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하게 벌어 깨끗하게 쓰는 미국 갑부 스토리
440억 달러의 재산으로 세계 두 번째 부자인 워런 버핏. 그가 올해부터 재산의 85%인 370억 달러를 단계적으로 자선 재단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참으로 ‘투자의 귀재’ 다운 발상이다. 이를 계기로 세계는 지금 ‘버핏 열풍’이 불고 있다. “자식에게 너무 많은 돈을 물려주는 것은 사회를 위해서도, 자식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버핏이니 그럴 만도 하다.우리가 보아왔던 한국의 부자들-어떻게 하면 세금을 덜 내고, 어떻게 하면 자식에게 있는 돈을 더 물려줄 지 전전긍긍하는-과는 뭔가 다르다. 그러다보니 버핏의 결단은 ‘미국 부자=선(善), 한국 부자≠선’이라는 묘한 대조법을 만들어 내고 있다. 버핏의 거액 기부를 ‘상속세를 한푼 내지 않은 채 자식에게 투자 회사인 벅셔해서웨이의 회장자리를 물려주기 위한 일종의 꼼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시각은 ‘편협한 교조주의’라고 치부한다고 해도, 버핏으로 인해 난데없이 나쁜 사람으로 매도당하는 한국 부자들에겐 ‘아닌 밤중에 홍두깨’임에 틀림없다. 과연 미국 부자들은 착한 사람들인가.미국의 빈부 격차는 엄청 심하다.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빈부 갈등은 훨씬 덜하다. 사촌이 논을 사도 배 아파하지 않는다. 빈곤층에 대한 사회복지제도가 잘 발달돼 있는 게 주된 요인이다. 그렇지만 부자들의 헌신과 노력도 중요한 이유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재산을 과감히 사회에 환원하는, 그래서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부자들의 태도가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그렇지만 그들도 처음부터 ‘착한 부자’는 아니었다. ‘존경받는 부자’의 효시로는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와 ‘석유왕’ 록펠러가 꼽힌다. 카네기는 그래도 처음부터 착했다고 치자. 하지만 록펠러는 다르다. 미국은 1861년 남북전쟁을 치르면서 산업화를 겪는다. 막대한 전쟁 자금 덕분에 산업화가 급진전되면서 경제력 집중화가 나타난다. 다름 아닌 수직적 독점체인 ‘트러스트’다.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과 카네기의 US스틸 등이 대표적이다. 남북전쟁으로 돈을 번 부자들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엄청난 과소비를 즐긴다. 철도 부호 밴더빌트 가문은 프랑스의 고성을 뉴욕 맨해튼으로 통째로 옮겨왔을 정도다. 이들이 호화로운 생활을 누릴수록 이들의 부를 뒷받침하는 노동자들의 박탈감은 심해진다. 1877년 총파업이 벌어지고 200여 명이 숨지고 만다. 이때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 사업을 위해 행했던 뇌물 수수와 협박, 폭력의 실상이 언론에 낱낱이 공개된다. 여론은 들끓었고 검찰도 할 수 없이 불법 행위를 조사하게 된다. 사면초가에 몰린 록펠러가 살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 기부다. 특히 1911년으로 미국 연방최고재판소로부터 반(反)트러스트법 위반으로 기업이 해체된 후 아예 자선사업가로 변신하게 된다. 시카고 대학 설립을 위해 600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록펠러재단, 일반교육재단, 록펠러의학연구소 등을 잇달아 설립했다. 그의 자선 활동은 미국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의 대명사였던 그를 ‘자선의 명가’로 탈바꿈시킨다. 미국의 부자들. 그들도 처음부터 착하지 않았다. 여론에 몰려, 살아남기 위해, 가진 재산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회에 내놓아야 했다. 그것이 쌓여 관행이 됐고 버핏과 같은 자발적 기부자가 줄을 잇게 됐던 것뿐이다.누구는 서구 기부 문화의 뿌리를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찾는다. 맞는 말이다. 전쟁 때 원로원 의원이 먼저 나가 싸우고 노예의 참전을 배제한 로마나, 우두머리로 하여금 가장 많은 전쟁 자금을 내게 한 베네치아의 전통이 그들에겐 흐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었을까. 있었다. ‘사방 1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을 실천한 경주 최부잣집도 그중 하나다. 임진왜란 등 전쟁 때마다 책상 대신 칼을 잡은 양반네들도 로마의 귀족과 다르지 않다. 결국은 전통의 보존과 발전의 차이다. 정신문명적으로도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존재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정신적 배경은 유교다. 유교가 강조하는 것은 ‘청빈’이다. 아무리 훌륭한 애국자라도 청빈해야 한다. 황희 정승이 청백리의 표상으로 역사에 길이 남는 것은 훌륭하면서도 가난했기 때문이다. 