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은 태조 왕건의 손자로 고려 6대 왕이다. 통일고려가 건국의 혼란과 시련을 극복하고 국가의 안정을 위해 제도를 정비했다. 특히 통치 이념으로 유교를 숭상하고 충효를 강조했다. 이때에 현종 문종으로 이어지는 고려시대 정치 문화 황금기의 초석이 다져졌다.성종은 혜성이 나타나자 죄수를 사면하고 스스로 책하여 행실을 닦으며 늙은이와 약한 이를 부양하고 효자와 절부를 포상했다. 대체로 국가를 다스리는 데는 반드시 근본에 힘써야 한다. 근본을 힘쓰는 데는 효도가 제일이니 효도는 삼황오제의 기본 사업으로서 만사의 강령이요 모든 선(善)의 주체다(‘고려사절요’ 권2).성종은 6도에 사신을 파견해 효자와 기특한 손자와 의부·절부 등을 조사해 정문을 세워주고 큰 상을 내렸다. 부모를 잘 봉양하는 사람을 치켜세움으로써 풍속을 아름답게 하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시골의 우매한 백성들도 꾸준히 효도를 하려는데 하물며 벼슬하는 신하들이 조상을 받드는 것을 게을리 할 수 있겠는가. 능히 집에서 효자가 된다면 반드시 국가의 충신이 될 것이다(‘고려사’ 권3).‘고려사’는 임금이 직접 참석해 치르는 경로잔치를 ‘노인사설의(老人賜設儀)’라 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의식을 모은 가례편에 싣고 있다. 이에 따르면 왕이 모든 참석자들에게 차를 하사했다.행사 당일 새벽에 의장대, 경호원, 추밀관, 시신(侍臣) 등이 지정된 자리에 정렬하고 곧 왕과 태자, 공후백작과 재신(宰臣)들이 지정된 자리에 들어온다. 우렁찬 주악이 울리고 의식을 행한 후 왕은 휴게소에서 잠깐 쉰다. 왕은 휴게소에서 쉰 후 구정(毬庭)으로 장소를 옮겨 주악 속에 음식을 대접한다. 해당 기관에서는 참석한 모두에게 차등 있게 선물을 주었다. 이튿날 수궁서(守宮署)에서 늙은 홀아비, 늙은 홀어미, 고아, 자식 없는 늙은이, 위급한 병자, 불구자들을 구정에 모아서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고려사’ 68권 禮10).참고로 노인사설의 몇 가지를 더 소개한다.목종 10년(1006년) 7월-왕이 구정에서 민간 남녀 80세 이상 및 위급한 병자와 불구자 635명을 모아 왕이 직접 술 베 비단 차 약 등을 차등 있게 하사했다.현종 12년(1201년) 2월-개성(서울)에 있는 90세 이상의 남녀 노인들에게 술 밥 차 약 베 비단 등을 차등 있게 하사했다.희종 4년(1207년) 10월-국로(國老), 일반 노인, 효자, 기특한 손자, 절개를 지킨 부인과 의사 등을 초대해 왕이 친히 술과 음식을 권했다. (이튿날인) 병자일에는 늙은 홀아비, 늙은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늙은이, 위독한 병자, 불구자들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고 또 선물을 차등 있게 주었다. 각 주·부·군·현(州·府·郡·縣)에서도 이대로 시행했다.이로 볼 때 노인사설의는 몇 가지 측면에서 매우 독특한 행사였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전국적인 의식이었다. 도성에서만 행해진 것이 아니라 지방의 주·부·군·현에서도 행해졌다는 것이 특징이다. 둘째, 차별이 없었다. 초대되는 사람은 나이 외에 다른 조건이 없었다. 오직 신분에 따른 하사 예물의 차등만이 있었을 뿐이다. 셋째, 보통 2일간 계속됐다. 첫째 날은 궁중에서 특별히 초대된 사람들을 위한 잔치였고, 둘째 날은 구정에서 신분 고하나 승속, 병자 등 누구나 관계없이 민간의 노인들과 고아들까지도 초대해 접대한 것으로 보인다. 넷째, 임금과 태자이하 고관대작 모두가 참석했고 하사품으로 술 베 비단 등과 함께 차가 빠지지 않았다. 노인사설의는 노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적인 노인 공경의 정신을 정립하는데 전통적인 차 문화가 기여할 수 있는 뜻 깊은 문화 행사를 만들면 어떨까.김동곤대한민국 녹차 명인쌍계제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