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매출 290조원… 근면과 성실로 이룬 성공신화

월마트 본사가 있는 미국 남부 아칸소주 벤톤빌의 단층 강당 건물에서 토요일 오전 7시면 어김없이 열리는 ‘월마트 토요 조회’의 시작을 알리는 구호다. ‘L’ 다음엔 참가자 전원이 몸을 비틀며 물결 모양을 만든 뒤 박수를 치는 것으로 의식을 마무리한다. 이 의식은 1962년 창사 이래 한 주도 거르지 않고 43년째 지속되고 있다. 창업자 샘 무어 월튼(1918∼1992)은 ‘유통업의 핵심 경쟁력은 다양한 상품을 최저 가격에 파는 것’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그는 장인에게 빌린 2만달러를 밑천으로 월마트를 세워 세계 최대 공룡 기업으로 키운 인물. 샘은 돈을 벌기 위해선 남보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었다. 월마트 토요 조회는 “주말에 일하기 싫으면 유통업에서 당장 손을 떼라”며 본인 스스로 토요일에도 어김없이 오전 3시면 출근했던 그의 생활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월마트는 2004년 2880억달러(290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를 한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이라고 가정하면 세계 30위에 달한다. 이 회사는 지구촌에 170만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으며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는 최대 단일 고용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창업자 샘은 1962년 창업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남겼다. 간판 제작비를 아끼려고 ‘월마트(Walmart·알파벳 7개)’라는 짧은 상호를 택했다는 것이다. 상호가 길면 칠이나 유지보수할 때 비용이 많이 들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는 돈 문제에 철저했다. 그런 그가 훗날 미국 최고 부자의 반열에 올랐다. 지금 이 자리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차지했지만 샘 월튼의 아내와 네 자녀가 가진 재산을 다 합치면 세계 1,2위 부자인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가진 돈을 합친 것보다 많다. 현재 샘 월튼의 아내 헬렌 월튼(85)과 아들 롭(61), 존(59), 짐(57), 막내 딸 앨리스(56)가 지주회사격인 월튼 엔터프라이즈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월마트 지분은 39%다. 미 포브스지가 지난 2월 발표한 ‘세계 부호 리스트’에 따르면 이들의 보유 재산은 한 사람당 180억 달러(18조원) 안팎으로 5명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1090억달러(101조원)다. 한국 최고 갑부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가족(43억달러)보다 25배 많고,국가로 치면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57위 부국(富國)을 건설할 수 있다. 전 세계 어디에도 필적할 이가 없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부자 가문이다. 물론 월튼가가 국가를 설립할 일은 절대로 없다. 이 가족 구성원들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극도로 부담스러워하는 까닭에 공식적인 자리에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언론과의 인터뷰도 극구 사양하고 있다. 창업자 샘 월튼의 후손들은 월마트와도 일정한 선을 긋고 살고 있다. 장남 롭이 비상임 회장으로, 3남 짐이 이사회 멤버로 월마트에 직함을 걸어놓고는 있지만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대신 세계 최고 부자 가문 사람들의 관심사는 따로 있다. 2004년 12월 격주간지 포천이 월튼가 사람들을 취재한 바에 따르면 장남 롭의 취미는 산악자전거 타기와 경주용 중고자동차 수집이다. 베트남전 특전사 출신인 2남 존은 비행기 조종과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한 자선사업, 막내 딸 앨리스는 목장 운영과 어린이용 캠프 만드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현역에서 뛰고 있는 사람은 3남 짐뿐으로, 그는 월튼 엔터프라이즈 대표로 있으면서 가족들의 재정을 책임지고 있다. 