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변경자 부부의 집
이 주인을 부른다고 합니다.” 강원도 원주의 전원주택에서 노후 생활을 즐기고 있는 이준식(68) 변경자(66) 씨 부부는 그들의 표현대로 땅이 자신들을 불렀다고 생각한다. 이 부부는 강원도에 연고가 전혀 없다. 친척도 살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한겨울 원주의 시그너스 골프장에서 골프를 하고 난 후 5분 거리에 있던 마을의 경치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두 사람은 마을 빈 집을 사들였고 주택을 지었다.이준식 씨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서 각종 전자제품 개발의 주역으로 활약하다 광주전자 사장 등을 역임한 성공한 기업인이다. 서울에서 40년 넘게 반포와 방배동 등지의 아파트에서만 생활해 왔다. 두 사람 모두 치열한 도시의 삶에 익숙해졌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젠가 전원의 맑은 공기와 푸른 숲에서 생활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었다.두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이 씨의 은퇴 이후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은 이처럼 우연히, 그리고 갑작스럽게 시작됐다. 빈 집을 사서 기존 건물을 허물고 새 집을 지었다. 부부는 300평 부지에 30평짜리 작고 다부진 건물을 지었다. 다락을 하나 넣어 계절별로 생기는 불필요한 짐을 보관할 수 있게 했고 방 2개, 거실 하나, 부엌 하나를 만들었다. 평수는 작은 집이지만 화장실은 2개를 만들었다. 또 집 어디서라도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창을 많이 만들었다. 언제라도 바깥의 아름다운 경치와 정성들여 가꿔놓은 꽃을 볼 수 있다. 공사비는 1억 원 정도 소요됐다.“보통 전원주택 모델하우스를 보면 집들이 어마어마하게 큰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는 집이 클 필요가 전혀 없어요.” 6개월여 만에 공사가 마무리되고 지난 2000년 집이 완공됐다. 이후 2년 정도는 서울 집과 전원주택을 오가며 생활했고 4년 전부터는 서울 집을 전세 주고 거처를 아예 원주로 옮겼다.“전원주택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는데 유럽 스타일의 세컨드 하우스를 가진 사람들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화려한 장식을 하지 않습니다. 진짜 전원생활을 즐기려면 전원에 맞게 집을 지어야 합니다. 우리 집 곳곳에 작은 창이 있어 화장실이나 부엌에서도 바깥의 꽃을 바라볼 수 있어요. 이런 집에 살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전원주택에 살고부터 부부의 생활 패턴도 완전히 바뀌었다. 서울에서는 보통 기상시간이 아침 7시 이후였지만 이곳에서는 5시 반만 되면 눈이 저절로 떠진다. 아침 식사 전까지 무려 3시간여 동안 정원에서 야생화를 가꾸고 아침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이준식 씨는 채소밭을, 변경자 씨는 꽃밭을 가꾸는 등 철저한 분업 체제로 전원생활이 이어진다. 인터넷을 통해 꽃과 야채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책을 사서 보면서 작물을 키우는 재미에 부부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를 정도다.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원주 지역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임도 만들어 커뮤니티 활동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전원생활을 하면 생활비도 적게 들어갑니다. 서울에서 살았더라면 시내를 다녀야 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돈을 소비했겠지만 여기서는 월 100만 원 정도면 생활비가 충분합니다. 또 공기도 좋고 신선한 야채를 먹을 수 있어 건강도 좋아집니다.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인생의 새로운 재미를 느끼고 있지요.”©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