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존중하면 절로 따라온다

돈이 많다는 것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이처럼 돈을 바라보는 시각은 인생관에 따라, 때로는 종교관이나 세계관에 따라 다르다. 돈을 축복으로 여기는 것처럼 돈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최대한 돈을 많이 벌려고 노력한다. 돈 많은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가 바람직한 세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대로 돈을 재앙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꼭 필요한 최소한의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돈 많은 사람들은 쓸데없는 욕심만 많은 사람으로 비쳐질 뿐이다.어떤 가치관이 옳은지는 각자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돈에 대한 생각 차이는 결국 나중에 그 사람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가의 차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돈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게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돈을 크게 벌지 못한다는 논리다. 돈은 아주 영악한 물건이어서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잘 구분해 그런 사람만 따라 다닌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말 같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차원의 얘기지만 국가적 민족적으로 넓게 봐도 역시 돈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돈을 좋아하는 국가와 민족들이 잘 사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민족이 유대민족이다. 금융계는 물론 돈이 있는 곳에는 전 세계 어디서든 막강한 파워를 휘두르는 유대민족. 이들이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돈에 대한 생각이다. 유대인들은 돈을 아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인류 최초의 유대인인 아브라함이 신으로부터 많은 재산과 소유물을 받은 것에서 보듯 돈(재산)은 창조주인 신이 인간에게 준 소중한 자산이자 기회다. 기독교의 신약성서에는 물욕보다 금욕을 강조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당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나와 있지만 유대인은 그런 신약을 무시한다. 그들이 믿는 성경인 토라에서는 금욕을 강조하지 않는다.금욕 대신 유대인들이 강조하는 것은 선행이다. 뭔가 좋은 일을 많이 해야 삶이 가치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천당도 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좋은 일을 하려면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또한 돈이 많을수록 좋은 일도 많이 할 수 있다. 즉 ‘돈의 양=선행의 양’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결국 유대인들에게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종교적으로도 바람직한 생활인 셈이다.유대인들이 이처럼 돈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에는 그들의 고통스러웠던 역사도 한 몫 한다. 그들은 기독교가 세상을 지배했던 중세 봉건시대부터 필연적으로 돈에 익숙해졌다. 성직자 귀족 농노 등 세 가지 계급구조로 형성된 철저한 기독교 사회인 중세시대에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다.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어떤 직업도 허용되지 않았다. 단지 기독교인들이 하지 않는 일들만 할 수 있었다. 금욕을 강조하는 기독교는 돈을 악으로 생각하고 돈 장사인 대금업을 하지 않았는데, 바로 그 일을 유대인들이 했다. 돈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유대인들로서는 문제될 게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독점적으로 ‘돈 장사’를 했고, 세월이 지나면서 전문가가 됐다.유대인들은 돈 장사를 하면서 많은 부를 쌓았다. 하지만 악착같이 돈을 번 탓에 늘 악덕 고리대금업자라는 비난이 따라 다녔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은 상징적 인물이다. 심한 경우 교회나 정부는 유대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외국으로 쫓아내곤 했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도 그런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고난은 거꾸로 유대인들에게 돈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해줬다. 생명이 위협을 받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죽음을 피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 돈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돈으로 말한다’는 뜻인 ‘머니 토크’(money talks)가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느꼈고, 그래서 목숨을 걸고 돈을 벌었다.돈을 소중히 여기는 유대민족은 생활 관습도 돈을 잘 벌도록 만들어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성인식이다. 유대인들의 성인식을 모르면 유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대사회에서 성인식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유대인들은 13세부터 종교적으로 성인 대접을 해준다. 그래서 만으로 13세가 되는 생일에 성대한 의식을 거행한다. 유대인들은 이날을 결혼식과 함께 평생 가장 중요한 두 날 중 하루로 꼽을 정도다. 남자 아이들의 성인식은 ‘바 미츠바’(Bar Mitzvah)라고 한다. 히브리어로 바는 아들, 미츠바는 계명을 의미한다. ‘계명을 따라 사는 아들’이라는 뜻으로 성인식을 마치면 종교적으로 ‘책임있는 사람’, 즉 완전한 성인이 되는 것이다. 여자의 경우 ‘바트(Bat) 미츠바’라고 한다.성인식 날에는 통상 교회에서 종교행사를 가진 뒤 연회장이나 대형 식당을 빌려 결혼식 피로연 같은 축하모임을 한다. 재미있는 것은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결혼식처럼 부조금을 낸다는 점이다. 친구들은 물론 가족들도 대부분 현금으로 부조를 한다. 할아버지나 할머니 그리고 가까운 친척들은 이때 유산을 물려준다는 생각으로 적지 않은 돈을 건네기도 한다. 미국 중산층 유대인 가정의 경우 한번 성인식을 치르면 보통 5만∼6만달러의 돈이 들어온다. 행사 비용을 뺀 나머지는 성인이 된 주인공의 이름으로 예금을 하거나 채권을 사서 묻어둔다. 이 주인공이 20대 초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쯤 이 돈은 적어도 두 배 이상 불어나 있다. 유대인 청년들은 우리 돈으로 대략 1억원 안팎의 쌈짓돈을 갖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얘기다. 때문에 이들의 고민은 ‘당장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어떻게 이 돈을 불리나’로 모아진다. 똑똑한 유대인들이 젊은 시절에 창업의 길로 나서거나 쌈짓돈을 굴려 눈덩이처럼 불릴 수 있는 금융업을 선호하는 배경이기도 하다.성인식 전통이 보여주듯 유대인은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큰 돈을 벌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잘 알고 있다. 지금도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에는 유대인들이 가득하다. 대부분 회사 직원의 30% 이상이 유대인일 정도다. 요즘 젊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직업 선호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변치 않는 인기 직종은 역시 금융업이다. 다른 무엇보다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창의력 있는 비즈니스이고, 또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돈을 버는 데는 돈 장사가 최고라는 점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