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은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5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다. 영국에 앞서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의 식민지였던 말레이시아는 거쳐 간 지배국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문화와 관습을 갖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이 혼재돼 있는 다민족 국가 이기도 하다. 또 이슬람 사원과 옛 궁궐 등이 현대적인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색채를 띠고 있다. 화려한 색으로 직조한 전통 공예품 바틱과 원색의 과일에서도 열대의 화려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그러나 말레이시아가 가장 자랑하는 관광 상품은 때 묻지 않은 자연 환경. 오염되지 않은 푸른 바다와 밀림은 대자연의 풍요로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말레이시아는 독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7년을 ‘말레이시아 방문의 해’로 정했다. 코타키나발루 페낭 랑카위 등은 이미 관광산업의 허브 도시로 변모했다. 하지만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곳도 아직 많다. 쿠안탄, 트렝가누 키잘, 말라카 등이 그곳이다.말레이시아의 심장부인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하자 뜨거운 열기가 훅 느껴진다. 습도가 높아 푹푹 찌는 날씨에도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은 국가답게 대부분의 여성들이 차도르를 두르고 다녔다. 하지만 이곳의 차도르는 중동 지방 여성들이 검은 천으로 눈만 보이게 철저히 가리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색상도 화려하며 얼굴 전체를 드러내 차도르 흉내만 낸 느낌을 준다. 실제로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는 국가답게 다양한 종교가 공존한다. 이슬람교뿐 아니라 불교, 힌두교도 적지 않다.쿠알라룸푸르가 말레이시아 경제의 중심지라면 문화의 중심지는 ‘말라카’다. 말라카는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 반 정도 내려오면 나오는 작은 주다. 이곳에서 말레이시아의 역사가 시작됐다. 수마트라의 왕자였던 파라메스와라가 1400년도에 말라카를 세우면서부터다. 이후 이 지역은 말라카 술탄 통치지역으로 번성했다. 당시 이곳은 중국 인도 아라비아 유럽 등에서 온 무역상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1551년 포르투갈에 정복당한 후 네덜란드(1641년) 영국(1824년) 등의 통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수백 년간에 걸친 외치 기간에 말라카주는 문화의 용광로가 됐다. 지금도 포르투갈 후손들과 페라나칸(중국인 이민족이며 ‘바바 뇨냐’라 불림)이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말라카에 도착해 첫 코스로 ‘바바 뇨냐 역사 박물관’을 방문했다. 바바는 남자를 뇨냐는 여자를 일컫는 말이다. 중국인이 이민 와서 말레이 여자와 결혼해 낳은 자손들이 그들이다. 그들이 직접 운영하는 개인 박물관인 이곳은 살던 집 몇 채를 통째로 터서 만든 곳이다. 전통 문물을 실물 그대로 전시해 놓고 있어서 누군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박물관에는 300년이 넘는 골동품들이 전시돼 있고 전통의상, 결혼문화, 장례의식 물품 등 볼거리들이 많다. 이날 점심 메뉴는 바바와 뇨냐가 먹는 전통음식. 중식과 말레이식이 혼합된 일종의 퓨전 요리로 청경채 볶음, 닭튀김, 새우 커리, 게찜, 생선조림 등으로 푸짐하게 차려졌다. 향초를 많이 써 독특한 향이 강하게 느껴지고 갖가지 양념으로 조리해 강한 뒷맛을 남겼다. 동남아 특유의 강한 향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맞지 않는 듯 했다.각국의 말라카 쟁탈사는 결과적으로 많은 사적을 남겼다. 그중 아 파모사(A Famosa), 스탯허스(Stadhuys), 세인트폴 교회를 찾았다. ‘아 파모사’는 포르투갈인에 의해 1511년에 만들어진 성채로 한때 위용을 과시하기도 했지만 침략을 받아 파괴됐다. 당시로서는 매우 튼튼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거대한 대포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문이 남아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스타일의 빌딩으로 추정되는 연어 빛깔의 ‘스탯허스’는 1650년 네덜란드 총독과 관리들의 공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축됐다. 스탯허스 남쪽의 레지던시 언덕 위에 있는 교회인 ‘세인트폴 교회’는 1521년 포르투갈인의 예배당으로 사용됐다. 지금은 골격만 남아 폐허가 됐고 언덕 위에는 오른손이 없는 사비에르의 전신상이 말라카 해협을 내려다보고 있다. 사비에르는 16세기 동남아시아에 가톨릭을 포교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다음으로 찾은 곳은 ‘쿠안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비행기로 40분 정도 가면 쿠안탄 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한국의 지방공항같이 작고 아담한 곳이다. 쿠안탄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파항주에 속해 있으며 동해와 맞닿아 있는 해안지대에 위치한 수도다. 