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링의 매력은 변신이다. 어느 날 잠에서 깬 주인공이 벌레로 변해버린 카프카의 소설처럼 건물도 리모델링이라는 과정을 거쳐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다. 똑같은 기능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이전과 전혀 다른 용도로 새로 태어나 진화하는 것이 리모델링의 진짜 매력이다. 변신의 동력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다.오스트리아는 알프스 자연으로 먹고 사는 나라 같지만 산업의 역사도 깊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는 1818년부터 거리 가로등을 가스로 밝히는 실험에 돌입한다. 이후 가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1842년에는 가스 판매 회사가 생겼고 1899년에는 빈에 유럽 최대의 가스 저장 탱크가 준공된다. 그 유명한 가소미터(Gasometer) 저장 탱크다. 요즘의 원유 저장 탱크를 연상하면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가소미터는 석탄에서 추출한 가스를 저장하던 곳이었는데 천연가스가 발견되자 존재 가치가 뚝 떨어졌다. 1985년에 이르러서는 문을 닫아야 했다. 빈 당국은 가소미터를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전시회를 열거나 007시리즈 영화를 촬영하는 장소로 빌려주면서 명맥을 이어갔다. 그렇게 하는데도 한계에 달했다. 유지 관리 비용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빈 당국은 고비용에 손을 들고 1996년 3개 주택건설사에 가소미터를 매각했다.가소미터를 사들인 주택건설사는 1999년 2월부터 2년간 4개 저장 탱크로 이뤄진 가소미터를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했다. 저장 탱크는 무엇으로 변했을까. 상상을 초월한다. 아파트(602가구), 대학생 기숙사(247실), 사무실, 쇼핑몰, 극장(스크린 12개), 이벤트 홀로 변신했다. 무용지물이었던 저장 탱크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바뀐 케이스다.독일은 1990년 통일 이후 옛 동독 지역의 아파트 리모델링에 대대적으로 투자했다. 정치적으로는 통일됐지만 주택의 질적 측면에선 여전히 다른 나라였던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통일 이후 옛 동독 지역의 아파트 200여만 가구가 리모델링됐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됐다. 그렇게 고쳐 놓았건만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일자리를 찾아 옛 동독에서 옛 서독으로 이주하는 인구가 아파트 리모델링 숫자를 크게 앞질러 빈집이 늘어난 것이다. 공가율이 30%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이렇게 되자 독일 정부는 색다른 리모델링을 시도하고 있다. 아파트 가구 수를 줄이는 이른바 ‘감축리모델링’에 나서고 있다. 예컨대 출입구 하나를 기준으로 세 가구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두 가구로 줄이는 것이다. 과거 한 통로에 세 개의 현관이 있었다면 리모델링을 통해 두 개의 현관으로 바뀌었다. 대신 가구당 전용면적은 늘어났다.독일은 가구를 통합하는 리모델링뿐만 아니라 아파트 층을 줄이는 감축 리모델링도 실험했다. 역시 빈 집이 늘어나는 아파트를 대상으로 아파트 꼭대기 층을 해체하는 기법이다. 아파트 벽면을 허물지 않고 특수 톱으로 잘라내 옮긴 다음 그 벽체를 활용해 새로 집을 짓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냈다.독일에선 건물의 용도를 바꾸는 리모델링도 활발하다. 동베를린에 있는 랜드마크 빌딩 중 하나인 소피 깁스 코트(Sophie Gips Courts)는 원래 공장 건물이었다. 110년 전에 지어진 이 건물은 독일 통일 후 5년이 지난 1995년까지만 해도 거의 폐허 상태였지만 한 예술가가 이 건물을 매입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리모델링을 통해 사무실 라디오방송국 레스토랑이 이 건물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탈바꿈했다.미국 뉴욕의 할렘가는 리모델링의 고전으로 회자되고 있다. 1800년 초만 해도 할렘은 부촌이었다. 1900년대에는 개발할 다른 지역이 많았기 때문에 이미 개발된 할렘은 슬럼화됐다. 건물은 대부분 낡았고 분위기는 음침했다. 건물 출입문은 대부분 봉쇄됐다. 범죄 현장이나 노숙자 기거 장소로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뉴욕시는 마약과 폭력, 범죄의 온상지로 타락한 할렘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 10여 년 전 할렘을 금융 활성화 대상 구역으로 지정한 뒤 대대적인 건물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했다. 리모델링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6월 싸구려 상품과 힙합 패션이 넘치던 할렘 거리에 이젠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명품 매장들이 속속 진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10여년 동안 할렘 상권의 주택과 상가 사무실 가격은 10배 정도 뛰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1년 퇴임 뒤 사무실을 할렘가에 마련했다.프랑스는 고건물을 복원하는 리모델링에 일가견이 있다. 장기간에 걸쳐 건축 당시의 자재 및 색감을 거의 원형대로 살려내 건물 가치를 높이는 리모델링이 프랑스의 장기다.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강 바로 북쪽에 있는 베르시(Bercy)는 17, 18세기의 와인 집결지였다.파리시는 1970년대 말 베르시에 있는 옛 건물의 골조는 그대로 유지한 채 내부 인테리어는 현대식으로 새 단장했다. 건물 내부 모습은 달라졌지만 와인 집결지라는 베르시의 이미지를 살려 나가자 싼 가격에 와인을 구입하려는 파리지엔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이곳에 쇼핑몰, 레스토랑들도 생겨났다. 이제 베르시는 파리 시민들의 쇼핑 천국으로 탈바꿈됐다.프랑스에선 상업용 건물만 복원하는 게 아니다. 수백 년 전에 지어진 주택도 옛 맛을 살려가며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 중부 투르(Tours)시는 16세기에 지어진 집을 매각하면서 외관은 손도 못 대게 하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다만 내부는 라디에이터, 단열 창호, 샤워 시설, 화장실 정도만 리모델링할 수 있다. 살아가는 데 불편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이 아파트에 누가 살겠는가라고 의구심을 가질 수 있지만 의외로 젊은층이 이 아파트 입주를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이 밖에 일본에서는 건물 한 동의 위치를 다른 장소로 옮기는 이전 리모델링 계획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호주 시드니에선 시내 중심가의 오래된 병원 건물을 아파트로 리모델링해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