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감독: 우위썬 주연: 량차오웨이(주유 역) 진청우(제갈량 역) 장펑이(조조 역) 장전(손권 역) 자오웨이(손상향 역) 후쥔(조자룡 역) 린즈링(소교 역)중국의 대표적 역사소설인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적벽대전’. 총 800억 원을 들인 중국 영화 사상 최대 규모의 블록버스터다. 그러나 흔히 추측하는 것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은 유비 관우 장비, 그리고 조조가 아니다. 주인공은 주유(량차오웨이 분)와 제갈량(진청우 분)이다. 당초 우위썬 감독은 저우룬파를 주유로 점찍고 있었으나 그가 고사하는 바람에 큰 좌절을 겪었지만 다행히 량차오웨이가 출연을 자청하고 나서 수습되는 등 갖은 우여곡절 끝에 제작을 마치고 결국 중국 최대 흥행작이란 기록을 낳게 됐다고 한다. ‘적벽대전’을 통해 절세의 책사인 제갈량의 협상 기술을 엿보자.때는 한나라 건안 13년(AD 208년). 환관과 외척의 다툼으로 조정이 흔들린 틈을 타 조조가 황제를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결국 헌제 건안 13년에 조조는 군사를 이끌고 유비와 손권을 치려고 한다.막강한 조조의 80만 대군에 밀려 쫓겨나다시피 형주를 빠져 나온 유비. 남은 군사는 고작 1만 명이다. 유비의 군대는 관우 장비 조자룡, 그리고 책사 제갈량 등 걸출한 영웅들을 거느리고 있으나 조조의 대군에 비하면 턱도 안 되는 중과부적에 몰린 백척간두의 위기 상황에 몰린다.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제갈량은 동오의 손권과 동맹을 맺고 오겠다고 한다. 그는 동오와의 동맹을 통해 천하를 삼분해 손권은 강동을, 유비는 촉을 장악해야만 중원의 조조를 막아낼 수 있다는 그 유명한 ‘삼분’ 전략을 내세우고 서둘러 동오로 길을 떠난다.제갈량을 반갑게 맞는 손권의 노련한 책사 노숙. 그의 안내로 들어선 손권의 대전엔 수많은 중신들이 조조의 백만대군 침공 소식에 벌벌 떨며 손권에게 너도나도 전쟁 불가를 주청하느라 떠들썩하다. 소란한 좌중 사이를 헤치며 수심에 찬 얼굴로 들어서는 26세의 젊은 손권. 기다렸다는 듯 잰걸음으로 다가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알현 인사를 올리는 제갈량. 신야성에서 유비가 조조에게 완패한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손권의 냉랭한 응대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의 치밀한 설득이 펼쳐진다.제갈량: (단호한 어조로) 조조의 목표는 천하통일입니다. 강동의 세력도 막강하니 조조와 맞서 싸우시지요.제갈량의 참전 종용에 중신들의 반대가 거세다.제갈량: (비웃듯 웃음을 머금고) 용기가 없다면야, 속히 항복해 걱정을 없애시지요.손권: (자존심이 상한 듯) 그럼 왜 유비공은 투항하지 않는 거요?제갈량: (가르침을 내리는 듯) 공자 맹자 가르침을 봐도 항복은 소인배만의 갈 길이지요. 항복은 폭군 조조를 돕는 격! 실패가 하늘의 뜻일지라도 항복의 수치보다는 낫지요. (아예 등을 휙 돌리고 뒤로 돌아서며 조롱하듯) 뭐, 항복하시든가요. 가문과 생명은 보전하실 테고 조조가 원래대로 강동을 맡겨주면 어찌 마다할까요?)손권: (구겨진 자존심에 눈을 부릅뜨며) 그럼 난 유비에 견줄 수 없다?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제갈량은 손권에 대한 칭송과 함께 조조가 백만대군이라고는 하지만 오합지졸이며 수전에 약하니 승산이 있다고 설파한다. 구구절절 옳은 제갈량의 얘기에 손권의 가슴 속엔 조조를 무찔러 대업을 이루겠다는 야심의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이때를 놓칠세라 손권에게 바짝 다가선 제갈량의 마지막 한마디 “드디어 황제의 기량을 만천하에 알릴 때입니다.” 손권은 가만히 제갈량의 어깨에 손을 얹어 무언의 동의를 표시한다.중국인들에게 체면이나 위신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더욱이 자신과 라이벌인 기업이나 특정 인물과의 비교에서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거나 위상이 뒤진다는 등 자신의 위신이나 체면을 손상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위인은 없다. 그래서 중국 비즈니스에서 제일의 금기 사항은 상대방의 위신과 체면을 깎는 언행이라고 한다.