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시대 명재상 최치원은 조기 유학으로 성공한 사람 중 하나다. 서기 869년 그는 13세에 당시 문화의 중심지였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당나라 과거에 급제했으며 879년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이라는 글을 써 적장 황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최치원은 귀국 후 6두품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관직인 아찬에까지 올랐으며 그의 명성은 국내외 모두에서 자자했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현대판 최치원’을 꿈꾸는 조기 유학 열풍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단지 몇몇 극성스러운 학부모들에게만 국한됐던 조기 유학이 중산층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조기 유학을 보내는 부모들은 “조기 유학만한 에듀테크가 없다”고 주장한다. 시대와 장소를 떠나 교육이 지향하는 목표는 바른 사람을 만드는 ‘전인교육’에 있다. 그러나 전인교육이라는 구호만 외치기에는 급변하는 현실이 녹록지만은 않다.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교육=부’의 등식이 선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각 나라마다 우수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을 상품을 만드는 일로 치환하면 교육은 상품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 없다. 유학파 출신이 기업이나 학계는 물론 관계에도 입지를 넓히고 있다. 국내파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은 물론 글로벌 플레이어로서의 자질을 활용해 세계 무대를 누비고 있다. 한국 학부모들의 조기 유학 열풍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갈수록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서울시교육청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올 2월까지 한국을 떠난 조기 유학생은 서울지역에서만 7001명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6089명에 비해 15%나 늘어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에서만 매일 19명의 초·중·고교생이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 유학길에 오른 셈이다. 지역별로는 미국이 2575명으로 가장 많았고, 1106명과 902명이 떠난 캐나다와 중국이 뒤를 이었다.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로 656명이 떠났고, 580명은 뉴질랜드와 호주를 선택했다. 이 밖에 영국과 일본으로 공부하러 나간 학생도 77명과 64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고등학교로 전학 가는 학생들은 대개 데이스쿨(Day school)과 보딩스쿨(boarding school)에 입학하고 있다. 데이스쿨은 학비가 싼 대신 옆에서 부모가 챙겨줘야 하는 불편이 있고 보딩스쿨은 반대로 학비는 비싸지만 학교에서 대학 입시와 관련된 모든 교육을 책임진다는 점이 장점이다. E-2(비이민) 비자를 발급받아 자녀를 공립학교에 입학시키는 경우도 과거에 비해 크게 늘고 있다.중국은 학비가 저렴한 데다 영어로 모든 수업이 진행된다는 점 때문에 중산층에서 단연 인기다. 필리핀 베트남 등 일부 동남아 국가로 유학을 떠나는 숫자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교육 열풍이 유아기로까지 옮겨가는 양상을 보여 교육 전문기업인 베네세코리아가 서울 도쿄 등 5개 도시에 거주하는 만 3~6세의 유아 부모 6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서울의 유아 사교육 비율이 73%로 베이징(72%) 상하이(72%) 도쿄(62%) 타이베이(56%)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부모들이 자녀를 조기 유학 보내려는 이유는 국내 공교육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겉으로만 공교육 비중을 높였지 실상은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늘어나는 사교육비 부담이 되레 조기 유학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동남아, 중국 등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싼 곳으로 자녀를 유학 보내는 학부모들 중에서는 국내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중·고등학교 때 떠나는 아이들은 해외 명문대학 진학이 가장 큰 목표다. 국내 현실로는 일부 특목고를 제외하곤 한국에서 고교 졸업 후 미국의 명문대학 진학이 어렵다. 따라서 아예 중·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 미국 명문대학에 진학하면 졸업 후 유명한 다국적 회사에 취직할 수 있고, 경력을 쌓아 한국으로 올 경우에도 경쟁력이 있다는 생각에 많은 학부모들이 선호하고 있다. 또 이른바 패자부활전 성격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에서 대학 진학이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 등 해외로 나가 반전을 꾀하자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조기 유학 열풍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재테크적인 입장으로 접근해 볼 때 자녀 교육이야말로 매력적인 투자 상품이다. 물론 성공 확률보다 실패 확률이 배 이상 높으며 투자자의 의지대로 결과가 나올지도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미국 보딩스쿨 학비는 1년에 평균 3500만원이다. 여기에 생활비용까지 포함하면 약 5000만 원가량 소요된다. 이에 비해 강남의 한달 과외비는 영어, 수학, 논술, 과학(선택), 사회(선택)를 합쳐 평균 200만 원으로 단순 계산해도 1년에 지출되는 사교육비는 2400만 원이다. 여기에 회화와 토플까지 따로 배우면 월 지출되는 사교육비는 3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비용만 놓고 보면 조기 유학이 약간 비싸다. 하지만 조기 유학은 교육 효과가 높다. 미국 대학을 졸업한 후 국내로 돌아왔을 경우 사정이 달라진다. 미국 보딩스쿨에서 중위권만 유지해도 주립대학 입학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주립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국내 대기업 취업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실제로 유학파와 비 유학파의 연봉은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따라서 약간의 돈을 더 들여 유학을 보내는 것이 오히려 효율성이 높을 수 있다. 또 에듀테크는 부의 대물림과 자녀를 통한 대리만족이라는 성과물을 얻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성공 확률은 크지 않지만 성공만 하면 자녀에게 따로 재산을 물려주지 않아도 되는 데다 부모 입장에선 그 자체가 ‘노(老)테크’가 될 수 있다. 고소득층에 조기 유학 열풍이 부는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부가 후대에까지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며 중산층에는 고소득층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으로 해석해야 한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 등 해외 유수의 언론은 한국 등 아시아 국가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분석하면서 ‘높은 교육열’을 첫 번째 이유로 꼽고 있다. 이에 따라 강남의 주요 학원에서는 민족사관고나 외국어고, 과학고 입시반의 규모를 줄이고 외국 유명대학이나 유명 보딩스쿨 입시반을 속속 늘려나가고 있으며 교보문고 등 주요 서점에서는 조기 유학과 관련된 도서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한국 교육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선 공교육 프로그램을 개혁하는 한편 국가적인 차원의 유학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웃 중국만 해도 중앙정부 지원 아래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5만 명 정도의 입시생들이 매년 미국 명문대학에 문을 두드리고 있으며 이들의 입학률은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미국 유명 대학 입학은 ‘현대판 로마제국’인 미국의 주류사회로 편입됨을 의미한다. 미국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계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더 이상 방치해 둘 상황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유학은 오히려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검증된 유학 학원과 컨설팅 업체에 자문을 받아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