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층의 결혼풍속도 르포
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의 한 보석업체 직원은 어느 날 VIP고객으로부터 ‘제품 카탈로그’를 보내달라는 내용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며칠이 지난 후 그 고객의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지난번 보내준 카탈로그에서 A3번하고 B24번이 마음에 드는데 제품을 가지고 직접 우리 집으로 방문해 주세요.”전화를 끊은 직원은 황급히 물건을 포장해 고객의 집을 방문했다. 제품을 직접 살핀 고객은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결제했다. 일반인들은 수천만 원짜리를 현금으로 결제한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물건 하나를 구입할 때도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야 하는 상류층엔 보편적인 모습이다.대한민국 상위 1%의 결혼은 ‘전통과 럭셔리의 조화’로 요약된다. 보수적인 가풍이다 보니 화려함보다는 절제미를 강조하는 경향이 많다. 사회적 지위를 고려해 엄숙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 상류층의 결혼 문화다. 그러면서도 오가는 물품은 최대한 고급스러운 것을 찾는다.가까운 지인을 통해 서로의 집안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부터 혼인은 시작된다. 양가 모두 비슷한 사회적 위상을 갖고 있다고 판단되면 가장의 허락이 떨어지고 호텔에서의 간단한 상견례를 거친 뒤 약혼식으로 이어진다. 약혼식은 두 집안이 사돈이 되겠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행사로 최대한 간소하게 치른다. 직계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약혼식에서는 예물로 반지 등이 간단히 교환된다. 물론 약혼예물은 결혼반지에 비해 금액이 저렴하다. 약혼식과 동시에 공식적으로 결혼식 준비에 들어가며 결혼식은 대개 6개월 후에 치른다.결혼식만큼은 화려하게 치른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녀들에게 화려한 출발을 해주고 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 일반 중산층과 차이가 있다면 지정좌석제로 사전에 초청된 경우에만 행사에 참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초청 인원은 약 3000~4000명, 준 재벌급 집안은 하객수가 2000명가량 된다. 얼마 전 열린 모 대기업 자녀의 결혼식에는 초청 인원만 5000명이 훌쩍 넘었다. 축의금이나 화환을 사절하는 것은 이들 세계에선 일종의 관례다.하객수가 수천 명이다 보니 결혼식장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대개 부모들은 신라호텔 그랜드볼룸을 선호하는 반면 자녀들은 하얏트호텔, 워커힐호텔 등 한강 조망이 가능한 특급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한다. 경제계 인사들은 교통편을 고려해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과 공항터미널 등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신라호텔의 결혼식 식사 값은 1인당 10만 원 내외, 참석 인원이 4000~ 5000명이라면 식사 값만 4억~5억 원을 훌쩍 뛰어 넘는다. 물론 제공되는 음료 값은 별도로 계산한다. 최근 연예인들의 ‘0순위’ 결혼식장으로 꼽히는 워커힐호텔 에스톤하우스는 상류층이 주로 이용하는 야외 결혼식장이다. 1인당 식사 값이 15만~20만 원으로 국내 최고 수준이며 1일 숙박료는 1500만 원을 호가한다.간혹 세간의 이목을 피해 간소하게 치르려는 집안에서는 자신의 집 앞마당이나 별장을 결혼식장으로 꾸며 극소수 친지들만이 참석한 채 결혼식을 치르기도 한다. 얼마 전 결혼한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의 장남 정도 씨는 신라호텔에서 예식을 올린 뒤 폐백 등 나머지 행사는 홍 전 회장의 한남동 자택에서 치렀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LG그룹 계열의 곤지암CC에서 80여 명의 친족만 초대해 장녀 연경 씨의 결혼식을 치렀다. 물론 피로연은 결혼식이 끝난 지 3일 후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었다. SKC 최유진 회장의 장녀 결혼식은 SK그룹 계열인 워커힐호텔에서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는 후문이다. 강남권 부자들 중에서는 별장 등을 대여해 결혼식장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하우스 웨딩도 많이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철저하게 전통과 예의를 갖추지만 오가는 결혼 예물들은 최고급이다. 