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의 와인제조업체(와이너리)들이 모여 있다는 캘리포니아주 나파 밸리(Napa valley). 샌프란시스코 북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나파 밸리는 미국의 대표적 포도 산지여서인지 길쭉한 지형이 마치 포도송이를 연상케 한다. 나파는 인디언 말로 ‘풍요’를 뜻한다. 아니나 다를까. 나파 밸리를 방문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평생을 보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매혹적인 전원 풍경과 싱그러운 자연, 넉넉한 사람들, 게다가 최고의 와인까지. 필자도 몇 년 전 여름 기차를 타고 나파 밸리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자주 그곳이 생각나곤 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빅 히트를 친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주인공 미스터 빅이 뉴욕과 단숨에 이별하고 나파 밸리로 떠나는 장면을 너무나 감명 깊게 봤기 때문이다. 이처럼 혜택 받은 풍요로운 땅, 나파 밸리의 선두주자는 단연 베린저(Beringer)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베린저는 2명의 독일계 미국인 형제가 설립했다. 1876년 와인 메이커였던 제이컵 베린저(Jacob Beringer)와 뉴욕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던 프레더릭 베린저(Frederick Beringer)가 캘리포니아로 오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후 베린저 형제는 독일 라인강에 위치한 고향집을 본떠 만든 라인하우스(Rhine House)를 세웠는데 이곳은 그 웅장한 모습 때문에 지금도 나파 밸리의 관광 명소이자 베린저의 상징이 되고 있다. 베린저는 13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나파 밸리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제조업체다. 베린저는 1918년 미국 내에 금주령이 발표돼 모든 술의 상업적 제조와 수출입 등의 거래가 금지됐을 때도 유일하게 와인을 생산했다. 베린저의 대표 와인 제조기술자이자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와인 마스터인 에드가 슈라지아는 지난 30년 간 베린저 와인을 총괄하며 전통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의 이러한 노력 때문에 베린저의 샤도네이(Chardonnay) 품종과 카버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품종 모두가 세계적인 와인 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가 선정하는 세계 100대 와인 중 1위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특히 샤도네이 품종의 와인이 1위로 선정됐던 지난 1996년은 와인 스펙테이터 역사상 최초로 화이트 와인이 1위를 차지한 해이기도 했다. 와인 스펙테이터와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와인 전문지 ‘와인 앤드 스피릿(wine and spirits)’의 ‘2005년 최고 와이너리’에도 선정됐다. 이로 인해 베린저는 이 잡지가 선정한 올해의 와이너리(Winery of the Year)에 9번이나 뽑히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레드, 화이트 두 품종 모두가 올해의 와인으로 선정된 와인은 바로 프라이빗 리저브(Private Reserve)다. 프라이빗 리저브 카버네 소비뇽은 25년 이상 된 최고의 포도밭을 선별해 그곳에서 수확한 카버네 소비뇽 100%로 만들어진 최상급 레드 와인이다. 이 와인은 각종 와인대회에서 최고의 와인으로 선정되면서 소장가치가 매우 높은 와인으로 분류되고 있다. 프라이빗 리저브는 허브와 올리브 향에 은은하게 느껴지는 담배 향이 더해지면서 와인의 품격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 묵직하면서도 섬세한 맛에 목 넘김이 편한 와인이다.100% 샤도네이 품종으로 만드는 프라이빗 리저브 샤도네이는 와인 메이커 에드가 슈라지아의 명성을 확인해주는 와인이다. 포도밭에서 온 각각의 포도를 구분해 별도로 발효와 숙성절차를 거쳐 처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입안 가득히 퍼지는 아로마 향은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한번의 시음만으로도 ‘역시 고급 샤도네이의 맛은 다르구나’라는 느낌을 받게 해준다. 이처럼 베린저 프라이빗 리저브 샤도네이는 나파 밸리 샤도네이의 탁월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표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싱글 빈야드, 즉 단일 포도밭에서 재배되는 포도만으로 만들어지는 와인 레인지도 훌륭하다. 호웰 마운틴 멀롯(Howell Mountain Merlot)은 해발 1800피트에 위치한 나파 밸리 호웰마운틴의 빈야드에서 재배된 포도만을 사용하는 와인이다. 호웰 마운틴은 포도 재배에 완벽한 화산암 토양으로 이뤄져 있어 나파 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포도밭 중 하나다. 또 해발이 낮은 언덕보다 밤에는 기온이 섭씨 5~10도 더 낮고, 낮에는 일조량이 길어 최상의 와인을 만드는데 최적의 조건이다. 밝은 컬러와 달콤한 자두 향으로 눈 코 모두를 취하게 한다.이 와인은 돼지갈비 등 석쇠에 구운 고기와 함께 먹으면 부드럽게 잘 넘어가며 음식 맛을 받쳐준다. 또 다른 와인은 싱글 빈야드에서 생산되는 매력적인 와인 나이츠 밸리 카버네 소비뇽(Knights Valley Cabernet Sauvignon)이다. 특이하게도 나파 밸리는 북쪽이 남쪽 지역보다 기온이 높은데 나이츠 밸리는 나파 밸리에서도 북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 나이츠 밸리 빈야드는 바위가 많고 배수가 잘 되는 토질과 고대에 강바닥이었던 곳에 세워져, 풍부하고 특색 있는 카버네 소비뇽을 재배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건포도와 민트의 풍미를 품고 있는 깊은 색은 위엄 있는 기사(knight) 같다. 한 겨울, 따뜻한 나파 밸리를 상상하며 온기를 느끼고 싶다면 베린저 프라이빗 리저브 카버네 소비뇽을 비우라. 볼 시린 겨울 바다가 몹시 그립다면 싱그러운 프라이빗 리저브 샤도네이로 입을 축이라. 당신은 계절과 대륙을 넘어 진정한 와인의 달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