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네 소비뇽, 피노 누아, 무통 카데…. 이제 더 이상 낯선 이름이 아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동호회도 속속 생겨나고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 와인을 마시는 사람도 많아졌다. TV드라마에서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자주 등장해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와인 문화가 성숙되고 있다. 비즈니스맨들에게는 와인을 공부하는 게 필수 코스가 됐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이들 대부분이 프랑스 등 외국 와인에 대한 관심만 높을 뿐 국산 와인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와인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고려시대 충숙왕이 몽골의 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일 때 원나라 황제가 하사한 포도 씨를 가져다 심었으나 기술이 없어 재배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원 세조가 사위인 고려 충렬왕에게 포도주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내에서 포도가 재배됐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언제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만들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구한말에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대거 입국, 포도를 재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사 등에 포도주가 많이 쓰이기 때문에 가톨릭 수도원의 수사들에 의해 포도 재배와 양조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광복 후 가정에서 조금씩 와인을 양조해 마시곤 했으나 상업적 와인 수입은 금지됐다. 다만 한국관광공사가 외국 주류를 일괄 수입해 이를 관광호텔 등에 판매했기 때문에 관광호텔에서만 정식으로 수입된 와인을 판매할 수 있었고 일반 시중에는 미군부대의 군수물자 등을 통해서 흘러나온 외국 와인이 불법 유통됐었다. 국내에서 국산 와인이 정식으로 생산된 것은 지난 1968년 5월이다. 농수산물유통공사의 전신인 농어촌개발공사가 일본 산토리사와 합작으로 한국산토리(주)를 설립해 와인을 생산한 것이 최초다. 그리고 이 한국산토리(주)를 매입한 해태주조(주)가 1974년 해태 노블와인을 생산했다.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인 1970년대는 매년 봄철이 되면 보릿고개로 많은 서민들이 양식이 없어 굶어죽는 일이 허다했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은 곡류를 이용해 막걸리와 소주를 만드는 것을 보고 대중주는 곡류가 아닌 것으로 만들고, 주류를 양조하는 데 썼던 곡류는 양식으로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이것이 국민주 개발 정책의 시작이다. 이때 검토됐던 게 포도주다.포도는 일반 곡류가 잘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토질에서도 잘 재배되므로 이런 곳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여기에서 생산된 포도로 포도주를 생산하면 정부로선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국민주 개발에 참여한 회사는 동양맥주 해태주조 백화양조 등 3사였으며 1973년부터 동양맥주는 경상도에, 해태주조는 전라남도에, 백화양조는 전라북도의 척박한 지역에 수십만 평씩의 포도원을 조성해 포도를 생산했다. 이렇게 해서 국내 첫 선을 보인 것이 마주앙이다. 지난 1977년 동양맥주는 최신의 설비를 갖춘 현대식 공장을 건설해 국내에서 재배된 양조용 포도로 마주앙을 개발했다. 초기에는 국민주 개발이라는 국가 정책이 무색할 정도로 판매 부진을 면치 못했다. 국민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외국 술인 포도주와 또 포도주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양곡 확보를 위해 단번에 막걸리와 소주를 포도주로 대체하려고 한 것은 현실성이 떨어졌다.마주앙의 생산 출하가 시작되면서 청와대는 각종 행사에 마주앙을 스테이트 와인으로 사용했다. 스테이트 와인(State Wine)이란 각국 대통령 등 국가 원수의 관저에서 열리는 만찬 등에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와인을 말한다. 미국 백악관에서 공식적인 만찬에 사용되는 와인도 스테이트 와인이라고 부른다. 