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민성식의 색다른 미학 세계 여행
명하고 밝은 색감의 대비, 그리고 고꾸라질 듯한 시점의 구도. 수많은 작품 중에 민성식의 그림에 눈이 끌리게 되는 요인은 바로 이것이다. 원색을 주조로 한 색채를 선택해 면을 채워나간 것에서는 작가의 디자인 감각이, 건설 중인 집이나 건물의 모습에서는 건축가적인 면모가, 아래에서 올려다 본 또는 위에서 내려다 본 듯한 독특한 시점에서는 사진작가 같은 앵글이 묻어난다. 이런 까닭에 작가의 전공이나 경력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한남대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했을 뿐이다. 다만 미술에 흥미를 잃어 대학교 2학년 때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그림을 그리는 것만 빼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 그의 이력상의 특징이랄 수 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개인 사업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남은 전공 수업을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드디어 머릿속에 담겨 있던 것들이 그의 손끝을 통해 형상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제가 그린 그림은 꿈에 대한 조합과도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던 자동차 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 건축가, 사진작가, 장난감 공장장 등 이런 꿈들이 그림 속에 조금씩 표현되어 있는 것이죠.” 그가 한동안 작업을 하지 못했던 것은 이처럼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해법을 찾아내 지금과 같은 그림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과학적이고 계측적인 사람이라면 그의 그림을 보고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화면 속에 나타난 두 개의 건축물은 한 시점으로 봐서는 그렇게 형상화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이를 가리켜 ‘옥에 티’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학이 아닌 미술품이니까. 그리고 이것이 바로 민성식 작품의 매력 포인트다. 작가는 오래 전부터 극다점 원근법을 적용해 모서리를 드러내는 건물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면서 구도를 잡습니다. 예를 들어 탁자 위에 올려진 유리컵을 우리가 보았을 때와 달리 작은 벌레가 본다면 굉장히 큰 빌딩처럼 보일 수 있겠지요. 그리고 어떤 건물을 그릴 때에도 영화 촬영 카메라로 10~20m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았을 때를 상상해 그리는 겁니다. 글을 쓰는 작가의 마음에 따라 주인공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듯 저도 제 마음대로 축소, 확대, 생략하는 것이죠. 시각적으로 불가능한 장면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임의로 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을 그대로 담는 사진과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에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자체가 현실도 아닌 그의 작품을 가리켜 어느 미술평론가는 ‘현실과 이상의 경계’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그가 그림을 통해 보여주는 것 또한 이와 같은 낯선 공간이다. “부와 명예 등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마음 한쪽 구석에는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게 마련입니다. 현대 사회도 마찬가지죠.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롭게 되었지만 동시에 바쁘고 분주해져서 예전만큼 여유로운 생활을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이 있고…. 작품을 통해 현대 도시인들의 답답함과 그들이 갈망하는 탈주의 욕망을 은유적으로 풀어낸 것이죠.”색감도 밝고 바다, 나무와 같은 많은 자연물이 등장하는 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그것, 사람이 없다. ‘이것도 충분치 않아’라는 작품에는 잠수복을 입은 사람이 서 있기도 하고, ‘위성방송’ 같은 데에도 사람의 모습이 언뜻 등장하기는 한다. 그러나 잠수복을 입은 인물 자체보다는 그 복장에 더 초점을 맞추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듯한 사람의 모습은 침대 뒤에 가려 뒤통수와 다리 정도만 보이는 게 고작이다. 이렇다보니 그림을 보는 관람객은 그림 속의 등장인물과는 눈조차 마주칠 수 없고, 그들은 작품 속에서 그저 부수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림을 보면서 그 속에 자기 자신을 대치해 넣을 수 있다. 민성식은 정황 증거를 간접적으로 제시해 감상자로 하여금 그 속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었는지 유추하게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보는 이는 마치 자기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듯한 착각과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프리 사이즈의 옷이 여러 사람에게 잘 맞는 것처럼 어느 누구든 비슷한 현실에 처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공감하게 된다. 이때 화면 속의 극적인 구도와 화창한 색감은 더욱더 드라마틱한 감성을 일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이 우리 앞에 선보인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3~4년 사이 그려진 그의 그림을 보면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사실적 형태의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 나아가 상상의 요소가 더해진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3년 전 작품인 ‘스시바’의 경우 구도나 시점이 사선을 이루고 있긴 하지만 사실적 형태에 가깝다. 그렇지만 ‘항구II’를 보면 고기잡이배가 있어야 할 작은 부두에 거대한 유조선이 정박해 있는 모습을 그렸다. 원경에서 바라본 광경과 근경에서 바라본 사물을 동시에 배치함으로써 아이러니컬한 공간을 연출한 것. 이처럼 소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형식적인 기법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공간을 나누고 자르거나 생략하는 방식이 훨씬 과감해졌고, 색채의 대비가 강해져서 더욱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지난해 부산시립미술관에서의 전시, 그리고 올 초에는 대전시립미술관, 그 뒤를 이어 서울에서 열린 전시. 부산 대전 서울을 누비며 그의 작품은 전국으로 퍼질 듯하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