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층의 결혼 문화 입체조명
나운서라는 자리를 이용해 재벌가와 혼인을 맺으려는 당신에게 실망했습니다.”(Potty99)“아나운서가 아니라 한 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당신의 말에 감명받았습니다.”(더불어 유~)노현정 아나운서의 갑작스런 결혼 소식이 전해진 직후 인터넷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노 씨의 결혼 소식이 알려지자 네티즌의 반응은 일단 ‘놀람 반 실망 반’이다. 만난지 두 달 만에 사랑에 빠져 결혼에 골인한다는 그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네티즌이 있는가 하면 재벌가의 부에 넘어가 정략적으로 결혼하는 노 씨에게 실망감을 쏟아내는 네티즌도 상당수다. 어쨌든 그녀의 결혼은 우리 사회 상류층의 결혼 문화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결혼이란 무엇일까.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결혼을 신성하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며, 진정한 결혼이란 사랑으로 맺은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악처 때문에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던 톨스토이가 말했다고 해서 널리 회자되는 말이다.사회학적으로 볼 때 결혼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 집단인 가정을 만들기 위한 토대이며 건전한 두 인격체가 하나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윤리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다. 속세의 눈으로 보면 결혼은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통과제의로 볼 수 있다. 상류층에게 결혼은 집안과 집안을 연결하는 가교(架橋) 역할을 한다. 사돈으로 연결되면 두 집안은 사업적인 부분에서도 협력관계를 도모할 수 있다. 네트워크 창출을 전제로 한 결혼 문화는 예부터 존재해 왔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수십 명의 후궁을 거느린 것은 통일에 대해 시큼털털해 하던 전국의 토호들과의 관계 개선을 고려한 것이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상류층의 결혼 문화 역시 사회적 지위를 더욱 확고하게 하기 위한 목적을 내밀하게 담고 있다.상류층의 결혼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 그들은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가 모두 베일에 싸여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결혼 문화는 일반 중산층들에겐 관심의 대상이다. 숨기면 숨길수록 더 궁금한 게 사람들의 심리이기 때문이다.결혼은 인생 재테크다. 부유한 집안 출신과 혼인을 맺으면 상대적으로 돌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적다. 부가 부를 낳는다고 승수 효과를 낼 수도 있다. 당연히 상대 집안을 고르는데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소위 격에 맞는 집안끼리 혼인을 맺어야 하는 것은 불문율과 같다. 일부에서 ‘정략결혼’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신랑 신부 당사자들은 소위 격에 맞는 집안과의 혼인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교육받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상류층의 결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중매쟁이다. 그렇지만 요즘엔 결혼정보회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결혼 정보회사는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맞춤형 알선에 나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입비만 500만~1000만 원인 결혼정보회사가 각광받는 이유는 비밀리에 상대 집안을 알아볼 수 있다는데 있다. 예비 신랑 신부는 물론 부모와 윗 세대의 질병과 혼인 관계까지도 자세하게 알려준다.상류층 결혼정보제공업체인 퍼플스 김현중 대표는 “부모의 의견에 따라 맺어지던 과거와 달리 자신의 배우자를 직접 찾아나서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상류층의 결혼 문화 역시 변화를 맞고 있다.”며 달라진 풍속도를 전했다.200년 만에 한 번 온다는 쌍춘년에 결혼하면 잘 산다는 속설 때문인지 올해는 유난히 결혼 소식이 많다. 이는 재벌가로 대표되는 상류층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상반기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외아들 원태 씨가 중앙정보부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김재춘 씨의 손녀이자 충북대 김태호 교수의 딸인 미연 씨와, SKC 최신원 회장의 장녀 유진 씨가 LG가와 먼 친척뻘이자 미국 금융회사에 다니는 구본철 씨와, 중앙일보 홍석현 전 회장의 장남 정도 씨는 서울대 윤재륜 교수의 장녀 선영 씨와 각각 혼인을 맺었다. 또 LG 구본무 회장의 장녀 연경 씨는 비교적 평범한 가문에서 태어나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윤관 씨와 결혼에 골인했다.세월이 지남에 따라 상류층들의 일등 신랑 신부 기준도 변하고 있다. MONEY가 복수의 상류층 결혼정보제공업체의 자료를 근거로 뽑은 최고의 신랑감은 외국 유명대학에서 MBA(경영학석사)를 마치고 국내 대기업 혹은 다국적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억대 연봉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인기 직종으로 꼽혔던 판·검사, 변호사, 의사는 갈수록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과당경쟁으로 직종에 대한 프리미엄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반대로 신붓감은 전문직보다는 전업주부 지망생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이는 보수적인 상류층의 가풍과 무관치 않다. 의사 검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 직종보다는 가사에 애착을 갖되 국내파보다는 외국에서 학업을 마친 해외파가 상한가다. 하지만 예고와 여대를 졸업한 뒤 집안에서 착실하게 신부 수업을 받은 예비 신부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은 여전하다. 국내 30대 대기업의 3~4세 자녀들은 대부분 미국 동부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으며 이중 20~25세 여성 중 90% 이상은 뉴욕의 파슨스, SVA(School of visual arts), 플렛 등 미술·패션 전문대학에 재학 중이다. 왜 그럴까.“예비 신부들이 뉴욕, 남자들이 보스턴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동거리가 짧다는 점도 중요하다. 두 지역은 차로 3~4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어 명문가일수록 자연스럽게 혼맥을 잇기 위해서 이들 지역으로 자녀들을 유학 보내고 있다.” 한 결혼정보제공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전공으로는 신랑감의 경우 경영학 전공자가 대부분이고 신붓감은 대체로 미대 음대 등 예술 분야를 전공하면서 인문학 경영학 등을 부전공하고 있다고 한다. 또 대부분이 해외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때문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 과정은 해외 유명 보딩스쿨에서 수학하는 것이 일반적인 유형이다. 외모는 마른 체형에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는 젊은이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최근 들어선 벤처 갑부 및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이 신부유층으로 떠오르면서 상류층 결혼 판도를 흔들고 있다. 벤처 열풍이 불면서 억대 연봉을 벌어들이는 코스닥 등록 기업, 연예기획사 대표들, 스포츠 스타, 인기 방송인 등이 잇따라 재벌가와 혼인을 맺고 있는 것. 이들 신흥 부호 간 혼사도 크게 늘고 있다. 실제로 강남의 100억 원 대 재산가들 중에서 자수성가한 신흥 부호들과 사돈을 맺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고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들은 전한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