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유가가 연일 급등하고 있다. 주요 산유국의 원유 생산이 감소하고 있으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의 원유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끊이지 않는 산유국들의 정세 불안은 유가 상승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고유가 현상이 장기화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선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나, 장기적으로는 100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문제는 원유 가격의 장기적 상승이 석유 의존도가 큰 우리나라 경제에 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생산 비용을 증가시켜 물가를 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은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려 금융 시장에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특히 연금 소득의 의존도가 커지는 고령화 사회에서 인플레이션의 폐해는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매력이 보전되지 않는 소득으로는 노후 생활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헤징에 적절한 금융 환경이 절실한 시기다.인플레이션 헤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금융 상품 중 하나는 인플레이션을 보전해 쿠폰 등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연계 채권(Inflation linked bond)이다. 1981년 처음 영국 정부가 이러한 종류의 채권을 발행한 이후 1994년에 캐나다, 1997년에 미국의 재무부가 발행해 각광받고 있다.개인 투자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장기적 투자는 곧 본인 또는 부양가족을 위한 소비의 이연(Deferred Consumption)이다. 따라서 저축한 돈이 소비되는 미래의 시점에 여전히 같은 구매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따져보면, 명목상의 수익률이 적절했는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플레이션을 보전하도록 설계된 인플레이션 연계 채권은 매우 바람직한 장기 투자 자산임에 분명하다.그러나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와 같은 채권을 발행한 정부 당국 역시 큰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연계 채권의 발행이 시장에 긍정적 신호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인플레이션이 높은 시기에 정부의 정책은 시장에 신뢰를 주지 못해 소위 ‘신뢰성 갭(credibility gap)’이 발생하곤 한다. 하지만 이 채권이 발행됨으로써, 인플레이션의 조장을 통한 부채의 상환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인플레이션의 상승이 곧 부채의 증가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연계 채권의 발행은 일종의 ‘반인플레이션 선언’으로 인식된다.한편 이러한 신뢰 회복은 인플레이션의 헤징과 무관한 일반적인 다른 채권 시장 역시 활성화할 수 있다. 반인플레이션 정책을 표방하고 있는 정부에서 인플레이션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반영돼 장기적 채권 보유에 대한 가치가 전반적으로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채권 시장이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연금 등 각종 연기금과 근로자의 최종 급여를 기준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퇴직연금 등은 인플레이션 연계 채권의 가장 큰 수요자가 돼 시장의 발달을 도울 것이다.고유가라는 범세계적 현상은 우리 경제에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을 기회로 삼아 선진적인 금융 환경의 조성을 고민한다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인플레이션 연계 채권 시장의 활성화가 여기에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