그러나 역으로, 조심스럽게 주의하면서 적절히, 그리고 간접 화법으로 중국인의 자존심을 긁어 주는 것은 요지부동 비협조적으로 일관하는 중국인 비즈니스 파트너를 움직이도록 자극하는 데는 효과적인 미끼가 될 수 있다.그런 다음 상대에게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제안을 던졌을 때, 중국인의 반응은 더욱더 긍정적이다. 더 나아가, 객관적이고 수치적인 이해득실뿐만 아니라 브랜드 개선, 업계 순위 상승, 게다가 자신의 개인적 위상 및 세평까지 호전될 수 있다면 도저히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기회로 인식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즉, 중국과의 비즈니스에선 금전적 이익뿐만 아니라 상대 중국인의 사회적 지위와 위상까지 높여 주는 거래임을 인식시킬 수 있는 거래로 비칠 수 있도록 제대로 포장하라.이윽고, 대전에서 물러 나온 제갈량과 노숙. 아름답고 풍요로운 동오 땅을 내려다보며노숙: 오후(손권)께선 마음이 기운 듯합니다.제갈량: 동맹하려면 한 분 더 설득해야지요.노숙: (알아차린 듯) 도독 대인 주유. 오후께서 형님처럼 모시고 있죠. 돌아가신 주공께서도 ‘내사엔 장소를….’제갈량: ‘외사엔 주유를 찾아라?’중국 사람들은 낯선 사람과는 거래를 잘 트지 않는 습성이 있다. 더욱이 정부 등에서 한자리 하고 있는 사람은 그러한 낯가림이 더욱 심해 어지간한 확신이 들지 않으면 아예 만나주지도 않는다. 필자 역시 몇 해 전 사업차 베이징에 출장을 갔을 때 이러한 중국인들의 ‘관시(關係)’로 대변되는 인간관계 중심의 비즈니스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적지 않게 애로를 겪은 적이 있었다.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중국인의 낯가림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이룰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 당신이 목표로 하는 상대가 가장 신뢰하고 친밀한 관계의 사람을 찾아 그를 가운데 내세워 당신 대신 상대에게 당신과 당신의 사업 내용을 알려 주게 하라. 그리하면 상대의 당신에 대한 적개심이나 비협조적 태도는 상당히 반감될 것이다.그렇다고 그 이유가 낯선 당신이나 당신의 사업에 매력과 관심을 갖게 되어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당신을 소개해 준 그 지인의 체면과 위신, 그리고 앞으로의 관계를 고려해 일단 한번 만나 주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역할은 두 사람의 처음 만남을 주선해 준 것으로 그 역할이 끝인가. 그렇지 않다. 앞으로 일을 하다 겪을 수 있는 오해나 충돌이 발생해도 역시 당신을 대신해 적절한 중재자 역할도 해 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경우에 따라 적절한 사례를 표해야 함을 잊어선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중국의 비즈니스 관계 형성 과정이니까.우리 고조선, 고구려, 그리고 발해의 역사를 축소 은폐한 것으로 익히 알려진 전통적인 중국 역사 왜곡 서술법인 ‘춘추기법’으로 집필된 정사 ‘삼국지’나 소설 ‘삼국지연의’ 모두 실제로 적벽 현지 상황이나 당시 인구 규모를 감안해 볼 때 영화에서 연출한 백만대군과 수천 척의 전함이 격돌하는 적벽대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다.그러나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 본격화되고 있는 중국 문화의 동북공정은 이제 할리우드를 통해 전 세계로 거침없이 파급돼 중국과 밀접한 역사 관계에 있는 우리로선 적지 않은 우려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의 ‘영웅’ ‘황후화’, 그리고 ‘적벽대전’을 통해 중국의 역사 왜곡 춘추기법이 이젠 스크린까지 왜곡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인적으로 주유를 좋아하는 삼국지 팬이기는 하지만 영화의 현란함에 현혹돼 자칫 그들의 동북공정을 방치하는 꼴이 되는 건 아닐까 우려된다.박상기 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위스콘신 매디슨 MBA졸전경련 국제경영원 글로벌협상 주임교수역서: 협상의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