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CEO’ 구영배 G마켓 대표의 성공비법
라인 비즈니스 산업의 귀재 G마켓 구영배 대표(40)에게 2006년 6월 29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날로 기억될 것이다. 조그만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이날 세계 정보기술(IT) 기업들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나스닥(NASDAQ)에 당당하게 입성했기 때문이다.한국경제신문을 비롯한 국내외 언론들은 이날 G마켓의 상장 소식을 앞 다퉈 보도했다. G마켓의 상장 규모는 911만9565주로 공모가는 주당 15달러25센트. 국내의 각종 신문, 방송들은 아이디어 하나로 우리나라 유통사를 새롭게 쓴 G마켓의 성공 스토리를 긴급 소식으로 전했다. 상장된 지 1주일이 지난 7월 5일 구 대표는 나스닥 상장 기념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동안 워낙 언론의 노출을 꺼렸던 터라 기자회견장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당시 기자들은 국내 유통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했다.“G마켓을 세계적 온라인 마켓플레이스로 성장시키겠습니다. 우리 회사의 경쟁 상대는 국내 업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앞으로 e베이(e-Bay)를 경쟁자로 삼겠습니다.”언론에 나타나기를 꺼리던 ‘은둔의 CEO’ 입에서 나온 첫 마디치고는 꽤나 도발적이었다. 상대가 세계 최고의 닷컴기업 중 하나인 e베이라니….그러나 구 대표를 지켜본 사람들은 그를 ‘은둔의 CEO’로 보기보다는 ‘준비된 CEO’로 봐 달라고 말한다. 그는 항상 국내 경쟁자의 생각을 앞서갔다. 나스닥 상장만 해도 그렇다. 무서운 신예로 주목받던 G마켓이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당시 업계에선 ‘저러다 사고내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과연 할 수 있을까.’ 하지만 6월 15일부터 28일까지 홍콩 싱가포르 런던 뉴욕 등지를 돌며 연 로드쇼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기관투자가들을 직접 만나 G마켓의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할수록 관심은 높아만 갔다. 결국 G마켓의 공모가는 예상 공모가 밴드인 13달러25센트~15달러25센트 중에서 최고가인 15달러25센트로 결정됐다.구 대표의 ‘e베이 선전포고’는 정작 해외에서 주목받았다. 미국 투자전문 뉴스채널 ‘인베스트 비즈니스 데일리’는 G마켓을 회사 규모는 작지만 e-커머스 시장에서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기업으로 소개하고 온라인 거래 시장의 지존으로 군림해 온 e베이가 향후 1년 내지는 1년 6개월 내 강한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했다.G마켓은 인터파크 사내 벤처에서 출발했다. 구 대표가 G마켓호의 선장으로 모험에 나선 것은 이기형 인터파크 회장과의 개인적인 인연에서 비롯됐다. 구 대표(자원공학과)와 이 회장(천문학과)은 서울대 재학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던 선후배 사이. 평소 구 대표의 추진력과 아이디어를 높이 샀던 이 회장은 그에게 인터파크 입사를 권유했다. 입사 전까지만 해도 구 대표는 미국계 석유회사인 슐럼버저(Schlumberger)에서 유전을 탐사, 개발하는 일을 해왔었다. 그러던 그가 IT맨으로 변신한 것은 이 회장의 권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자신이 IT 기업들의 무궁한 잠재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인터넷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무한한 보고(寶庫)”라고 말한다. 석유를 찾아 지구촌 구석구석 찾아다니던 것에 비해 훨씬 빠르게 승부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인터파크에서 그가 처음 맡은 것은 G마켓의 전신인 구스닥 태스크포스팀을 관리, 운영하는 업무였다. 당시 구스닥은 역경매 방식으로 성공을 거둔 옥션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한 인터파크의 사내 벤처였다. 