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럼스덤 글렌모렌지 위스키 제조 책임자
인과 치즈, 막걸리와 파전, 이들의 공통점은? 궁합이 맞는 술과 안주다. 그렇다면 위스키에 어울리는 안주는 무엇이 있을까. 상당수 애주가들이 과일을 떠올리겠지만 정답은 초콜릿이다. 스카치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를 비롯해 유럽에서는 향이 진한 위스키와 달콤한 초콜릿의 조합을 최고로 친다. 초콜릿과 위스키가 오죽 궁합이 잘 맞으면 위스키가 담겨진 초콜릿까지 등장할까.그렇다면 아예 위스키에 초콜릿 맛을 배합하면 어떨까. 최근 전 세계에 동시 출시된 글렌모렌지사의 시그넷은 진한 몰트위스키에 초콜릿 맥아를 배합해 최상의 맛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그넷 출시를 기념해 내한한 글렌모렌지사의 빌 럼스덤 박사는 “165년 위스키 제조의 노하우를 총집결해 만든 역작으로 전통적인 방식을 완전히 깬 제품”이라고 시그넷을 소개했다.시그넷에는 20%가량 초콜릿 몰트를 배합, 모카커피 초콜릿 훈제구이 등의 독특한 뒷맛이 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진한 오크향을 내기 위해 오크통도 맞춤으로 제작했다. 오크향이 일반 몰트위스키보다 2~3배는 높으며 색깔도 진하다.럼스덤 박사는 24년 전부터 위스키계의 이단아로 평가받는 시그넷 제조를 진두지휘했다. 글렌모렌지에서 그가 맡은 업무는 위스키 증류 등 제조 전 과정이다. 제품 개발 전체를 총괄 지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렌모렌지에서 생산되는 모든 위스키는 그의 코끝과 혀끝을 통과해야만 된다.럼스던 박사는 시그넷을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는 질문에 “전통적인 위스키 제조 방법에서 탈피하려다 보니 회사 경영진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럼스던 박사는 시그넷 출시를 앞두고 4개월 전부터 전 세계 음식 및 주류 전문가 200명에게 시음을 의뢰했는데 부정적인 평가가 단 한 건도 없었다며 지인들도 새로운 싱글 몰트위스키의 맛에 찬사 일색이었다고 소개했다.일반 위스키와 달리 시그넷에는 별도의 제조 연도 표시가 없다. 이유를 묻자 럼스던 박사는 “시그넷의 포커스는 제조 연도가 아니라 맛”이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조 연도가 오래될수록 좋은 위스키라고 생각하는데 지나치게 오래되면 향이 너무 강해 맛의 밸런스가 무너진다. 그냥 나무 주스를 마신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제조된 지 8년 이상부터 위스키 본연의 맛이 나오기 시작하며 맛이 최절정에 이르는 시기는 10~12년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시그넷은 다양한 위스키 원액을 혼합해 만들었으며 사용된 몰트위스키는 14~40년 제품들이다.럼스던 박사는 한국의 폭탄주 문화에도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한국에서 맥주와 위스키를 섞어 마신다는 소리를 듣고 스코틀랜드 현지에서 친구들과 함께 실제 마셔 봤다. 위스키 본연의 맛보다는 알코올 도수가 좀 높아진 맥주를 마신다는 느낌이었다”면서 “위스키가 재미(Fun)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고 놀랍다”고 말했다.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