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강남권 재건축 시장의 변화의 가장 큰 단초는 규제 완화였다. 안전 진단을 한 번만 받아도 되도록 하는 등 절차를 간소화하는 한편 소형 아파트 의무 비율을 완화하고 용적률을 높여준 것들은 재건축 시장의 큰 호재다.난 1월 중순. 평소부터 친하게 지내던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T공인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재건축 아파트 시장 분위기도 알아 볼 겸 찾아가겠다고 했더니 오후 6시 이후에 들러줄 수 없겠느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두 달 전만 해도 언제든지 놀러오라고 했던 그였지만 요즘은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미안해했다.“급매물이 소화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집을 팔겠다는 사람과 사겠다는 사람 모두에게서 문의가 빗발치고 있어요. 시장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와 입이 다 아플 지경이에요.”서울 강남권 재건축 시장이 꿈틀대고 있다. 바닥을 치고 비상하는 시점인지, 낙폭 과대에 따른 기술적 반등인지는 확단하기 어렵지만 지난해 하반기와 비교할 때 시장에 변화가 생긴 것만은 분명하다. 재건축 아파트가 몰려 있는 강남권의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늦가을만 해도 ‘사람 그림자’조차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난해 12월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정부가 꾸준히 내놓은 규제 완화가 어느 정도 ‘약발’을 내고 있는데다 규제가 더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도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아파트 값이 더 이상 떨어지기 힘들 것 같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저가 매수세에 나섰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평가다.실제로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급매물은 상당 부분 소진됐고 호가도 1억 원 이상 올랐다. 강남구 개포 주공 4단지 내 D공인 관계자는 “연말에 7억6000만 원 정도 하던 49㎡형이 최근 8억3500만 원에 팔렸다”며 “그 이후 매물 호가가 8억 원대 후반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1억 원이 상승한 것이다. 그는 “다른 중개업자와 함께 거래를 주선할 것까지 포함해 연초부터 보름 동안 4건이나 계약했다”고 덧붙였다. 아직까지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되지 않아 은행권 대출이 40%밖에 되지 않아 매수자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아직까지는 현금 동원 능력이 있는 사람만 제한적으로 찾고 있다며 8억3500만 원에 아파트를 구입한 사람은 대출을 받지 않은 것 같다고 귀띔했다. 동탄신도시 등에서 토지 보상금을 받은 사람도 기웃거리고 있으며 해외 교포들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대치동 은마아파트도 들썩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재건축 아파트 시장의 대명사 격인 은마아파트는 최근 102㎡형이 8억3000만 원에 거래돼 7억 원대 중반이었던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 112㎡형은 호가가 10억 원대로 진입한 상황이다. 은마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있는 C공인 관계자는 “연초에 급매물이 빠지면서 호가가 순식간에 올랐다”며 “지금은 매도자와 매수자의 희망 가격 차이가 너무 커진 탓에 눈치 작전이 벌어져 잠시 소강상태”라고 말했다. 압구정 현대는 집값이 워낙 비싸 매수세가 많지는 않지만 문의가 꾸준하다. 송파구는 정부가 제2롯데월드 초고층빌딩을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2006년 하반기 최고 10억 원을 호가했던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도 지난가을 6억 원대 초반까지 추락하며 체면을 구겼으나 급매물이 거래돼 7억 원대로 올라섰다.이 같은 상승세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부동산 정보 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1월 셋째 주 강남구 재건축 아파트 가격 변동률은 0.71%를 기록했다. 첫째 주 0.19%와 둘째 주 0.45%에 이어 매주 상승세다. 작년 12월 첫째 주에는 마이너스 1.75%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이후 내림 폭이 줄어들면서 반등했다. 송파구의 경우 지난해 말까지 하락세를 보였지만 올 1월 셋째 주에는 무려 2.45%나 급등했다. 반포 주공3단지를 재건축한 반포자이가 입주에 들어가면서 물량 부담이 심해진 서초구만 아직까지 마이너스 변동률 상태를 보이고 있다. 국토해양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12월 강남3구의 재건축 아파트 거래 신고가 244건으로 집계돼 전월 대비 80% 늘었다. 아파트 거래 건수는 작년 4월 900건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오다가 10월과 11월에는 각각 156건과 133건까지 떨어졌다. 연초 신문에서는 은마아파트 102㎡형의 실거래가가 7억500만 원까지 추락했다며 ‘굴욕’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가격이 저렴한 1층이었고 같은 달 8억1500만 원(12층)에 거래된 사례도 발견됐다.매수자들이 움직임에 나서면서 금융권도 덩달아 바빠졌다. A은행 송파지점의 경우 지난해부터 하루 3~4건씩 주택 담보대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대출 문의는 사실상 전무했다. 저축은행의 대출 상담 건수도 20~30%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주택 담보대출 증가액이 늘기도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출 증가액은 지난해 10월 1조 원에서 11월에는 1조8000억 원으로 늘어났으며 12월에는 2조3000억 원으로 글로벌 금융 위기가 본격화하기 이전인 7월(2조4000억 원) 수준까지 회복했다. 업계에서는 주택 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의 이율이 2%대로 사상 최저 수준까지 하락한 것도 원인의 하나로 풀이했다.물론 강남권 재건축 시장의 변화의 가장 큰 단초는 규제 완화였다. 안전 진단을 한 번만 받아도 되도록 하는 등 절차를 간소화하는 한편 소형 아파트 의무 비율을 완화하고 용적률을 높여준 것들은 재건축 시장의 큰 호재다. 한시적이지만 2년 동안 양도소득세가 완화되고 종합부동산세가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매수 심리를 자극하기도 했다.게다가 시장에서는 추가 규제 완화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여당인 한나라당의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강남3구를 이르면 3월까지 투기지구·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투기지구와 투기과열지구가 동시에 풀리면 대출 조건이 크게 완화돼 주택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실거래가가 6억 원을 초과하는 아파트라고 하더라도 총부채상환비율(DTI)이 60%로 늘어나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도 원칙적으로 폐지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DTI가 40%로 묶이고 LVT도 40%를 적용받아왔다. 강남권 재건축 시장이 꿈틀대자 거래를 주선해 돈을 버는 몇몇 중개업자들은 요즘 상황이 불안하다는 말까지 내놓고 있다. 집값이 들썩이면 정부가 부담을 느껴 투기지구 등의 완화를 머뭇거릴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투기지구 해제는 지난해 12월에 풀릴 수도 있었지만 시장이 불안하다는 지적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일단 보류를 지시하기도 했다.문제는 시장의 기대처럼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시장이 ‘꿈틀’ 단계를 넘어 ‘탄력’ 단계로 넘어설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고개를 가로젓는다. 재건축 시장은 투자 목적이 크기 때문에 경기 회복이 본격화되지 않는 이상 수요가 뒷받침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사장은 “규제 완화에 따른 기대 심리와 집값 하락 폭이 너무 컸다는 데에 공감대가 조성되면서 어느 정도 거래의 숨통이 트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지금 상황에서는 시장이 살아날 것으로 볼 만한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고 분석했다. 실물경기가 아직까지 바닥을 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희선 부동산114 전무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돈이 있어야 집을 사는데 지금 돈 있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되물으며 “본격적으로 장이 섰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전무는 “요즘 매수자들은 집값을 최대한 싸게 사는 것으로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생각”이라며 “급매물이 소화돼 호가가 오르면 매수가가 다시 급속히 위축되면서 호가가 떨어지고 일부 사람들이 이때를 기회 삼아 저점 매수에 나서는 식의 박스권 장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박종서 한국경제신문 건설부동산부 기자cosmos@hankyung.com개포 주공아파트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