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자들의 재산지키기 백태

혼반지만 150만 달러, 크리스찬디올이 550시간에 걸쳐 손으로 직접 제작한 웨딩드레스가 20만 달러, 결혼식 피로연장을 새로 꾸미는데 4200만 달러.’언뜻 보아도 웬만한 부자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할 결혼식 비용 내역서다. 주인공은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작년 부자들의 겨울 휴양지인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열린 결혼식의 지출 내역이다. 뉴욕 맨해튼의 중요한 건물을 거의 장악하다시피 한 트럼프인 만큼 결혼, 그것도 슬로베니아 출신 속옷 모델인 멜라니아 크나우스와의 세 번째 결혼에 이만한 돈을 쓰는 것은 일도 아닐 듯싶다.그렇다면 트럼프는 결혼식에 든 돈을 모두 부담했을까. 답은 ‘노(No)’다. 결혼식 직후 밝혀진 것만 봐도 150만 달러짜리 반지는 대중에 공개하는 조건으로부터 반값만 치렀다. 요리와 꽃장식 등도 모두 협찬을 받아냈다. 피로연장도 어차피 그 자신의 호텔이니만큼 또 다른 시설 투자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그가 실제 부담한 돈은 알려진 것처럼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란 게 관계자들의 추산이다(물론 일반 부자들에 비해선 엄청나게 많은 액수겠지만).미국 부자들. 그들은 상당수가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을 비롯한 대부분의 부자들은 당대에 부를 일군 사람들이다. 그래서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은 미국의 발전을 부추기는 최고의 동력으로 지적돼 왔다.그렇다면 아메리칸 드림은 지금도 유효할까. 물론이다. 잘만 하면 당대에 세계 최고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미국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 기존의 미국 부자들의 ‘기득권 지키기’가 여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부자들은 흥청거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과감한 투자보다는 자산 지키기를 선호한다. 편법을 써가며 자식들에게 부를 상속하지는 않더라도 합법적인 방법으로 자산을 물려주는데 골몰한다. 자산을 물려주지는 않더라도 자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애쓴다.미국 부자들. 그들은 자선의 대명사이지만, 우리네 부자와 전혀 다르지 않은 부자들이기도 하다.작년 미 프로풋볼리그에서 최우수선수가 돼 화제를 모았던 하인스 워드. 그의 부인은 그와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하인스 워드는 모범생답게 학창시절 사귄 여자친구와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재미있는 것은 워드의 부인이 ‘혼전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점. 워드의 어머니 김영희 씨는 결혼 전 두 사람을 불러 ‘이혼할 경우 위자료를 가져가지 않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계약서를 작성토록 했다고 한다. 좋게 해석하면 ‘이혼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나쁘게 풀이하면 거액을 벌 워드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서라고도 할 수 있다.미국에서 이혼은 패가망신의 지름길로 통한다. 엄청난 위자료, 평생을 책임져야 할 양육비 등. 이혼 한번 잘못 하면 평생을 허우적대며 살아야 한다. 부자도 예외가 아니다.‘헤지펀드 제왕’ 조지 소로스와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전 회장 잭 웰치가 대표적이다. 소로스는 두 번 이혼했다. 그는 25년 동안 결혼생활을 한 두 번째 부인 수전과 작년 이혼했다. 위자료는 8000만 달러. 반면 웰치는 13년 동안 결혼생활을 한 전 부인 제인 비슬리에게 무려 1억8000만 달러를 위자료로 지급했다. 웰치보다 훨씬 부자이고 결혼생활 기간도 길며 자식까지 낳은 소로스가 위자료를 1억 달러나 줄이는데 성공한 셈이다. 아무리 부자라도 이혼 한번에 1억 달러가 왔다 갔다 한다는 건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의 ‘성패(?)’를 가른 것은 다름 아닌 ‘혼전 계약서’다. 두 사람간의 계약서가 실정법에 우선한다는 게 미국의 판례이고 보니, 천문학적인 돈을 가진 부자들뿐만 아니라 웬만한 사람들조차 혼전계약서를 쓰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화려한 결혼식의 주인공 트럼프는 ‘트럼프의 부자 되는 법(How to Get Rich)’이란 책에서 ‘아무리 사랑해도 혼전계약서(Pre-nuptial Agreement)를 쓰라.’고 권했다. 결혼 전 두 사람 사이의 재산 관계나 결혼을 하면서 지켜야 할 조건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라는 조언이다. 특히 이혼 후 재산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서 꼼꼼히 적는 게 기본이라고 권하고 있다.이렇게 보면 미국 부자들의 재산 지키기는 결혼 전에 이미 이혼까지 가정한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 부자들에겐 ‘이혼을 잘 하는 것도 부자로 남을 수 있는 한 방법’쯤 된다고 봐야 한다.미국의 아이비리그는 동부에 있는 하버드대 등 명문 8개 대학을 가리킨다. 한국에서 이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뉴스가 될 정도로 들어가기 힘들다. 