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성동구 응봉동 대림아파트 1차 외벽에는 ‘축! 대림1차 리모델링사업 추진위 결성’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1986년도에 건립된 이 아파트는 15층짜리 중층 아파트여서 바뀐 서울시 재건축 연한(1980년 1월1일~1989년 12월31일 준공된 5층 이상 공동주택:22+(준공연도-1980)×2)을 적용하면 2022년에나 재건축이 가능했었다. 하지만 이 아파트는 애초부터 재건축보다는 리모델링으로 사업을 추진해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3월 중순 현재 대림 1차 41평형의 매매값은 6억6500만원으로 1년 전보다 1억1500만 원 이상 올랐다. 대림1차가 성공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자 대림2차 등 인근 지역 아파트들도 리모델링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 정책으로 재건축 아파트의 메리트가 줄어들면서 리모델링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리모델링은 그동안 공사비 부담이 크고 무상 평형이 적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외면을 받아 왔다. 하지만 정부가 재건축아파트에 안전진단·허가 연한 강화, 소형 평형의무비율·후분양제 실시 등 규제를 가하면서 대안으로 급부상 중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일부 아파트는 재건축 추진을 중단하고 리모델링으로 선회하고 있으며 건설사들도 본격적으로 수주 전에 뛰어들 태세다. H건설 관계자는 “리모델링 사업이 향후 주택 사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재건축이 어려운 단지들을 중심으로 리모델링을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곡동 동신아파트는 안전진단까지 통과한 아파트지만 대지 지분이 작아 조합원들의 공사비 부담이 커지자 리모델링으로 사업을 전환했다. 아파트를 리모델링한다고 해서 평형을 전혀 늘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앞뒤 발코니 공간을 확충해 6~11평 정도는 늘릴 수 있다. 현행 주택법에 따르면 각 가구의 주거 전용면적의 10분의 3 이내에서 증축이 가능하고 만약 1층을 필로티로 설계할 경우에는 1개 층을 증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도곡동 동신아파트만 해도 18평형이 26평형, 29평형이 38평형, 30평형이 39평형, 38평형이 49평으로 각각 늘어난다. 그렇다면 리모델링 사업은 과연 투자매력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로선 50 대 50이다. 단순히 사업성만으로 비교할 경우 재건축에 비해 매력이 크지 않지만 사업 시기 등을 감안하면 상당한 투자 매력이 있다.일반 분양의 수익이 조합원들의 지분 확대에 사용되는 재건축 사업과 비교하면 리모델링은 사업성이 거의 없다. 기본적으로 리모델링 사업은 주거환경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때문에 개선되는 비용은 철저히 조합원들이 나눠서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언제 규제가 완화될지 모르는 재건축과 달리 리모델링은 정부의 지원책이 다양하다.정부는 최근 전용면적의 30%까지 증축을 허용하는 대신 최고 9평으로 제한했던 면적 규정을 없애고, 전용면적 25.7평 이하 아파트는 30% 이내로 증축할 경우 공사비의 부가가치세를 면제해 주는 지원책을 내놓았다. 앞으로는 전체 조합원 3분의 2 이상만 동의(종전은 전체 단지 소유자의 5분의 4 이상, 개별 동 소유자의 3분의 2 이상 동의)하면 조합 설립인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 큰 걸림돌이 해소됐다.리모델링 사업의 가장 큰 매력은 사업 추진 속도가 재건축에 비해 빠르다는 점이다. 재건축만 해도 추진위원회 구성, 안전진단 통과, 조합결성, 사업계획 승인 등 통과 절차가 까다로운데 비해 리모델링은 추진위가 구성되고 안전진단을 통과하면 건축 심의를 받아 바로 공사에 들어간다(표 참조). 따라서 추진위 구성부터 완공까지 4년 정도면 충분하다. 공사기간 2년을 빼면 사업 추진부터 착공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2년이다.따라서 1985년 이후에 완공된 중층 아파트들에는 리모델링이 돌파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단지는 우선 재건축 연한이 강화돼 앞으로 5~10년 이후에나 추진이 가능해졌으며 안전진단 규정도 강화돼 사업을 추진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일반 분양분의 일부를 임대 아파트로 공급하며 후분양제가 실시되기 때문에 사업성도 불투명하다. 강남구 역삼동, 서초구 서초동, 잠원동, 반포동, 송파구 신천동의 중층 아파트들이 대표적인 케이스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모델링 사업은 아직 지지부진하다. 왜 이럴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검증되지 않은 사업성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서초구 신반포 12차 아파트는 리모델링 반대파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 J공인 관계자는 “추가 부담금이 예상보다 많고 리모델링 후 값이 많이 오른 전례가 없다는 점 때문에 주민들이 주저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반대파가 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S건설이 시공 중인 방배동 궁전아파트를 예로 들어보자. 이 아파트는 리모델링을 무리 없이 추진 중인 케이스다. 27평형 84가구, 34평형 60가구, 46평형 72가구로 구성된 이 아파트는 5~9평 늘리는 것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시공사에 따르면 30평형 대를 기준으로 지하 주차장 및 조경을 모두 공사비에 포함할 경우 평당 290만~310만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모델링 조합에 따르면 4억9000만원이었던 27평형이 35평형으로 늘어나면 매매값은 6억2000만원으로 치솟는다. 45평형으로 늘어나는 34평형은 5억9000만원→8억원, 53평형으로 늘어나는 47평형은 6억9000만원→10억원으로 뛸 것으로 예측됐다. 조합 측의 이러한 전망은 현재까진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월 5억원이었던 이 아파트의 35평형 매매값은 현재 6억1500만원이며, 6억1500만원이었던 34평형은 현재 7억8000만원에 근접해 있다. 올 하반기에 입주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8억원 돌파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그렇다면 리모델링의 경제적 실효는 얼마나 될까. 현재 매매값이 1억7000만원인 영등포구 A아파트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이 아파트는 현재 내부적으로 26평형을 31평형으로 늘리는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다. 공사 분담금은 1억300만~1억2300만원이 필요해 공사 이후 매매값이 2억7300만~2억9300만원 이상으로 올라야 겨우 손해를 모면한다. 만약 매매값이 1억4000만원 오른 3억1000만원까지만 치솟는다면 공사비를 제외하고도 약 1700만~3700만원의 이익을 보게 된다. 주변 지역 신규아파트가 평당 1500만원 정도에 분양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4억원 이상도 충분히 바라볼 수 있다고 입주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리모델링이 재건축 대안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재건축을 추진 중이던 아파트들이 리모델링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기존 사업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느냐가 숙제다. 재건축 추진위나 조합이 결성된 곳은 기존 조합을 해산하고 새로운 리모델링 조합을 결성해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조합이 바뀌면서 기존 조합에 대한 불신이 커져 새로운 조합을 결성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방배동 경남아파트는 조합원 80%의 동의를 얻어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지만 구청에서 승인받은 재건축 추진위가 아직 해산하지 않아 정식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리모델링 사업을 실시한 아파트 단지는 마포구 용강동 주공아파트 60가구와 서초구 방배동 삼호아파트 14동 96가구, 용산구 이촌동 로얄 맨션 72가구이며 서초구 방배동 궁전아파트는 올 12월에 공사가 완료된다. 이 밖에 조합 설립과 건축 심의를 마친 곳은 강남구 도곡동 동신아파트 474가구와 서초구 잠원동 한신18차 126가구다. 영등포구 당산동 평화아파트 284가구는 조합 설립 허가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