박정희 대통령은 특별히 마주앙을 애호했다고 알려져 있다.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장관이나 도지사, 시장들과 자주 회식을 했으며 이때 마주앙을 많이 마셨다. 국산 와인을 잘 모르던 장관과 도지사들은 대통령과 식사를 한 후 휘하 간부들과의 회식자리에서 마주앙을 선보였으며 이것이 공무원 사회에 퍼져나간 계기가 됐다. 이후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와인 소비가 급격히 증가했다.그러나 국내 포도주 공장들은 포도주 소비가 증가하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왜냐하면 포도는 묘목을 새로 심으면 그 해에 금방 포도가 생산되지 않고 여러 해를 기다려야 정상적인 포도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와인은 양이 부족하면 즉각 대처할 수 없을 뿐더러 와인 소비가 조금만 늘어나도 금방 공급이 부족하게 돼 출고를 조절해야 하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이때 마주앙은 맥주에 끼워 팔기 당하던 신세에서 벗어나 거꾸로 마주앙을 사려면 맥주를 몇 상자 이상을 사야 한다는‘귀하신’몸이 됐다. 슈퍼마켓이나 백화점 등에서는 마주앙을 낱 병으로만 판매하고 상자로는 팔지 않았다. 특히 공무원들에게 마주앙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후 진로도 와인 사업에 동참했고(샤토 몽부르), 파라다이스(나중에 수석으로 상호를 바꿔‘위하여’를 생산), 금복주(두리랑), 태양 등에서 차례로 와인을 생산하면서 국내 와인시장이 크게 확대됐다. 대선주조에서 스파클링 와인인 그랑주아를 시판하는 등 종류도 다양해졌다. 와인 시장이 붐을 이룬 데에는 각종 국제대회의 성공적 개최가 절대적이었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해 국산 와인이 많이 팔리면서 국민 1인당 연간 소비량이 약 0.2ℓ(1/4 병)로 증가했다. 그러나 88올림픽 전후 국내 시장을 개방하라는 국제적 압력이 증가해 정부는 1987년부터 외국산 와인 수입을 자유화했고 이 때부터 와인 수입회사가 설립되면서 외국 와인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어 왔다. 와인의 본고장인 프랑스 등 유명한 유럽 와인이 수입되자 국내 소비자들은 국산에서 수입산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와인 시장 전체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지만 국내산 와인은 갈수록 시장에서 관심을 잃어갔다. 1990년 연간 약 800만 병을 판매한 것을 정점으로 매년 판매가 감소해 최근에는 1990년 대비 약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양조용 포도 생산농가가 후폭풍을 맞았다. 국산 와인의 소비가 급격히 증가할 때 국내 포도주 회사들이 앞 다퉈 포도원들을 확장했으나 정작 이들 포도원에서 정상적으로 포도가 생산될 때쯤에는 국산 와인의 소비가 감소해 생산된 포도를 포도주 공장에서 수매할 수 없는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포도 재배 농가들의 과잉 생산으로 인한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기존 포도원을 폐원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양조용 포도를 재배하던 농가들은 포도나무를 다 뽑아내면서 국내 거의 모든 양조용 포도원이 문을 닫았다. 현재 마주앙 미사주 등 일부를 제외하고 100% 국산으로 만드는 포도주는 없다.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는 대부분의 와인은 수입 벌크 와인(값싼 저급 와인)과 일부 국산 와인을 섞어서 만들고 있으며 앞으로는 100% 수입 벌크 와인을 병에 담아 생산된 국산 와인도 등장할 전망이다. 와인 생산량이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 수입사들이 한몫 챙기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국산 포도 농가를 육성해야 한다. 비록 와인 생산이 단시간 내 이뤄질 수는 없지만 우리 식탁을 외국 업체들에 몽땅 내주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다. 지난 2004년 현재 국내에서는 연간 2100만 병 정도의 와인이 소비됐으며 국민 1인당 연간 와인 소비량은 약 0.32ℓ, 약 0.43 병으로 작은 와인 잔으로 4 잔이 채 안되는 양을 마시고 있다. 일본의 1인당 소비량의 약 7분의 1 수준이며 약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보다도 1인당 소비량이 훨씬 적은 수준이다. 와인 소비는 과거에 주로 40~50대에서 많이 소비됐으나 최근에는 사회 변화에 따라, 또 서양 문화를 잘 소화하는 20~30대 연령층에서 동호인 등 각종 모임을 중심으로 많이 소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