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동에 사는 김정석(66·가명) 씨는 지난해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내가 그동안 너희들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했는데, 이젠 다들 시집 장가갔으니 남은 시간은 네 엄마와 편하게 살고 싶다. 용인 양지에 있는 전원주택을 하나 알아봤는데 이 집을 팔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용인이면 서울에서 멀지도 않고 집 근처에 골프장도 있으니 평일에 골프나 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구나.”대기업 임원 출신인 그는 노후를 전원 속에서 살고 싶다고 자녀들에게 말했다. 이 말을 듣고 큰 아들 석규 씨가 말문을 열었다.“아버님, 전원주택이라는 게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안전은 물론이고 난방, 교통 등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연세도 많은데 혹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그냥 여기서 우리와 함께 사시죠.”석규 씨를 따라 자녀들의 반대가 이어졌다. 하지만 김 씨의 생각은 확고했다.“너희도 알다시피 내가 중학교 때 올라와 서울 생활을 한 지 어언 50년이 넘었다. 마음 같아선 고향(전북 고창)으로 내려가고 싶다만, 그러면 너희들이 왕래하기가 불편할 테니, 내 마지막 청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따라줬으면 좋겠다.”이 일이 있은 후 김 씨는 이미 지어진 전원주택을 구입하려고 했지만 그의 마음에 100% 쏙 드는 집을 찾기 쉽지 않았다. 이에 그는 아예 토지를 매입해 주택을 신축하기로 결정했고 올 가을이면 집이 완공돼 그토록 소망하던 ‘전원생활’을 시작하게 된다.풍수지리에서 흙은 ‘기’(氣)를 의미한다. ‘사람은 흙을 밟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화로 인해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흙집이었던 우리의 주거 공간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아파트로 대체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지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최근 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이 도시의 20세 이상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6.1%가 ‘농촌으로 이주할 생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 중 23.2%는 실제로 주택, 토지를 알아보고 농촌 이주를 위해 저축하고 있다고 답했고 33%는 10년 이내 이주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경연의 설문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전원생활을 동경하고 있다. 현실적인 벽에 부딪쳐 어쩔 수 없이 도시에서 생활해야 하지만 기회만 생기면 언제든 농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전원주택 하면 ‘비싸고 화려한 집’을 연상하기 쉽다. 또 어느 정도 노후 보장이 된 고소득층의 전유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도 있다. 사실 초창기의 전원주택은 세컨드 하우스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에 집을 갖고 있으면서 수도권에 전원주택을 지어 틈틈이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부자들에게나 관심거리였다. 시장 규모가 작다보니 관련 용품 값도 대부분이 고가였다. 이러던 전원주택 시장이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부터다. 경기가 폭락하고 실업률이 급증하면서 귀농 인구가 늘었고, 자연스럽게 시골에다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수요가 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전원주택은 고소득층의 전유물에서 중산층의 주택으로 저변이 확대됐다. 교통수단의 발달도 전원주택 수요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 도로, 운송 수단이 발달하면서 서울에서 차로 1~2시간 거리에 집을 짓고 살겠다는 수요가 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파주 의정부 남양주 여주 이천 등이 유망지로 각광받았다. 이들 지역은 최근 교통 여건이 개선돼 서울로의 진·출입이 한결 수월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0년에 접어들면서 고학력자들의 귀농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전원주택 시장도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인구, 주택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농현상이 점차 가속되는 가운데 4년제 대졸 이상 학력 소지자이면서 농촌에 사는 인구는 67만 명으로 5년 전 조사보다 42%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40대의 경우 14만2000명으로 5년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 40대 다음으로는 노년층인 70대(70.9%)가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40대 대졸자의 증가는 경제적 이유보다는 자족형 귀농이 많아졌다고 볼 수 있으며 교통 여건 개선으로 도시로의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시골과 도시를 오가며 생활하는 사람들이 증가했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아토피 등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병 때문에라도 전원주택으로 이사하는 경우도 있다. 