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주식…LG패션

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최근 폭락장에서 주식을 사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주식을 살 때의 원칙은 단순하다. 다른 사람들이 탐욕을 부릴 때는 두려워하되,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공포에 빠져 있을 때는 탐욕을 부려라.”‘100년 만의 최대 경제 위기’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시장에 공포감이 가득하면서 전 세계 주식 가격이 하염없이 속락하자 일부 역발상 투자자(contrarian)들 사이에선 ‘지금이 오히려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는 의견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외신들을 읽다 보면 간혹 이런 소수 투자자들의 의견을 담은 기사가 발견된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월가 투자자의 말을 인용, “(최근 금융 위기가) 일생에 한 번밖에 오지 않는 투자의 기회(once-in-a-lifetime investing opportunity)를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국내에서도 이렇게 주장하는 투자 전문가를 발견할 수 있다. 남다른 투자 원칙으로 국내 투자 업계에서 일가를 이룬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최근 시장을 보는 관점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바닥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를 뿐만 아니라 바닥을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지금 주가는 충분히 싸졌고 펀더멘털 대비 가치 있는 주식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특히 경기가 최악으로 가더라도 최후까지 살아남을 만한 1등 기업, 시장 독점 기업들은 지금부터 사야 할 때다.”강 회장의 말대로 지구가 존재하는 한 적어도 시장 1등 기업, 독점력을 보유한 기업들은 최후까지 살아남을 것이고, 최근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기업의 펀더멘털 훼손과 일정 정도 무관하게 주가가 과도하게 하락한 만큼 지금이 절호의 매수 찬스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기업들의 주식을 저축하는 셈치고 꾸준히 매입한다면 언젠가 주가가 반등해, 다시 대세 상승세를 타는 시점에서는 엄청난 수익률을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패션 업종 대표주를 넘어 소비재 대표 기업으로 변신 중인 LG패션도 지금과 같은 절망기일수록 빛을 발하는 주식이다. 소비재 업종 베스트 애널리스트인 박종렬 HMC투자증권 애널리스트(연구위원)는 LG패션을 ‘난세(亂世)의 영웅’과 같은 주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LG패션은 안정성과 성장성 수익성 등 우량 주식의 3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하고 있는데다, 무엇보다 성공적인 사업 다각화를 통한 사업의 계절성 축소와 기업 가치 상승, 지속적으로 쌓여가는 순현금 등으로 주식 가치가 급속히 재평가되고 있다”며 “과거 외환위기 당시 ‘한섬의 나 홀로 성장 신화’의 바통을 이어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당시 한섬이 보여준 저력을 능가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LG패션은 실제 최근 경기 위축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실적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패션 업종만큼 경기 흐름에 민감한 업종도 드물다. 하지만 업계 1위인 LG패션은 이미 변화무쌍한 경기 흐름으로부터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갖춘 상태다. 덕분에 최근 폭락장에서 주가도 동종 업종 기업 가운데 가장 잘 버텨내고 있다.LG패션의 리레이팅(재평가)은 이 주식을 분석하는 모든 투자 전문가들에게 공통된 관심사가 됐다. 애널리스트뿐만 아니라 펀드매니저들도 “LG패션이 어떤 주식이냐”고 물으면 첫마디가 “재평가 받고 있는 주식”이라고 말한다. 과거 신세계 태평양 농심 등 내수 대표 기업들이 높은 실적 안정성을 기반으로 증시에서 한 차례씩 리레이팅 과정을 거쳤듯이 LG패션도 단순 의류 제조 업체에서 국내 패션 산업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내수 대표 기업 반열에 오르면서 급속히 리레이팅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그렇다면 LG패션은 어떤 기업이고, 주식으로서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하나하나 따져보자.LG패션은 1974년 반도상사 내 반도패션 조직으로 탄생했다. 1995년 LG패션으로 사명을 바꿨으며 2006년 11월 LG상사에서 기업 분할돼 패션 전문 기업으로 증시에 재상장했다. 전체 매출의 35%가량은 남성복에서 나오고 있다. 영국 ‘DAKS SIMPSON’의 라이선스 브랜드인 ‘닥스’와 중고가 정장 브랜드인 ‘마에스트로’, 중가 남성복 브랜드인 ‘TNGT’와 ‘타운젠트’ 등이 대표적인 브랜드들이다. 이 밖에 캐주얼 의류(헤지스 등)가 매출의 18%, 스포츠웨어(라푸마, 닥스골프 등)가 17% 등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액세서리와 여성복 등이다. 개별 브랜드별로 보면 닥스와 마에스트로, 헤지스 등 3개의 주력 브랜드가 전체 매출의 75% 이상을 차지하면서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LG패션의 강점은 이들 주력 브랜드의 높은 현금 창출력을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국내 패션 산업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것은 물론 회사 내부적으로도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LG패션의 리레이팅을 얘기하는 첫 번째 근거도 바로 이 같은 안정적인 성장 구조다.