돈을 벌어 나눠 주는 삶보다는, 가난하지만 꼿꼿하게 사는 삶이 존경받아 온 게 우리네 전통이다.이에 비해 서양은 개신교인 캘비니즘(Calvinism)에 뿌리를 두고 있다. 캘비니즘의 재물관은 ‘청부’다. 깨끗하게 벌어서 깨끗하게 쓰는 걸 중히 여긴다. 그러니 부자도 떳떳하고, 부자가 사회를 위해 재산을 쓰는 것은 더 떳떳하다. 이들의 이런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매년 12월 첫째 주에 ‘자선 사업가 명단’을 싣는다. 그해 가장 많은 돈을 사회에 기부한 ‘아름다운 손’ 50명을 소개한다. 아무리 부자라도 이 명단에서 빠지면 사회적으로 곤란해진다. 그러다보니 이른바 돈깨나 있다는 사람은 자선 경쟁에 나서게 된다. 기업의 창업자는 물론이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같은 유명 정치인, 아놀드 파마와 같은 스포츠인 등 이름깨나 있는 사람 대부분이 자신의 이름을 딴 자선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을 운영하는 또 다른 힘이 되고, 미국의 부자들을 ‘욕심 많은 스크루지’에서 ‘착한 사마리안’으로 탈바꿈시키는 윤색기 역할을 하고 있다.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부자들의 기부 문화가 워런 버핏으로 인해 2차 변곡점을 맞이했다고 표현했다. 1차 변곡점은 록펠러와 카네기 등이 거액을 기부했던 20세기 초반. 1차 변곡점이 사회적 분위기에 떼밀려 반강제적으로 기부 행위에 나서기 시작했다면 2차 변곡점은 자발적으로 재산을 기부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버핏의 재산 기부가 눈에 띄는 또 다른 점은 재산의 상당 부분을 살아 있을 때 기부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이를 계기로 ‘기부 활동을 하려면 살아있을 때 하자’는 움직임이 미국 부자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굳이 세계적으로 소문난 부자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돈이 있는 사람들 사이엔 ‘생전 기부’가 뚜렷한 흐름이 되고 있다.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재단에 투입한 것도 모자라 2008년엔 아예 자신이 창업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손을 뗀 뒤 자선재단 일에만 전념키로 한 빌 게이츠도 역시 ‘살아생전 기부’의 역사를 쓰고 있는 사람으로 꼽힌다. 또 구글 공동 창업주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도 10억 달러를 지구촌 기아와 보건 활동 등에 사용키로 하는 등 2차 변곡점을 지난 미국 부자들의 기부 운동은 ‘생전 기부’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분위기다.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은 똑 같다. 가능하면 돈을 내 자식, 내 가족에게 물려주려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부자라고 모두 ‘버핏’과 같지는 않다. 연간 소득이 100만 달러 이상인 미국 부자들의 기부금은 1995년 총수입의 4.1%에서 2003년 3.6%로 감소했다. 2000만 달러 이상 유산을 남긴 거부들이 전체 유산에서 기부금으로 낸 금액도 1995년 25.3%에서 2004년 20.8%로 크게 줄었다. 미국의 소프트웨어 회사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회장은 작년 하버드대에 1억1500만 달러 상당액을 기부하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기업 경영자 중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사람은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통계도 있다.‘카네기-록펠러’에 이어 ‘게이츠-버핏’이란 걸출한 부자들이 기부 문화를 이끌고 있어 ‘착한 부자들’의 행동이 눈에 띄는 것뿐이지, 부자들이 인색하기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란 얘기다.그렇지만 미국 부자들은 분명 장점이 있다. 상속세를 폐지하려는 부시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빌 게이츠 회장의 부친인 빌 게이츠 2세와 워런 버핏, ‘헤지펀드의 제왕’ 조지 소르소, 언론재벌 테드 터너, 록펠러가(家)및 루스벨트가 사람들이 앞장서 반대하는 모습은 미국 부자들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아름다운 모습 뒤에 얼마나 추한 모습들이 자리 잡고 있을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착하지는 않았던 미국 부자들의 착해지려는 노력이 미국을 지탱하는 동력이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카네기의 말을 빌리면 “죽은 후에도 부자인 것처럼 부끄러운 일은 없다”는 정신이 오늘날 미국 부자들을 이끌고 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