행정수도 이전 등 탈수도권 현상이 심화될 것을 전제로 하고 수도권 유망지의 전원주택을 선점하려는 수요도 있다. 물론 전원주택에 산다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영화 속에서처럼 꿈같은 일들이 펼쳐지지 않을 수 있다. 인근 주민들과의 마찰, 주택 관리 보수 등은 현실에서 부닥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때문에 쉽게 도전했다가 실패를 안고 도시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투자 측면에서 볼 때도 전원주택은 아파트보다 가치가 낮다. 생활편익시설이 부족한 것도 전원주택에서 생활하면서 겪어야 할 문제점이다. 수요도 생각만큼 많지 않아 시세차익을 거두기도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감가상각이 커지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원주택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 모른다. 전원생활이 주는 또 다른 매력 때문으로 봐야 한다. 실제로 전원주택 관련 사이트에 가보면 이미 대규모 마니아층이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들끼리 주고받는 정보는 웬만한 건축사 수준 이상이다. 집 근처에서 텃밭을 일구고 화단을 가꾸는 일은 아파트 생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영농과 수확의 기쁨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전원주택은 무조건 크고 화려하게 짓는 게 능사가 아니다. 주위 자연 환경을 감안해가며 주택의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 자재도 추후 관리를 위해 비교적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써야 한다. 집만 크게 지으면 관리 부담만 커질 뿐이다. 바야흐로 노테크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대다. 은퇴 이후를 대비해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서는 20대부터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전원주택의 첫걸음은 토지 매입부터 시작된다. 서울에 사는 회사원 박상균 씨는 지난 2000년 강원도 횡성의 전원주택 부지 1만5000평을 경매를 통해 8000만 원에 낙찰 받았다. 낙찰 당시만 해도 이 땅은 도로가 없는 맹지여서 싼값에 낙찰받을 수 있었다. 이후 박 씨는 여러 전원주택 행사장을 찾아다니며 전원주택 정보를 수집했다. 운 좋게 박 씨의 땅 주변에는 도로가 생겨 땅값이 3배 이상 뛰었다. 그는 50대 이후에 이곳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집을 짓고 멋진 노후를 보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땅부터 구입하면 노후 대비는 물론 적지 않은 투자 수익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좋은 토지를 얻는 비결은 투자자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러기 위해선 어떤 집을 지을지 방향을 정한 다음 지역을 좁혀 가면서 찾아다니는 게 중요하다. 땅은 봄에 고르는 것이 좋다. 이 시기에는 집터 주변을 잘 살필 수 있으며 지세의 흐름을 읽는 데도 도움이 된다. 관련 서류를 꼼꼼히 살피는 것은 기본이다. 물론 박 씨의 경우처럼 주택지 부근에 도로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이런 땅들은 값이 비싸다. 자연히 생각했던 건축비를 초과할 수 있다. 맹지를 구입해 도로가 날 때만을 기다릴 수도 없다. 결국 토지를 구입하기에 앞서 진입로가 확보돼 있는지 살펴보고 계약해야 한다. 홍천에 사는 정성준 씨는 집에서 도로 사이의 토지 소유주들에게 사용 승낙을 얻어 진입로를 확보했다. 물론 이도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토지를 구입한 뒤 인·허가는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아 처리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건축 공법으로 전원주택을 구분하면 목조주택, ALC주택, 스틸하우스, 통나무 주택 등으로 구분된다. 이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무난한 것은 목조주택과 스틸하우스다. 스틸하우스는 기존 주택의 골조를 경량철강재로 짓는 방식을 말한다. 1mm 두께의 아연도금강판을 C형태로 지어 여기에 스터드 등을 조립해 집을 짓는다. 이 밖에 여러 가지 재료의 장점을 결합해 시공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주요재는 목조, 부재는 스틸하우스로 시공하면 건축비를 절감하는 효과도 있다. 또 목재를 기본으로 하고 벽돌로 벽을 쌓아 벽체의 하중이 분산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들어서는 벽돌, H빔, 황토 등 사용되는 자재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다. 전원주택은 나만의 집 꾸미기가 가능하다. 정원의 의자 하나하나까지 제품을 직접 골라 나만의 꿈을 짓는 것이 전원주택 시공의 묘미다. 또 몇 채를 더 지어 펜션으로 활용하면 임대사업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