구스닥(GOODSDAQ)은 모든 상품(Goods)을 주식시장(KOSDAQ, NASDAQ)에서 거래하듯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야심 차게 준비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인터파크의 ‘기대주’ 역할을 할 줄 알았던 구스닥은 돈을 벌기는커녕 몇 년이 지나도록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앉아서 까먹은 돈만 수억 원. 급기야 인터파크는 구스닥을 2000년 4월 계열에서 분리했다. 모기업인 인터파크가 밀어준 돈은 10억 원. 그러나 별다른 대안 없이 모기업에 떨어져 나온 탓에 돈을 까먹기는 마찬가지였다. 계열분리 3년 만에 모기업에서 밀어준 10억 원 중 8억 원을 날렸다. “당초 엄청난 기대를 했지만 준비하면 할수록 현실의 벽이 느껴졌습니다. 기존 업체들과 경쟁력이 없었어요. 점점 직원들 월급을 주는 데도 부담이 느껴졌습니다. 때문에 몇 개월간 직원들에게 월급 대신 주식을 주기도 했습니다.”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궁즉통(窮則通)이라고 했던가.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순간 그의 눈에 온라인 유통 시장의 틈새가 보였다.“설립 당시 온라인 거래 시장은 인터넷 쇼핑(B2C)과 ‘옥션’으로 대표되는 경매시장(C2C) 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넷 쇼핑몰들은 규모는 크지만 가격 경쟁력은 높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러기엔 경매 업체들의 거래 역시 개인 간 거래에 국한됐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죠. 전 분명히 둘 사이에 틈새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동대문 의류상인들은 온라인 판매에 대한 욕구는 크지만 진입이 쉽지 않습니다. 물건 하나하나를 일일이 등록하고 판매하기에는 기존 온라인 거래 방식이 너무 복잡합니다. 물론 지출되는 비용도 많고요.”구 대표는 물건을 공급하는 판매자에게는 즉시구매, 흥정하기, 공동구매, 경매 등 다양한 거래 방식을 제시했다. GSM(G-market Sales Manager)이라는 원스톱 운영방식을 도입해 최소의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게 했다. 이를 통해 판매자들은 물품 관리, 가격, 재고관리, 배송 관리 등이 모두 가능해졌다.반대로 소비자에게는 마일리지, 쿠폰, G스탬프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시장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이때부터 구 대표의 아이디어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행운 경매, 해외 배송, 후원 쇼핑, 쇼핑 웹진 등 기존 쇼핑몰과 차별된 콘텐츠를 보강했다.이 밖에 오늘날 G마켓의 성공 신화를 쓰는데 1등 공신을 한 스타브랜드 숍도 모두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지난해 7월 가수 이효리를 내세워 연 스타 숍은 판매자, 소비자 모두에게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온라인을 통해 물건을 공급하는 업체들에 이효리 등 스타를 모델로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는 십시일반의 개념을 도입했다. 개별 판매자들에게 소정의 광고비를 걷어 아이템을 기획한 것. 의류는 한 벌에 50만 원, 액세서리는 20만 원, 신발은 20만 원이었다. 당연히 판매자는 100만~200만 원의 광고비를 내고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스타 숍이 인기를 얻자 많은 연예인들이 직접 상품을 기획해 스타 브랜드 숍을 열고 있다.이 밖에 G마켓은 콜 센터를 대폭 늘려 고객과 판매자 간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했고, 미국 일본 중국 등 전 세계 40여 개국으로 물건을 배송했다. 등록비, 카드 수수료, 미니 숍 등록비를 무료로 하고 판매수수료는 업계 최저가 수준으로 낮췄다. 유통 업계는 G마켓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모방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연결됐다.’며 찬사를 보낸다.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은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2004년 12월 G마켓은 미국 벤처캐피털 업체인 오크인베스트먼트사에 지분 30%를 넘기는 대가로 760만 달러(80억 원)의 외자를 유치했다. 지난 6월에는 야후(Yahoo)가 오크인베스트먼트로부터 G마켓 지분 10%를 매입했다.