이병기 시인의 ‘낙하’라는 시를 좋아합니다.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자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로 시작하는 시인데요, 사실 제 나이(49) 또래들은 애널리스트 평가 대상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후배들이 애널리스트 순위에서 좀 빠져달라고 말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직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다.’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합니다. 좋은 시절에 좋은 모습으로 물러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