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과 미니멀 아트 디딤돌로 美 워홀·버그·루샤 등 ‘황제주’ 등극

근 몇 년 간 세계 미술시장에 불어 닥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동세대 미술(Contemporary Art)에 대한 투자 붐이다. 현대 미술사에서 미국이 그 흐름의 중심에 서게 된 시점을 50년대 말, 60년대 초 팝아트(Pop Art)와 미니멀 아트(Minimal Art)가 태동한 시기로 보며 이 때를 동세대 미술의 시발점으로 간주한다. 팝아트와 함께 도널드 저드(Donald Judd), 칼 안드레(Carl Andre), 로버트 라이먼(Robert Ryman) 등을 주요 작가로 하는 미니멀 아트는 미국 미술을 비로소 유럽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한 대표적인 사조였다. 그렇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은 주로 미술관이나 취향에 따라 선호도가 깊은 개인 컬렉터들에게 국한되어 있었다. 가장 미국적인 현대미술이라 할 수 있는 팝아트는 이미 90년대 초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나 재스퍼 존스(Jasper Johns)의 작품들이 경매에서 최고가를 경신하는 등 시장에서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었으나 팝아트 작가들 중 미술사적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품들의 경우 그때까지만 해도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앤디 워홀, 라우센버그, 재스퍼 존스 등과 더불어 미국의 대표적 팝 아티스트에 로이 리히텐스타인(Roy Lichtenstein), 에드 루샤(Ed Ruscha) 등이 추가되는데 이들은 모두 90년대 중반 이후 폭발하는 미술 시장의 성장 속에서 대표적 블루칩 작가로 군림하며 주요 작품들은 경매시장에서 몇 백만달러, 때로는 1000만달러 이상을 호가하는 놀라움의 대상으로 미술시장의 새로운 황제주가 되었다.그러나 이들 작가들의 모든 시기의 작품들이 다 최고의 가격에 판매되는 것은 아니다. 60년대에 태동한 미니멀 아트와 팝아트 작가들의 최고 블루칩 아이템은 60년대에 제작된 작품들이다. 20대의 젊은 시기에 제작된 이들의 작품이 현재 미술시장에서는 품귀 현상을 빚으며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생존 작가일 경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작품을 제작해 오고 있지만 미술 시장은 새로운 사조를 처음 태동시키면서 활발하게 실험하던 시기의 작품들에 대해 가장 높은 가치를 매기고 있다. 그 예로, 앤디 워홀이 1962년에 제작한 캠벨 수프 회화는 2003년도 경매에서 240만달러에 거래됐지만 1986년에 제작한 비슷한 규격의 동종의 시리즈 작품은 2002년도 경매에서 불과 8만여달러에 낙찰됐다. 이 외에도 수백만달러를 호가하는 이 작가의 플라워 시리즈, 전기의자 시리즈, 자화상 시리즈, 마릴린 먼로 시리즈 등도 모두 60년대에 제작된 작품들이다. 에드 루샤는 로이 리히텐스타인과 더불어 미국 소장가들에게 가장 인기 높은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드넓은 캘리포니아의 하늘을 배경으로 한 회화를 통해 자동차 문화로 대변되는 미국 현대인의 삶을 주로 그려낸다. 에드 루샤의 회화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8만달러에서 12만달러 정도에 거래됐으나, 90년대 후반 팝아트 시장의 붐을 타면서 60년대 제작된 작품들이 200만달러, 90년대 이후 제작된 작품들이 30만달러 이상을 호가하면서 몇 배 이상의 가격 상승을 보이고 있다. 그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미국관 대표작가로 출품했는데 베니스에서 행사가 개막하기도 전에 현장에 설치된 회화 작품들이 모두 사전 매진되기도 했다. 팝아트와 미니멀 아트가 60년대 미국 미술을 이끌어가는 동안 독자적인 추상적 낙서화의 세계를 추구했던 사이 톰블리(Cy Twombly)는 50년대 말, 당대의 흐름과는 역행적으로 유럽행을 택하며 그곳의 역사 유적과 문화에 감명을 받아 그 경험을 추상적 낙서화로 옮겨놓는 작업으로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사이 톰블리 시장의 특징은 90년대 초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시세의 큰 굴곡 없이 항상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의 1971년 작 회화(규격 300×467cm)는 1990년 경매에서 이미 550만달러라는 엄청난 액수에 거래됐다. 물론 그의 이러한 작품은 현재의 시장 상황에서는 1000만달러를 훨씬 웃도는 가격에 거래될 것이다. 60년대 미국 미술을 내용적으로 이끈 또 한명의 대표적 작가는 브루스 나우만(Bruce Numan)이다. 그는 난해한 개념미술과 비디오 아트 등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작업을 추구해 왔는데, 현대미술의 지적(知的) 실험의 영역에서 후대 작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60년대 조각 작품은 100만달러를 육박하며 드로잉 작품들은 규격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항상 10만달러 안팎의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이 밖에도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욱 정열적인 예술 세계를 펼쳐가는 여류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작품들도 대표적인 블루칩에 속한다. 지난 몇 년 간 세계 미술 시장규모의 전반적인 확대는 위에 언급한 60년대의 미국 스타 작가들의 작품가 상승은 물론 그 후세대 작가들 작품가격의 동반 상승을 불러왔다. 팝아트의 포스트 제너레이션으로 80년대의 스타 작가인 제프 쿤스(Jeff Koons)는 한때 침체기를 겪었으나 미국 현대미술의 대표주자로 화려하게 부활하여 이제 90년대에 제작된 회화가 경매에서 200만~300만달러에 거래되는 등 슈퍼 블루칩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들 외에 최근 2~3년 간 시장에서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한 대표적인 작가 중 한명이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다. 그는 이미 80년대 후반 미국의 대중문화를 지적인 패러디와 유머로 해석해 수준 높은 비판적 회화와 사진작품들을 선보인 작가이지만 2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그의 작품들이 재조명 받으면서 시장에 수요가 급증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6만~8만달러 정도에 거래되던 그의 회화가 현재는 30만~50만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그의 사진 작품도 불과 2년 사이에 3배 정도의 가격 상승을 보여 최근 가장 가파르게 가격이 상승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또 60년대에 다른 작가들과 함께 팝아트를 시작했으나 뜸한 활동으로 동료들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존 웨슬리 (John Wesley)가 최근 미술시장의 새로운 다크 호스로 떠오르며 전문 소장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의 90년대 작품들은 몇 만달러 선이며 60, 70년대의 작품들이 10만~20만달러 선으로 아직까지 시장의 본격적인 붐이 일지 않은 상태이나 곧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90년대의 가장 대표적인 미국 스타 작가는 매튜 바니(Matthew Barney)라 할 수 있는데, 그의 조각 작품들은 대부분 미술관이나 전문 재단이 소장하고 있으므로 고가이지만 개인 거래는 활발하지 않다. 경매 등 일반적인 시장에서 접하게 되는 그의 작품은 주로 사진 작업이며 철저한 작품 관리로 고가의 안정된 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 밖에도 90년대 이후 미국의 젊은 작가들 중 상당수가 사진미술의 영역에서 활동하게 됐고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