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1억5천만원짜리 출시…벤츠·BMW 등에 도전장

최근 폭스바겐이 12기통 6000cc 엔진을 탑재한 1억5000만원짜리 모델 페이톤을 국내 시장에 출시해 화제다. 화제의 이유는 대충 두 가지다. 하나는 대중차의 대표적 브랜드인 폭스바겐이 럭셔리 프리미엄 모델을 내놓았다는 점. 또 하나는 같은 등급의 BMW나 메르세데스 벤츠, 아우디 등의 차는 2억3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데 페이톤은 그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책정했다는 점에서다. 폭스바겐은 독일어로 ‘Volkswagen’, 우리말로는 대중의 차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것을 ‘국민차’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폭스바겐은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가 개발한 비틀(Beetle), 우리에게는 딱정벌레로 알려진 모델을 1978년까지 2000만대 이상 생산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폭스바겐은 누가 뭐라 해도 실용적이고 대중적인 모델을 만드는 메이커로 자리잡았다. 연간 500만대 이상의 생산대수를 기록할 정도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자동차산업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을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폭스바겐이 6000cc 엔진을 탑재한 모델을 생산해 판매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은 대목일 수 있다. 고가 모델을 생산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대중차라는 이미지를 가진 폭스바겐이라는 메이커가 그런 고가의 차를 만들었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선뜻 지갑을 열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폭스바겐의 이런 프리미엄 모델 전략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최근 시장 변화에 대한 자동차 메이커들의 대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등급의 차가 가장 많이 팔리는 미국 시장에 대한 고려와 최대 잠재 시장인 중국 시장을 겨냥한 포석의 일환이라는 얘기다. 미국 시장에서 잘 나가는 브랜드를 보면 하나같이 고가의 모델을 라인업에 포진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 아우디, 그리고 일본의 도요타와 혼다, 닛산 등 각 나라 ‘빅3’가 그들이다. 사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프리미엄 브랜드라고 하면 BMW와 메르세데스, 재규어 정도만이 인정을 받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아우디가 가세하면서 경쟁이 격화했고 그때부터 메르세데스와 BMW는 세 불리기에 들어갔다. 거기에 일본 빅3의 프리미엄 브랜드 경쟁 가세로 이 시장은 일대 혼전에 돌입했다. 바로 그 시장에 폭스바겐이 페이톤이라는 모델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메이커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의 입지 구축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처럼 후발주자들이 뛰어들면서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시장이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후발주자들의 출현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경쟁 모델의 등장으로 기존 브랜드의 판매가 급증하면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는 게 이를 증명하고 있다. BMW와 메르세데스만 해도 90년대 중반 연간 판매 대수가 60만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120만대를 넘는 수준에 달하고 있다. 경쟁은 발전을 가져오고 그 발전은 소비자들에게 즐거움으로 접근할 수 있게 돼 손길이 더 자주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른다. 경기의 흐름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사업 분야를 통해 시장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적 메이커들은 어떤 형태로든 이 분야의 모델을 라인업하고자 한다. 그것은 물론 중소형차보다 수익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장에서 팔리는 모델을 만드는 메이커의 수는 최근에도 크게 증가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그만큼 시장 진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단지 좋은 차를 만든다고 해서 모두가 제 값을 받고 팔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미국 시장에서의 판매 가격을 기준으로 전 세계 연간 판매 규모가 23만대 정도인 6만달러 이상의 가격표를 붙일 수 있는 럭셔리 세단형 모델로는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와 BMW 7 시리즈, 아우디 A8, 재규어 XJ, 그리고 폭스바겐 페이톤 정도에 불과하다.이들 모델의 2004년 판매 상황을 보면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가 5만3200대, BMW 7 시리즈가 4만7689대, 아우디 A8이 2만2773대, 재규어 XJ가 1만8569대 등이다. 후발주자인 폭스바겐 페이톤은 아직 6000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본 메이커들이 80년대 말에 내놓은 프리미엄 브랜드인 도요타의 렉서스와 혼다의 아쿠라, 닛산의 인피니티 등은 판매 면에서는 일취월장하고 있지만 가치 면에서는 아직까지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들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최상위 등급 모델의 판매 가격이 미국 시장 기준으로 6만달러부터 시작해 12만달러에 이르고 있는 데 비해 일본 프리미엄 브랜드는 가장 비싼 차가 6만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미국 시장 기준 판매가로 구분했을 때 6만달러 이상의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모델과 그렇지 않은 모델들 간의 카리스마는 차이가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시장 진입이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참고로 미국 시장 판매가 기준 10만달러를 넘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보면 이그조틱카나 튜닝 메이커 버전을 제외하고는 메르세데스 S클래스, 아우디 A8 등 3개 차종에 불과하다. 그래서 폭스바겐은 페이톤의 최고급 버전인 6000cc 모델을 1억5000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한국 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 하는 해석이 가능하다. 당장에 직접적인 싸움을 하기보다는 단계적인 절차를 밟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폭스바겐은 이미 대만에서도 비슷한 가격으로 출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다만 이런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의 가격 전략과는 달리 미국 시장 판매가는 6만6000달러부터 시작해 당초 의도대로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다. 전통과 유서 깊은 배경을 바탕으로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도 이런 브랜드 전쟁에 뛰어들기 위해 2007년 출시를 목표로 뒷바퀴 굴림 방식 모델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메이커들과 폭스바겐의 예에서 현대자동차가 무엇을 배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