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 소띠 해인 기축년(己丑年)은 ‘여유와 평화의 해’라고 한다. 하지만 2009년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2008년에 이어 2009년 역시 가장 많이 회자되는 키워드는 ‘불황’이 될 전망이다.경기가 침체되면 문화 쪽의 분위기는 어떨까. 소비자들은 생활비 절감을 모색한다. 실제 지난 연말 한 업체의 온라인 설문 조사 결과 약 44.2%가 문화·레저 활동비를 줄였거나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국 일반 소비자들은 일상생활에서 당장 급하지 않은 항목부터 지출 요인을 줄인다는 것이다.그래서 주요 은행 프라이빗 뱅커들이 권하는 불황기 재테크의 공통된 전략 중 하나는 ‘현금 자산 확보’다. 그만큼 유사시에 대비하라는 말이다. 또한 실용적인 경제활동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기도 하다. 미술과 관련해서도 그럴까.사실 미술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미술품은 원래 태생부터 단기적인 환금성이 뛰어난 품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집 이후 경제적 부가가치의 기대치는 적어도 최소한의 일정 기간을 필요로 한다.그것이 아니라면 단기목표의 전문적인 아트 펀드나 투기에 가까운 모험을 해야 하는데 이는 권장할 만하지 않다.투자, 혹은 재테크 관점으로 접근하기 위해선 우선 미술품의 ‘공유’와 ‘소유’ 개념의 차이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전자는 당연히 누구나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대중화의 측면을 말한다. 하지만 후자인 소유는 작품의 이미지 저작권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해 독점적인 권한을 갖는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미술 감상을 통한 공유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미술품 수집을 통한 소유 개념은 소수의 선택적인 층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결국 미술품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 행사는 생산자인 작가와 소비자인 수집가만이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관에서 그 영화는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영화 판권이나 저작권에 대한 소유는 연출한 감독과 비용을 지출한 제작자에게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따라서 PB의 권장 사항이던 ‘현금 자산 확보’라는 측면과 비유한다면 미술품은 오히려 수집 이후 ‘중·장기적’ 보유를 통한 기대 수익을 계획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미술품의 기대 수익은 반드시 재판매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그 시기를 가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마치 영화도 주변 상황을 면밀히 살펴 개봉 시기를 결정하듯 미술품의 리세일 시기 역시 시장과 작가의 활동 현황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아무리 너도나도 불황에 허덕인다고 하더라도 그 태풍을 비켜가는 사람은 꼭 있다. 무조건 대외적으로 이름을 크게 떨쳤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튼튼한 내실이 더 중요함은 요즘 같은 시기엔 불변의 진리다. 무조건 대기업이란 브랜드만 있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이 갖지 않은 원천 기술을 가진 이름 없는 소규모 기업이 더 알짜일 수 있다는 얘기다.미술품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작가 브랜드’만을 좇았다. 하지만 지금은 과연 그 작가가 지닌 브랜드가 현재 시류에만 부합한 트렌드를 대변하는 것인지, 아니면 더욱 새로운 시류를 이끌어 갈만한 잠재적인 창의력까지 지녔는지를 꼭 살펴야 한다.작가의 저력은 미술품이 대중에게 인지도가 생긴 이후 최소 2~3년 후에 그 진가가 발휘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전문적인 프로 컬렉터일수록 작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비전을 산다. 당장의 기능성보다 ‘지금’으로부터 앞으로 어떤 발전 가능성이 있겠는가 하는 ‘미래 가치’에 투자하는 셈이다. 불황기일수록 기업의 발전 가능성을 꼼꼼히 살펴서 투자하는 것이 상식이다. 미술 역시 지금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땐 어차피 유행하는 트렌드의 비중이 아주 낮아지기 때문에 차기 시즌까지 트렌드를 이끌어갈 잠재적 발전 가능성 있는 작가를 찾는 것이 현명하다.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문명 비평가인 기 소르망은 “한 나라가 배출한 예술가들은 무한한 경제적 자산이기 때문에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예술 분야에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불황’이란 단어와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경기 부양책’이다. 문화나 예술이 무한한 경제적 자산 가치나 국가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선례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정부 차원보다는 개인이나 몇몇 기업들의 노력이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일 것이다. 문화(특히 미술)는 체계적으로 쉽게 산업화할 수 없는 속성을 지녔다. 규제와 시스템에 의한 운영이 아니라 개개인의 감성적 기호가 모여 무형의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 국가의 문화적 비전도 개인의 감성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시스템이나 제도적인 빈약함만을 탓하기엔 너무나 시간이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화의 무형적 가치가 곧 유형의 경제 가치, 혹은 경쟁 가치로 부각될 것이다. 불황이라고, 지금 당장 먹고사는데 지장 없기 때문에, 피부로 와 닿지 않아서 마냥 손 놓고 있을 것만은 아니다.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지금은 경제 여건과 미술 시장이 매우 견고한 상관관계를 갖게 된 시대를 맞았다. 그리고 시장 규모나 범위가 빠른 속도로 글로벌화되고 있다. 주변의 국제 미술시장 동향도 잘 살펴야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끝으로 한 예를 더 들어보자. 우리 주변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미술 시장은 중국이다. 중국이란 나라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극과 극이다. 경제나 미술 역시 거품이 많다는 얘기도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연말 블룸버그통신이 영국 경제경영연구센터(CERB) 보고서를 인용한 흥미로운 기사를 내놓았다. 이번의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주요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 순위가 크게 변동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그중에서 2007년 4위를 기록한 중국이 독일을 올해 앞서고 2010년엔 일본까지 추월해 세계 2대 경제 대국으로 급부상한다는 예견이다. 당분간 중국은 성장률이 다소 둔화되더라도 마이너스 성장은 없을 것이란다. 전망은 전망일 뿐,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경제 대국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는 얘기다.그렇다면 중국 미술 시장의 변화는 어떻게 될까. 위의 기사가 현실이 된다면 미술 시장 역시 매우 좋아질 것은 뻔하다. 이 얘기는 어차피 경제가 좋아지면 미술 시장도 좋아질 테니 지금은 경제 회생에만 신경 써야 된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 반대 얘기다. 나중에 경제 회복기에 제대로 된 문화적 부대 효과를 기대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늦지 않는다는 것이다.여하튼 새로이 밝은 기축년은 소의 근면 성실한 부지런함을 교훈삼아 다양한 방면의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 미술품 투자 역시 서두르지는 않되 포기하지 말자. 소의 꾸준함과 근면함처럼 미술에 대한 관심의 끈 역시 놓지 않는다면 반드시 새로운 문화적 무형의 가치에 대한 수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