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 가족 경영 와인 명가들이 참여하는 PFV의 연례모임에 참석한 멤버들. 이 자리에서는 가족 기업의 가치를 제고하고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한 방법들이 논의됐다. 거대 자본들이 와인업계에 진출하면서 PFV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난해 8월 프랑스 주요 방송국 중 하나인 M6에서 방영한‘와인의 왕조들(Les dynasties du vin)’은 한 달 앞서 에페르네(Epernay)에 위치한 샴페인 명가 폴 로저(Pol Roger)에서 이틀간 열린 PFV 연례 모임에 참석한 이들을 소개했다. 모임 중 찍었다는 사진 속에는 어린 꼬마들부터 연세 지긋하신 어른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인사들이 모여 있다.직접 만나 보았기에 먼저 눈에 들어온 인물은 샤토 무통 로트쉴드의 여주인이다. 그녀의 아들도 눈에 띈다. 필리핀느 여사 앞 두 꼬마는 어쩌면 차후 무통을 이끌어 갈 주인공일 확률이 높다. 와인도 와인이지만 미모로도 유명한 안티노리가의 딸은 사진 속 정중앙에서 밝게 웃고 있다. 대개의 경우 무뚝뚝한 표정을 고수하는 알바레즈도 어쩐 일인지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짓고 있다.대체 무엇 때문에 이 내로라하는 와인계의 거물들이 한자리에 모였을까. PFV는 프리멈 파밀리에 비니(Primum Familiae Vini)의 약자로 현재 11개의 가족 경영 와인 명가들의 모임이다. 1990년 스페인의 미구엘 토레스(Miguel TORRES)와 부르고뉴 드루엉(DROUHIN)의 로베르가 사석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가족 경영 와이너리들이 직면한 여러 문제점과 와인에 대한 철학 등이 비슷한 것을 알고는 이후 뜻을 같이 하는 명가들을 모았다.빛나는 전통을 지키는 가운데 가족 소유 기업의 가치를 증진하며 미래를 이끌어갈 다음 세대들을 위한 생존과 번영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공유하고 논의해 나가는 것이 이들 모임의 이유다. 대놓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거대 자본의 움직임은 이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1993년 공식적으로 모임을 발족하며 이들은 회원 수를 12곳으로 제한했다. 토레스, 드루엉을 위시하여 알자스의 위겔(Hugel), 샴페인의 폴 로제,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의 브뤼노 프라(Bruno Prats), 샤토 무통 로트쉴드의 바론느 필리핀느 드 로트쉴드(Baroness Philippine de Rothschild), 론의 자불레(Jaboulet), 스페인 베가 시실리아의 알바레즈(Alvarez), 포르투칼의 시밍톤 패밀리(Symington), 독일의 에곤 뮐러-샤르츠호프(Egon Muller-Schartzof), 이탈리아의 안티노리(Antinori) 그리고 유일한 유럽 외 가문 멤버였던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가 창단 멤버다.멤버가 될 수 있는 자격은 크게 세 가지다.‘가족 단일 경영 체제’를 갖춘 곳이어야 하고, 세계적인 명성의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기존 회원들에게 가입에 관한 만장일치를 받아야 한다. 최고의 와인을 생산한다 하더라도 가족 경영 형태를 벗어났거나 다른 소유주를 끌어들이면 멤버 자격이 박탈된다.이미 1998년에 샤토를 매각한 브뤼노 프라가 회원 자격을 잃었으며 2005년에는 소유권과 경영권에 변화가 찾아온 몬다비가, 2006년에는 무거운 상속세를 감당할 수 없었던 자불레가 와이너리 매각을 결정함으로써 더 이상 이들의 모임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사시카이아를 생산하는 테누타 산 귀이도(Tenuta San Guido)와 샤토 네프뒤파프의 지존 샤토 드 보카스텔을 소유하고 있는 페렝(Perrin et Fils)이 새로운 회원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2009년 현재 이 모임엔 총 11개의 명가가 소속되어 있다.이들은 매년 돌아가면서 회장을 선출하고 1년에 한 번씩 모여 차후 활동 계획을 논의할 뿐 아니라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보고 이에 따른 대처 방안을 함께 모색한다. 2008년 폴 로저 와이너리에서 모인 PFV 멤버들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문제점과 해결책에 관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의 스케줄은 최소 2년을 앞선다. 2010년까지의 주요 활동 계획이 이미 2008년 연례 모임에서 확정됐다. 2002년에 이어 2006년에 도쿄, 방콕, 홍콩, 상하이를 거쳤다는데 우리나라는 비껴갔다. 서운한 마음에 이유를 살피니 이들이 움직이는 저변에는 세계적인 체인망을 가지고 있는 호텔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이들과의 만남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지 국내 한 와인 회사에서 올 봄 급기야 PFV 관련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PFV 회원사의 와인을 곁들인 식사와 함께 전반적인 와인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총 8회에 걸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호스트는 이미 PFV 멤버들과 오랜 기간 함께 일해 왔고 또한 여전히 1년에도 몇 차례씩 만나고 있는 국내 와인 회사들의 대표다.11개 와이너리의 역사를 합해 보니 2500여년에 가깝다. 그들이 조상에게 물려받은 생존의 정신과 노하우를, 그 정신과 노하우가 빚어낸 최고의 와인들을 맛보며 들을 수 있는 기회라니 와인 애호가라면 솔깃할 만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역시나 이미 1기는 진즉 마감이 되었고 2기 멤버는 1기에 참여 못한 신청자들로 벌써 마감 임박임을 알려왔다.어느 시대건 쉬이 살았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국내 상황도, 국제적 여건도 편히 숨을 쉬어볼 만한 틈이 보이질 않는다며 너나없이 힘들어 하고 있다. 힘든 시간 어려울수록 서로 머리를 맞대고 어려움을 뚫고 일어설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열정이 필요하다. 서로에게 파이팅을 외쳐주고 어깨를 다독여 주는 일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PFV의 움직임은 그래서 한 번쯤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름만 들어도 ‘오~’ 소리가 절로 나오는 와인들을 만들어 내는 그 명성을 얻기까지 와인 명가들이 쏟았던 정열과 노력은 여기 이 자리에서 몇 글자로 요약한다는 자체가 벅찬 일이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전 세계를 돌며 자신들의 와인을 홍보하는데 여기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PFV 컬렉션 케이스’다. 모두 자신들의 플래그십 와인들을 내놓는다. 위의 와인 리스트는 3년 전 그들의 아시아 투어 중 한 자선행사에 내놓은 것이다. 이 케이스로 인해 벌어들인 수익금은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별도 판매는 하지 않는다. 죠셉 드루엉의 화이트 와인을 빼면 모두 국내에서 판매되었던 와인들이다. 이들 11개의 와인 가격을 얼추 셈해보니 아무리 저렴하게 매겨도 600만 원을 뛰어 넘는다.글 김혜주 알덴테북스 대표· 사진제공 와인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