“야후 공동 창업자인 제리 양을 만나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했더니 큰 관심을 보이더군요. e베이가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기반을 바탕으로 포털로 성장하고 있는 것에 긴장한 야후는 마땅한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업체를 찾고 있었죠.” 당시 야후는 10%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6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로써 장외에서 거래된 G마켓 주가가 1년 반 만에 무려 23배나 폭등한 셈이다.G마켓은 매출이 급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지난 2004년 2224억 원에서 지난해 1조809억 원으로 4배 이상 뛰었고, 올 상반기는 벌써 1조129억 원을 기록해 지난해 전체 매출액에 육박했다. 이대로라면 연내 2조 원 매출도 무난하다는 평가다. 물론 G마켓 성공에 대해 전자상거래가 발전하면서 국내 온라인 마켓시장이 4조 원 대로 성장했기 때문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경쟁사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눈부신 발전이다.G마켓의 성공 덕분에 구 대표도 백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상장 이전 장외에서 거래되는 G마켓의 주가는 주당 100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8월 26일 현재 주가는 13달러96센트(1만3428원). 전체 지분의 5.54%를 보유하고 있는 그의 주식평가액은 368억2822만 원으로 추산된다. 상장 전 2억7146만 원이었던 주식이 나스닥 상장과 동시에 135배 뛰어오른 셈이다. 설립 초기 월급 대신 주식을 받았던 직원들은 모두 돈방석에 올랐다.이뿐만 아니라 G마켓에서 물건을 팔던 영세 판매업자들도 하루아침에 억대 사업가로 변신했다. 은행에 다니다 조기 퇴직하고 우울증에 빠져 있던 김모 씨는 어느 날 딸이 G마켓에서 물품을 구입하는 것을 보고 컴퓨터 부품 판매업을 시작해 지금은 직원 2명을 둔 어엿한 가게 주인이 됐다. 이 밖에 의류공장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구해 월 1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티나티나’, 재치 만점의 동영상 상품 설명으로 대박을 낸 ‘주인장닷컴’ 등은 모두 G마켓이 만들어낸 ‘스타 사장들’이다.구 대표가 가장 천착하는 경영 화두는 ‘스피드’다. 그는 “아이디어 빼고는 남다를 게 없다.”면서 “그러나 ‘스피드’ 만큼은 회사 경영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단 시일 내 수많은 아이템을 마련한 것도 신속한 의사 결정이 밑바탕이 됐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직원들은 누구나 사장실로 향한다. 이것이 ‘G마켓 식’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번 결정된 일은 무모하리만큼 저돌적으로 추진한다. 빠르면서도 폭넓은 의견수렴에 구 대표의 추진력이 시너지를 이루면서 오늘의 회사를 만들었다.구 대표는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편이다. 인터뷰를 하려면 수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9시가 넘어야 퇴근하고 술은 입에 대지도 않는다. 특별한 취미도 없다. 전형적인 일벌레다.G마켓은 글로벌 회사로 성장하기 위한 야심 찬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온라인 거래 시장에서는 보험, 결혼컨설팅, 장례 분야 등 판매상품이 더욱 다양화되는 추세입니다. 음악 영상 등 무형 상품의 거래를 어떻게 활성할지 연구 중입니다.”G마켓은 내년 상반기 중 일본 시장에 진출키로 했으며, 중국 진출도 타진 중이다. 또 나스닥 상장을 통해 모은 자금을 토대로 인수합병(M&A)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온라인 마켓에서는 △누구나 어떤 품목이든 팔 수 있어야 하는 데다 △사용자 사이의 거래에 어느 누구도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두 가지 원칙이 지켜지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인종과 종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자유롭게 거래하는 세상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시장이라고 할 수 있죠. G마켓이 꿈꾸는 시장도 이와 같습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