왜 자녀들 중 후계자가 나오지 않았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장남과 차남의 성향을 보면 대충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원래 샘 월튼이 대권을 물려주려 했던 자녀는 장남 롭이었다. 그러나 롭은 명문 컬럼비아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후 월마트에 취직하지 않고 벤톤빌과 가까운 툴사의 로펌에 취직한다. 비록 아버지의 뜻을 거역했지만 롭은 법률고문으로서 1970년 월마트의 기업공개와 가족들의 지분 관리 등을 챙겼다. 샘은 1978년 롭을 월마트 부사장으로 불러들였으나 롭은 불과 몇 년 뒤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주위에선 롭이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포기한 것을 두고 “평생 아버지와 비교당하면서 사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2남 존은 한때 요트 제조회사인 피어슨을 경영했으나 사무실에 앉아 있는 타입은 아니었다. 형제들 중 유일하게 부친으로부터 일에 대한 집착을 물려받은 자식은 3남 짐뿐이다. 그는 월튼 엔터프라이즈 대표로 있으면서 20명의 직원과 함께 산하 기업들인 월마트, 지역은행 아베스트, 지역신문 커뮤니티 퍼블리셔 및 군소업체들을 감독하고 1000억달러가 넘는 모친과 형제들의 재산도 관리해 준다. 짐은 일벌레로 소문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월마트 경영에는 간여하지 않는다. 앨리스도 대학 졸업 직후 잠깐 월마트에서 구매담당자로 일한 적이 있지만 곧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주식 중개인으로 변신했다. 이후 ‘라마’라는 이름의 자산관리회사를 차리기도 했으나 실적은 그저 그랬고 1998년에는 아예 문을 닫았다. 하지만 앨리스는 마음먹은 것을 관철시키는 정열과 추진력은 부친을 빼닮았다는 평가다. 월튼가의 재산은 대부분 월마트 주식으로 이뤄져 있다. 이는 당장 현금화되는 것이 아니지만 여기서 나오는 배당만으로도 세계 최고 부자 가문의 체면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 월튼가 사람들이 지난해 받은 배당금은 8억8000만달러. 이 밖에 100% 가족 기업인 자산 70억달러짜리 아베스트 은행이 매년 4000만달러 정도의 수익을 낸다. 하지만 월튼가 자녀들은 씀씀이면에서 아버지를 빼닮았다. 재벌 2세에게 흔히 볼 수 있는 방만함은 산악자전거와 비행기 조종을 취미로 살아가는 롭과 존, 일에 파묻혀 사는 짐에게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벌어들이는 소득에 비해 사회 기부에는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5년 4월 발표된 미국 자선단체 기부액 순위를 보면 월튼가의 ‘월튼패밀리파운데이션’이 2003년 사회에 환원한 돈은 1억700만달러다. 나름대로 엄청난 금액이지만 한해 10억달러 이상 기부하는 빌 게이츠재단이나 4억달러 이상 내놓은 포드재단에 비해서는 액수도 적고 랭킹도 27위에 불과하다. 기부 내용으로 들어가면 과연 ‘최저 비용 최저 가격’을 평생 추구했던 샘 월튼 가족이라는 생각이 더 든다. 월튼가의 기부액은 대체로 300∼500달러(30만∼50만원)가 주를 이루는데 이 돈을 미 전역의 수많은 학교와 교육기관에 골고루 나눠준다. 월튼가는 이 때문에 세계 최고 부자 집안 치고 너무 인색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미국 내에서는 월튼가의 이런 성향을 두고 세계 최고 자산가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하게 자란 것과 달리 월튼가 자녀들은 날 때부터 부자였던 것도 아니고 슈퍼마켓에서 한 푼을 아껴가며 근면하게 일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개인사를 들추면 물론 세계 최고 부자 집안 사람들에게도 멍에가 있다. 존은 베트남 전쟁에서의 충격에서 아직까지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막내 앨리스는 16년 전 교통사고로 사람을 치어 죽인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 네 자녀 중 짐을 빼고는 모두 첫 번째 결혼에 실패했다. 미망인 헬렌도 8년 전 본인 과실의 교통사고를 낸 후로 거동이 불편하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 가족의 재산은 지금도 매년 10억달러씩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하는데 성장세를 멈추지 않는 월마트 오너(월튼) 가족의 재산은 얼마나 더 늘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