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치 즐기며 질 좋은 와인 한 잔
약 이탈리아 피렌체에 도착해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 지역 신문을 펼치거나 호텔 컨시어지(Concierge)에게 물어볼 것이다. 하지만 올 여름에는 그 대신 와인 숍을 찾으면 어떨까. 호텔에서 사 마시는 것보다 경제적이기도 하지만, 피렌체 문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 시중가격보다 훨씬 싸게 와인을 살 수도 있다.와인을 주류로 간주하는 우리나라는 와인 세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고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와인은 고가다. 해외여행의 특혜인 주류 1병 반입을 양주에서 와인으로 바꾸면 어떨까.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일본의 와인 숍을 소개한다.와인의 메카 프랑스 보르도의 시내 중심가에는 큰 블록마다 와인 숍이 성업 중이다. 그 중에서 랑탕당(L'Intendant)은 나선형 구조로 된 실내 공간에 보르도의 특급 와인들을 빼곡이 채워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역 최고의 와인으로 평가받는 샤토 마고나 샤토 라투르는 30만 원이면 살 수 있다. 파리에는 고급 와인 숍들이 많다. 레 카브 타일레방(Les Caves Taillevent)은 희귀 와인을 많이 소장하고 있어 마니아들이 필수적으로 들르는 코스가 됐다. 생산자로부터 직접 와인을 구매하는 것이 원칙이라 와인의 상태가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 카브 타이유방은 일본에 진출했다. 도쿄의 고급백화점 다카시마야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는 토스카나 와인의 중심지다. 골목마다 르네상스의 숨결이 살아 있어 여기저기 둘러보다 언제 해가 졌는 지도 모른다. 피렌체 상징 중 하나인 두오모 성당 근처에 가면 골목마다 와인 숍과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코퀴나리우스(Coquinarius)를 가보시라. 걷다가 지치면 잠시 들러 스파클링 워터를 사 마셔도 되고, 배고프면 파스타를 시켜도 좋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지역 와인들이다. 이곳에서는 토스카나의 모든 와인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으며 값도 합리적이어서 쇼핑할 만하다. 미국의 와인센터는 어디일까. 당연히 뉴욕이다. 엄청난 자본이 흐르는 뉴욕은 와인뿐 아니라 예술, 패션, 식도락의 센터이기도 하다. 뉴욕은 보르도보다 와인이 싸다. 왜 그럴까. 구매력이 커서 한번에 대량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뉴욕으로 수출하는 단가가 낮아진다. 뉴욕은 한마디로 소비자의 천국이다. 그래서 와인 값이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다. 그래서 맨해튼에는 가볼만한 와인 숍이 정말 많다. 센트럴 파크 이스트에 접한 매디슨 애버뉴에는 셰리-레만(Sherry-Lehmann)이 있다. 한때 경매회사 소더비(Sotheby’s)와 연합해 뉴욕 최고의 와인 경매를 벌이기도 했다. 퇴근 시간이 되면 정장 차림의 남성들이 줄지어 와인을 사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센트럴 파크를 횡단해 보자. 그러면 애커사(Acker Merrall & Condit)가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숍이다. 주변은 고급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다. 와인 숍 한복판에 있는 테이블에서는 연신 포장하느라 여념이 없는 직원들의 땀방울을 볼 수 있을 만큼 주문이 많은 곳이다. 뉴욕에 온다면 한번 쯤 들르면 좋을 듯하다. 경매로 고급 와인을 산 뒤 무리해서 한국으로 가져가지 말고, 창고에 보관하면 좋다. 필요할 때마다 호텔이나 다른 장소로 배송 지시를 해 와인을 받을 수 있다.이번에는 지하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록펠러 센터에 도착해 보자. 경매회사 크리스티(Christie’s) 건물 옆에는 모렐(Morrell) 와인 숍이 있다. 길가에 놓여 있는 모렐의 의자에 않아 샴페인을 홀짝거리면서 센터 한가운데 설치된 팀 보로프스키의 거대한 조각물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심신의 피로를 푸는데 그만이다. 일본에도 역시 와인 숍들이 많다. 물론 도쿄에 많이 몰려 있다. 박리다매를 지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체인점이 일본 와인 숍의 특징이다. 그 중에서 일본 전역에 체인점을 이룩한 에노테카(Enoteca)의 규모가 가장 크다. 매월 주제를 정하고 현지의 샤토 성주를 초청해 벌이는 시음회는 오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가격도 저렴한데 3만 원 정도면 여러 빈티지의 최고급 와인들을 맛볼 수 있다. 에노테카는 우리나라에도 진출해 있다. 갤러리아 백화점과 합작으로 운영되고 있다. 재개발로 천지가 개벽한 듯한 록본기힐스나 에비스에는 중요 건물마다 와인 숍이 들어서 있다. 타워팰리스를 연상시키는 록본기힐스 아파트 입구에는 샴페인과 보르도 특급 와인으로 무장한 와인 숍이 있다. 에비스에는 보르도 샤토를 이미테이션으로 건축한 샤토 레스토랑 건물이 웅장하게 서있다. 프렌치 레스토랑 조엘 로부숑(Joel Robuchon)이 3개 층을 차지하고 있는 건물 지하에는 보르도와 부르고뉴 최고급 와인을 소장하고 있는 와인 숍 라비네(La Vinee)가 있고, 바로 그 옆에는 생활 속에 작은 기쁨을 선사한다는 일상 와인 숍 파티 와인(Party wine)이 있다. 컨셉트를 중시하는 전문 와인 숍들도 많다. 토라노몬의 뱅쉬르뱅(Vin Sur Vin)이 그것이다. 특히 부르고뉴 와인을 선호하는 와인 숍으로 매년 부르고뉴의 와인 생산자를 초청해 와인 시음과 경매를 이벤트로 연출하고 있다. 일본 와인 숍의 특징은 이들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와인 숍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백화점 와인 코너다. 일본의 백화점은 90년대에 세계 최고의 예술품 컬렉터였다. 지금은 그 위세가 많이 꺾였지만 와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시내에 있는 수십 개의 백화점 지하 식품코너마다 와인 숍이 있다. 소믈리에 복장을 하고 손님을 맞는 와인 코너는 일본 백화점의 기본이다. 예를 들자면 긴자의 마쓰야(Matsuya), 미쓰코시(Mitsukoshi), 마쓰자카야(Matsuzakaya) 모두 와인 숍이 성업 중이다. 이번 여름휴가를 해외로 떠날 사람이라면 꼭 와인 숍에 들러 보시라. 와인을 싸게 사는 기쁨과 함께 지역 문화의 정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