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 서니브룩여대 도널드 레델마이어 교수는 몇 해 전 과학계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가 관심을 가진 문제는 엉뚱하게도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배우는 그렇지 못한 배우보다 더 오래 살까’는 것. 그가 내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배우는 그렇지 못한 배우보다 더 오래 산다는 것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상자들의 수명은 79.7세인데 비해 후보자나 비후보자 배우들은 75.8세로, 수상자들의 수명이 3.9년 정도 길다고 한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오스카상을 하나씩 더 탈 때마다 수명이 2년 정도 더 길어진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캐서린 헵번은 오스카상을 4번이나 수상했으며 그녀는 96세까지 활발히 연기와 자선 활동을 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아카데미상 수상 배우와 그렇지 못한 배우들 사이에 수명 차이가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레델마이어 교수는 수상자들의 사회적 지위와 그에 걸맞은 풍요로운 삶, 그리고 절제된 생활 태도를 원인으로 꼽았다. 아카데미상 수상자들은 수상과 동시에 물질적 풍요를 보장받는다. 매니저와 비서는 물론 개인 트레이너와 요리사까지 두면서 건강을 챙기니 오래 살 수밖에 없다. 또 대중들에게 늘 사생활이 노출돼 있고 매번 출연하는 영화에서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절제된 생활 태도와 지속적인 운동 습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좀 더 나아가 런던대학 공중보건학 교수인 마이클 마멋은 ‘사회적 지위’ 자체가 수명을 연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30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주된 병인 중 하나는 사회적 불평등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불평등에 대한 심리적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직업이나 소득, 교육 정도, 심지어 아파트 크기 같은 사회적, 경제적 요소 자체가 우리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는 이것을 가리켜 ‘지위 신드롬(Status syndrome)’이라고 불렀다. 지위 신드롬 그 자체는 굉장히 충격적인 것이지만, 이것을 잘 활용하면 우리 사회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마멋은 주장한다. 우리가 사회적 불평등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국민 건강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이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 더 나은 사회적 지위와 건강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계층에 골고루 교육 투자를 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뿐 아니라 국민 건강까지 개선할 수 있다.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심리적 적대감을 줄이고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하는 직장 체계를 만듦으로써 직장 내 건강 위험 요소를 줄일 수 있다. 또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교육 정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좀 더 각별한 의료혜택을 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 건강과 사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킴으로써 건강 불평등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1929년 조그만 극장에서 조촐하게 시작된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제 세계인의 축제가 됐다. 그 영향력이나 경제적 가치는 앞으로 점점 더 증대될 것이므로 연구 결과가 맞는다면 오스카상 수상자의 수명은 앞으로 더욱 길어질 전망이다. 줄리아 로버츠나 톰 행크스의 연기를 오래도록 볼 수 있다는 얘기니 반가운 소식이지만 자본주의 현실에서 사회적 지위와 수명이 비례한다는 것은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먼저 관심을 갖는 노력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