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절대로 남한테 돈을 꾸지 않는다’던 분이 최근에 자식 문제로 빚을 졌다. 아들이 교통사고가 나서 급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절대로 결혼 따위는 하지 않겠다’던 후배도 얼마 전에 장가를 갔다. 마흔이 넘은 만혼인데 결혼식 내내 천생배필을 만났다고 하도 싱글벙글하기에 은근슬쩍 핀잔을 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그러게 형, 내가 미쳤지’였다.‘나는 절대로’라는 말을 입에 담는 사람은 좋게 말하면 주관이 강하고 나쁘게 표현하면 고집이 세다. 그런 성격은 대개 외롭고 고달픈 인생을 살게 마련이다. ‘나는 절대로’란 애당초 존재하기 어렵다. 한순간도 머물지 않고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서 혼자서만 ‘절대’를 고수할 수 있으랴. 절대를 고수하는 만큼 외톨이가 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인생은 교통(交通)이고 교류(交流)다. 국가도 개인과 마찬가지다. 현재 시행되는 법과 제도는 군사정권이 행한 독재와 1인 장기집권에 환멸을 느낀 국민이 치열한 투쟁을 통해 얻어낸 값진 성과다. 그래서 대통령 직선제와 단임제를 만들었고,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지방자치제까지 실현시켰다. 하지만 지난 선거에서 보듯 우리 선거제도와 지자제엔 분명한 문제가 있다. 선관위 발표에 따르면 5·31 선거의 투표참여율이 51.3%라고 한다.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참정권을 행사하고 다른 한 명은 포기했다는 말이다. 물론 선거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그러나 선거에 불참한 사람을 탓하기에 앞서 어느 날 갑자기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수많은 인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그들 가운데 누군가를 또 선택해야 하는 장치가 국민으로선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다른 선진국의 경우처럼 정강(政綱)이나 정책노선이 판연히 다른 것도 아니어서 정당을 보고 투표를 하라는 얘기도 공허하기 짝이 없다. 먹고살기에 급급한 대다수 국민들은 솔직히 정치나 선거엔 아무 관심이 없다. 대통령의 논평처럼 이건 진정한 의미에서 민의(民意)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국가원수와 정부조차도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선거를 왜, 무엇 때문에 국민이 해야하는가. 우리처럼 조그만 땅덩이에선 대통령과 국회의원, 시장과 도지사 정도만 직선으로 뽑고 나머지는 당선자가 정치적인 운명을 같이 할 사람들을 임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선 때만 되면 불거지는 대통령 중임제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단임제가 시행된 지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지금 그 공과와 득실을 냉정한 시각에서 판단, 재평가한다고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정권만 잡았다하면 할일 다한 양 무책임하게 변질해 가는 정권들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 하는가.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유럽과 중동에 이어 남미대륙이 통합을 꾀하고, 일본의 국수주의와 미국의 패권주의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출마자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 채 무턱대고 도장이나 박아대는 우리 선거제도가 생각할수록 한심하다. 아울러 별 비전도 능력도 없이 세대간, 계층간 국민분열이나 조장하는 반성 없는 정치와 행정도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마땅할 때다. 국가나 집단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교류하고 일신(日新)하지 않으면 곧 도태된다. 지금은 장기 독재가 끝난 직후도 아니고, 그만하면 시행착오도 겪을 만큼 겪었다. 이러고도 변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으면 정말 앞날이 캄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