그런데 만일 입학생 중 3분의 1이 실력이 아닌 특혜로 입학하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불행히도 그런 의문이 제기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대니얼 골든 기자는 미국의 명문대학이 거액의 기부를 받거나 학교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부유층과 정치인 등 유명인들의 자제를 특혜 입학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특혜 입학생이 명문대 입학생 전체의 3분의 1에 달한다는 게 골든 기자의 주장이다.골든 기자는 듀크대학의 경우 거액의 기부금을 받아 학교재정상태를 튼튼히 하기 위해 부유층 자제들을 집중적으로 유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적 패션 업체인 폴로 랄프로렌의 설립자인 랄프 로렌을 비롯해 경제계 거물들 자제가 이렇게 듀크대에 들어갔다는 것. 그런가하면 브라운대는 존 F 케네디 등 역대 대통령 2명과 민주당 대통령 후보 3명, 아카데미상 수상자 7명의 자제 등을 편법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이렇듯 여느 나라 부자와 마찬가지로 미국 부자들의 자녀들도 태어날 때부터 금 숟가락을 입에 물고 나온 사람들이다. 비단 대학뿐만 아니다. 어릴 때부터 그들은 철저히 관리된다. 뉴욕에 있는 ‘호러스만 유아원’은 한 해 학비만 2만6000달러에 달한다. 그런데도 자리가 없어 들어가지 못한다.몇 년 전 씨티그룹의 통신 업종 애널리스트인 잭 그러브먼은 자신의 쌍둥이 자녀를 맨해튼 92번가의 명문 ‘Y 프리스쿨’에 입학시키기 위해 당시 그룹 최고경영자(CEO)인 샌디 웨일과 모종의 거래를 했다. 그러브먼은 웨일 회장이 이사직을 갖고 있는 AT&T 투자등급을 올려줬고, 웨일은 그 보답으로 ‘유아원의 하버드’로 알려진 ‘Y’에 100만 달러 기부를 약속해 그러브먼 아이들의 입학 길을 열어줬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섶을 지고 불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우리네 부모들에 못지않은 미국 부자들이다.그러나 미국 부자들의 ‘자식 사랑’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철이 들었다 싶으면 부자 조기 교육을 한다. 짧게는 1주일, 길게는 5~6년씩 ‘부자 조기 교육기관’에 위탁한다. 워싱턴DC의 월스브리지파트너즈는 5~6년간 장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교육비는 가족당 15만 달러. 내용도 재미있다. 아이들로 하여금 방학 때 자신의 집 앞에 가판대를 세우고 음료수를 팔도록 한다. 방학이 끝난 후 개인별 판매 결과와 원인을 분석한다. 원가비율, 마케팅 방법 등이 논의된다.미국 부자들이 모든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건 아니다. 성인이 된 자녀들에겐 용돈도 주지 않을 정도로 엄격한 부자들도 많다. 그러나 이들도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는 않더라도 ‘돈을 잘 벌고 잘 관리하며 사는 방법’을 물려주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다.미국에서 재산이 10억 달러가 넘는 억만장자(billionaire)는 작년 현재 374명(포브스 집계)에 달한다. 20년 전인 1985년엔 14명에 불과했으나 크게 늘었다. 이들을 포함한 상위 400명 부자의 재산은 1조1300억 달러에 달한다. 캐나다의 한해 국내총생산(GDP)보다 많고, 스위스 폴란드 노르웨이 그리스 4개국의 총 생산액을 합산한 것보다 많다.그런데 이런 미국 부자들은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쓸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혼 위자료를 아낄 정도로 재산 보전에 본능적인, 전혀 돈을 쓰지 않는 구두쇠들일까. 이번에도 답은 ‘노(No)’다.그들 또한 사람이다. 부자들처럼 돈을 쓴다. 최근 경제전문 사이트인 ‘마켓워치’는 미국에서 전용 제트여객기를 소유한 억만장자 30명의 연간 지출명세서를 뽑아 봤다. 역시 최고급 여행경비가 많았다. 매년 호텔과 리조트 숙박에만 15만7000달러를 썼다. 파티 등을 개최하는 데도 22만4000달러를 사용했다. 아예 빌라나 콘도를 통째로 빌려 지내는데 16만8000달러를 쓰기도 했다.미국에서 부의 상징인 요트를 빌리는 데만 40만4000달러를 지불했다. 자동차에도 매년 22만6000달러를 쏟아 부었다. 공연 관람 등 문화생활에도 연간 14만7000달러를 지출했다. 다만 와인과 주류에는 3만 달러만 사용해 먹고 마시는 데는 의외로 소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주택 유지 보수에만 연간 54만2000달러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 이들의 씀씀이가 보통 부자들의 상상력을 벗어난다는 점을 확인해 줬다.그렇다면 이들은 자산 증식을 위해 어떤 투자 태도를 보일까. 이에 대해 경제 주간지 포천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투자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현상 유지이고 자산 증식은 그 다음 문제.”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골드만삭스는 큰 손들의 포트폴리오로 △채권과 현금 40% △미국 및 해외 주식 40% △위험 부담이 있는 벤처캐피털, 외환, 헤지펀드, 부동산 20%를 권하고 있다. 언뜻 보면 위험성이 있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부자들이 선호하는 주식은 개별종목보다는 주식형 펀드가 대부분이다. 특히 인덱스 펀드에 묻어 두려는 경향이 짙다.돈이 많아서 그렇겠지만 돈을 더 불리기보다는 있는 돈을 잘 간수하자는 게 부자들의 생각이다. 이렇게 보면 여유로운 투자 활동을 위해서라도 돈은 있고 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