이들에게 값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비록 값이 덜 나가더라도 역사와 전통이 깃들인 물건이라면 예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예물은 일반적으로 명품 시계나 보석을 애용하며 실속파 신랑신부의 의견을 많이 고려해 간소하게 구입하는 게 요즘 추세다. 예전에는 다이아몬드 진주 사파이어 루비 에메랄드 등 5종 풀세트가 인기를 끌었지만 요즘은 다이아몬드 한 가지를 결혼 예물로 주고받는다. 그중에서도 시가로 5억~7억 원가량 되는 5캐럿 이상의 다이아몬드가 인기다. 간혹 티아라(Tiara:보석이 박힌 왕관)를 구입하기도 하는데 개당 7억 원을 호가한다. 한 명품업체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상품은 소장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국내 유명 공예 제작자가 손수 제작한 물건도 상류층에 자주 애용된다. 현금으로 대신하는 경우에서부터 골프장 회원권, 부동산, 미술작품, 도자기 등 다양하다. 모 재벌은 개인 소유의 미술관을 예물로 줬다는 후문도 들린다.예식 촬영은 집안에서 대대로 이용하는 스튜디오나 전문 작가들이 맡으며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는 스토리 사진 북이 선호된다. 앨범 표지는 최고급 가죽으로 제작, 고풍스런 느낌을 준다. 최근 들어 일부 집안에서는 결혼식 사진을 3차원 입체로 제작하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5대만 있는 홀로그램 사진기는 사진 값이 한 장에 수 백만 원에 이르는 고가 제품이다.여느 신혼부부와 마찬가지로 신혼여행은 달콤한 꿀(Honey moon)과 같다. 결혼식을 마친 신랑신부들은 보통 유럽으로 1개월 코스의 허니문 여행을 떠나며 이들이 주로 찾는 여행지는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가 펼쳐지는 그리스, 프랑스 남부해안이다. 유럽 직항노선 퍼스트 클래스 항공료만 왕복 500만~700만 원. 여기에 하루 숙박료만 500만 원이 넘는 특급 리조트를 이용하면 신혼여행 경비로만 수천만 원이 지출된다. 사업관계상 일정이 빡빡하다면 동남아 최고급 리조트에서 10일가량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돈이 많다고 해서 섬 하나를 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다만 보수적인 가풍을 의식해 웨딩드레스는 지나치게 화려한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많다. 웨딩드레스는 4~5벌을 한꺼번에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강남 최고의 인기 웨딩드레스는 중국계 패션 디자이너 베라 왕(Vera Wang) 제품이다. 탤런트 김남주, 심은하의 웨딩드레스로 제공돼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이 드레스는 한 벌에 2000만 원이 넘는다. 비싼 것은 한 벌에 1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고 한다. 웨딩드레스, 들러리복, 파티복, 피로연 때 입는 약식 드레스가 풀세트로 제공된다. 베라 왕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심플한 느낌인 가운데 화려한 레이스로 곳곳을 치장해 예비 신랑 신부들에게 매우 반응이 좋다.”고 말한다. 베라 왕이 국내에 선보인 지 1년 만에 상류층 웨딩드레스 시장을 사로잡은 것 역시 ‘우아하면서도 화려함’을 추구한 전략이 먹혀들었다는 얘기다.일부는 아예 프랑스, 이탈리아로 날아가 외국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드레스를 구입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풀세트 값만 2억~3억 원 선에 이른다. 국내 유명 디자이너에게 제작을 의뢰하기도 하는데 값은 해외 디자이너 제품의 50% 선이다.하지만 한복은 웨딩드레스와는 정반대다. 전통미를 강조하면서 화려하게 멋을 부린 제품일수록 값이 비싸다. 고전과 현대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제품일수록 만족도가 높다. 한복은 디자이너 박술녀 김영석 이영희 등의 제품이 단연 인기다. 비용은 신랑 신부와 시부모 옷 등을 통틀어 대략 2000만 원을 호가한다.도곡동 타워팰리스, 삼성동 아이파크 등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상류층 신혼부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공간이다. 혼수는 일반 중산층과 마찬가지로 신부 쪽에서 부담하는 것이 관례. 그러나 결혼 직후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 현지에 고급 주택을 구입한 뒤 혼수를 구입할 수 있도록 현금으로 지급하는 사례도 많이 늘고 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