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좋은 터전은 천지간의 조화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 같은 터전에 의지하여 이로움을 얻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고 했다.(혈본천성 복유심조 穴本天成 福由心造) 이것은 다시 말해 아무리 좋은 터전이라 할지라도 이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살기 좋은 길지(吉地)가 되는가 하면 반대로 도저히 살 수 없는 흉지(凶地)가 되기도 한다는 것으로 인간과 자연 간 유기적인 관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더구나 우리네 풍수는 오랜 세월 우리의 의식 저변에 깊숙이 자리해온 우리만의 고집스러운 경험적 지혜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싫든 좋든 이 땅의 도시나 마을의 입지 선정과 시설물의 배치 등에 나름의 대안을 제시해 왔던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즉 우리식의 자연관인 풍수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이 아무리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형성된 도시이든 또는 인위적으로 급조된 신도시이든 개개인의 인식 여부와는 상관없이 자연 본래의 운동에너지가 끊임없이 작용하며 이 같은 운동에너지가 미치는 영향에 따라 도시나 마을의 진로나 건강성까지도 가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 ‘풍수’600년 전통의 서울 또한 이 같은 풍수적 도시계획에 의해 세워진 도시인 것만은 틀림없다. 자연 본래의 운동에너지는 아무리 거창한 인위적 구조물이 들어선다고 할지라도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고유한 기운은 바뀌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여전히 예전부터 지니고 있던 기운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곳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자연 본래의 운동에너지의 긍정적인 영향으로 인해 성공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둘씩 모여들게 만드는 의미 있는 곳들도 제법 많다. 이것은 마치 자석이 쇠붙이를 끌어당기듯 해당 지역의 운동에너지가 성공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상승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의 경우만 해도 성북동이나 가회동, 그리고 한남동이나 장충동, 그 밖의 몇몇 기운찬 동네는 고급 주거단지로서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름의 문화적 인프라까지 고루 갖추고 있어 성공한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고 이렇게 성공한 사람들이 모여듦으로 인해 해당 지역의 지기까지 덩달아 활발해지는 상승효과가 일어난다는 것이다.성공한 사람들의 집터는 따로 있다그렇다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 같은 터 잡기가 무조건 지기나 지세의 부단한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우기자는 게 아니라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이처럼 자신들만의 문화적 갈증을 풀기 위해서나 또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라도 이 같은 지역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이 같은 지역이 지닌 이미지가 그다지 긍정적이었던 것만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이 모여들고자 하는 경향 자체를 백안시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성공한 사람들의 터 잡기에는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다 뿐이지 앞서 말한 자연 본래의 생명 운동에 의해 물이나 바람의 흐름이 조화로울 뿐만 아니라 안온한 지세와 더불어 뛰어난 조망권까지 갖춘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특히 한남동은 다른 지역과 달리 지세의 변동이 각별해 성공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해서라도 남다른 안목을 지닐 필요가 있을 것이기에 가감 없이 그 기운을 전하고자 하는 것뿐이다.더구나 대개의 성공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그렇듯 한남동 또한 평지보다는 구릉지의 약간 높은 지대에 위치했으며 조망과 녹지 분포가 넓고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은 지형적 조건을 지녔다. 용마산(아차산성)과 뚝섬을 거쳐 옥수동과 한남동으로 이어지는 한강의 물줄기는 정릉천, 중랑천의 합수로 인해 기세를 더하고 남향이나 남동향의 조망권은 주거단지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을 고루 갖춘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다만 예전부터 지형적 특성상 도성 방어의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 조선 영조(1753년)때부터 상류쪽의 송파진(松坡鎭)이나 하류쪽의 양화진(楊花鎭)과 함께 한강진(漢江鎭)을 설치했다고 하니 누구라도 그 지세를 짐작하기에는 충분하지만 한강의 진행방향에 따른 범람과 수기(水氣)에 쉽게 노출되는 단점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하지만 일부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중랑천의 오염으로 인해 탁기가 작용하기 쉬운 지형이라거나 또는 군사적 요충지 주변에 위치한 주거지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청맹과니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소리에 불과하다. 즉 아무리 오염된 물의 유입으로 인해 탁기가 작용한다고 할지라도 자연의 순행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으며 군사적 요충지 주변은 주거지로서 부적절하다는 맹목적 편견 또한 마치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이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필자가 입지 선정에 참여한 바 있는 몇몇 아파트 단지의 경우를 살펴보더라도 주변의 군사 시설의 상승적 기세(생태적, 지형적)가 해롭게 작용하기는커녕 오히려 주거단지의 입지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았기에 하는 소리이다.한남동은 최근 들어 청계천까지 복원됨으로 인해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지속적인 에너지의 공급원을 얻게 되었으니 더더욱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근래 분별없이 들어서는 겉만 번지르르한 빌라나 임대용 주택들로 인해 본래의 지기가 차츰 줄어들고 지대가 높은 지역의 상승적 작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은 지역(한강 수계)은 지세의 이로움을 얻지 못하는 약점도 있다.청계천 복원으로 땅 에너지 유입 늘어나또 최근에는 장 누벨이나 렘 쿨하스, 그리고 마리오 보타와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미술관이나 몇몇 공익적 구조물들이 한남동의 새로운 랜드마크(landmark)로 시선을 끌고 있지만 이 또한 그동안의 폐쇄적 접근성을 해소하고 본래의 지세에 어울릴 수 있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렇다고 거울처럼 맑은 한강물이라는 의미의 화경대(華鏡臺)나 마음을 씻어준다는 세심대(洗心臺)와 같은 여유를 기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곳이 지닌 본래의 지기에 어울리는 우리만의 문화적 가치를 일궈낼 수 있는 우아한 동네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누구라도 지기의 순조로움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집 주변이나 마당에는 소나무나 유실수를 심고 담장 부근에는 키 낮은 주목이나 사철나무 등을 심어 한강을 바라볼 수 있는 조망권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며 정원용 조경석 또한 적을수록 좋다. 대문의 방향이나 침실의 위치도 집의 방향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이왕이면 이 곳의 지세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향(북쪽,동쪽,남서쪽)에 두는 게 유리하다. 건물의 외관도 첨단의 건축자재보다 벽돌이나 대리석과 같은 자연적인 소재를 이용하는 것이 좋고 내부 또한 자극적인 색깔보다 부드러운 색깔을 이용하는 것이 이곳의 지기를 머무르게 하는 비결이다.오래 전 모 인사는 필자의 거듭된 충고에도 불구하고 건축가의 작가적 정신이 스며든 보기 드문 건축물이라는 칭찬에 솔깃해 건물 외관을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뒤 채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온갖 어려움을 겪더니 결국 쫓기듯 이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의 실패가 지기의 순조로움을 얻지 못한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네 풍수의 다양한 접근 방법이라면 얼마든지 지기의 순조로움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수 또한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속담에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도 있듯이 성공한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불어 나눌 수 있는 기회 또한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으로 장차 한남동에 가면 더불어 얻는 그 무엇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