말레이시아의 동해안은 다른 곳에 비해 아직 개발이 미비하다. 그만큼 손대지 않은 무한한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개발이 안 된 처녀림으로 뒤덮여 있으며 이곳에는 30종족 이상의 원주민이 살고 있다. 회교인들의 휴일인 금요일에는 대부분 관공서와 박물관 등이 문을 열지 않는다. 시내 관광 일정을 잡을 때 되도록 금요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쿠안탄 근교인 체러팅은 세계적인 휴양 리조트로 알려진 ‘클럽 메드’가 아시아 최초로 문을 연 곳이다. 체러팅 주민들은 방문객들을 따뜻하게 맞아준다. 스킨십을 느끼고 싶다면 빌리지 오두막에서 머무르는 것도 좋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개발이 덜 된 탓에 깔끔한 것을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특히 모기 등 벌레가 많은 편이므로 벌레 물린데 바르는 약을 반드시 상비해야 한다.쿠안탄에서 버스로 40분 거리인 트렝가누 또한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 않다. 1억3000만년이나 된 정글과 해변을 갖춘 휴양지다. 트렝가누주 남쪽 케마만의 키잘 해변에 위치한 ‘아와나 키잘’은 유럽이나 현지에서는 말레이시아 최고의 골프 리조트로 통한다. 리조트에 도착하자 입구 계단에 차례로 선 직원들이 흥겨운 ‘마카레나 쇼’를 율동과 함께 펼쳤다. 호텔에 들어서자 바이올린 모양의 도자기 잔에 들어있는 시원한 ‘웰컴 과일 주스’를 한 잔씩 건네준다. 긴 여행에 지칠법한 여행객의 심신을 풀어주기 위한 호텔의 배려가 느껴졌다. 골프 마니아에게 푸른 바다를 끼고 있는 이 곳의 드넓은 페어웨이와 저렴한 라운딩 비용은 매력적이다. 이곳에서 30분 정도 자동차로 이동하면 ‘숭아이 야야 강’에서 펼쳐지는 특별한 반딧불이 쇼를 체험할 수 있다. 해질녘에 강가에 도착하자 현지 안내원이 차트로 반딧불이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현지어로 반딧불이는 ‘클립클립(Kelip-Kelip)’이라고 부르며 키잘지역 사투리로는 ‘꾸낭꾸낭’이라고 한다. 전 세계에 2000여 종류의 반딧불이가 서식하고 있으며 이곳의 반딧불이는 작지만 빛이 무척 밝은 종이라고 했다. 설명이 끝나자 해가 져서 주변이 온통 깜깜해졌다. 구명조끼를 입고 나룻배에 10여 명이 차례로 탔다. 우거진 정글 속으로 배가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 강에는 새우와 악어가 많다고 한다. 바닷물과 강물이 합쳐지는 곳이어서 물이 탁해 물 속이 전혀 보이지 않아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반짝반짝하는 불빛들이 보였다. 군집생활을 하기 때문에 나무 하나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반딧불이의 불빛은 흡사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는 듯 황홀했다. 이 투어는 고작 1주일 전부터 시작됐는데 아직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반딧불이의 숫자가 무척 많고 사람을 경계하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반딧불이 하나가 손 안에 살포시 들어온다. 신비로운 자연학습장인 셈이다. 이 반딧불이 투어는 30분 정도 걸리며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어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한반도의 1.5배에 달하는 면적을 가진 나라이며 전체 13개 주로 나뉜다. 13개주 중 9개 주가 왕이 있는 독특한 입헌군주제 국가다. 왕은 ‘술탄’으로 불리며 독립 이후 5년에 한번씩 각주의 왕들이 돌아가면서 말레이시아 왕을 맡는다. 실질적인 정치는 총리가 맡고 있다. 세계 1위의 주석과 고무 산지로 유명한 말레이시아는 석유 또한 풍부해 주변 국가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넘쳐나는 천연자원만 수출해도 앞으로 몇 백년간 아무 일 안하고 먹고 살 수 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만 하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기 때문에 국민성이 낙천적이고 순한 편이다. 관광객에게도 친절하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시작된 ‘우리말 사랑 운동’으로 인해 영어 사용이 원활하지만은 않다. 간단한 말레이어를 알아 두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회교 국가이므로 금지되는 것도 많다. 왼손을 되도록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은 죄악으로 여긴다. 일반 화장실 뿐 아니라 공중 유료 화장실에도 휴지가 없으니 휴지를 반드시 챙기는 것도 잊지 말 것. 말레이인들은 물로 뒤처리를 하기 때문이다. 여성들 이마에 찍은 점으로 미혼과 기혼을 구분하기도 한다. 점이 검은색이면 미혼, 붉은 색이면 기혼이라는 표시다. 하지만 근래에는 어린 딸을 보호하려는 부모들에 의해 미혼 여성도 간혹 붉은 점을 찍고 다닌다고 한다. 회교도들은 아직 1부4처제를 따르고 있다. 그래서 한 집에 아이들이 10명에서 20명에 이르기도 한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고 순수하다. ■ 말레이시아 항공을 이용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으로 들어간다. 약 6시간 소요. 이 곳에서 말라카는 육로로 이동하며 쿠안탄으로 갈 때는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쿠안탄 공항으로 가는 국내선으로 가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