실제 LG패션은 기업 분할 이후 첫해인 2007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13.8%, 32.4%씩 증가한 데 이어 소비 경기가 본격 둔화된 2008년 들어서도 여전히 분기별로 이익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3분기에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3%, 76.0% 늘어나 동종 업종 가운데 가장 우수한 성과를 기록했다.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유정현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2006년부터 공격적으로 늘려 온 유통망 확장이 본격 매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주력 브랜드와 서브 브랜드 간의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갖춰 경기 불황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박종렬 애널리스트도 “글로벌 금융 위기와 이에 따른 실물 경기 침체가 소비 심리 악화를 초래하고 있지만 이런 부정적인 영업 환경에도 불구하고 LG패션은 향후 2012년까지 연평균 9.5%의 고성장이 예상된다”며 “이는 LG패션의 브랜드 포트폴리오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소비 경기 둔화에 따른 남성 정장의 역성장에도 불구하고 캐주얼과 아웃도어, 스포츠 브랜드 등의 고성장이 이를 충분히 만회할 전망인데다 회사 측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강화하고 있는 여성복도 이익 증가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LG패션은 또 패션 업체에 가장 중요한 경쟁 요소인 브랜드 파워와 재고 관리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는 초기 백화점 판매에서 ‘노 세일(No sale)’ 정책과 함께 60% 수준의 정상가 판매율 유지를 통해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구축함으로써 경쟁력 있는 원가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업계 최고의 상품 기획력, 뛰어난 재고 관리력도 LG패션의 기업 가치를 한 단계 높이는 요인이다.신규 사업을 통한 수익 모델의 다양화도 LG패션의 강점이다. 이 회사는 외식 사업을 시작으로 멀티 스포츠숍, 식자재 유통업 등으로 비패션 부문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일부에선 외식 사업 등이 좀처럼 수지를 보기 쉽지 않다는 점을 들어 리스크 요인으로 지적하고 있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국내 패션 시장의 한계를 감안할 때 비패션 부문으로의 사업 다각화는 장기적으로 회사의 성장 기반을 갖추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보고 있다.주식 가치로 따져 봐도 LG패션은 충분히 매력이 있다. 특히 최근 전 세계적인 유동성 위기가 촉발된 가운데 안전 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는 분명 LG패션에는 긍정적인 요소다. 이런 추세 속에서는 레버리지가 크지 않은 기업, 더 나아가 순현금을 보유한 기업의 투자 매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LG패션은 지난 상반기 말 기준으로 1225억 원의 순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또 본업인 패션에 대한 큰 투자는 일단락된 상태이며 신규 브랜드 론칭과 유통망 확대, 비패션 사업 진출은 현금 흐름에 압박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LG패션의 연간 현금 흐름은 적어도 매년 200억~300억 원의 순증이 발생돼 순현금은 지속적으로 쌓여가는 구조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고성장성과 함께 고수익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LG패션의 주식 가치를 빛나게 만드는 요소다. LG패션은 지난해 기준 영업이익률 12.4%, 자기자본이익률(ROE) 16.2%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신규 브랜드 론칭과 매장 확대에도 불구하고 매출 총이익률 개선과 효율적인 판관비 통제로 영업이익률은 2012년까지는 12~14%선을 유지할 것으로 증권사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는 동종 업종은 물론 내수 소비재 대표주인 신세계 현대백화점 농심 등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재무 안정성 비율도 수익 호전에 발맞춰 꾸준히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부채 비율은 지난해 29.6%에서 올해 23.9%, 2009년에는 20.7%로 낮아지는데 이어 2012년에는 16.2%대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유동비율은 지난해 304.3%에서 올해 366.7%로 나아지고 이후에도 점진적인 호조세를 나타내며 2012년에는 547.3%까지 높아질 전망이다.물론 리스크 요인도 있다. 무엇보다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국내 소비 경기 하강 속도가 예상보다 가파를 경우 LG패션도 어느 정도 영업 실적에 타격을 입는 게 불가피하다. 특히 패션 산업은 경기 변동성이 심한 만큼 경기 침체 속도와 폭에 따라 시장 대비 일정 부분 할인율을 적용하는 게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전문가들은 그러나 아무리 업황이 침체된다고 하더라도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보유한 기업은 경기 변동성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충분히 이겨낼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당시에도 한섬의 경우 고가 브랜드 위주의 제품 구성과 ‘노 세일’ 정책을 근간으로 한 효율적인 브랜드 관리로 우수한 고객 충성도를 이끌어 내면서 오히려 수익성이 개선된 사례가 있다. 박종렬 애널리스트는 “현 국면에서는 과거 한섬이 누렸던 영광을 LG패션이 재현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민간 소비 침체에도 흔들림 없는 영업 실적을 이어갈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시장 밸류에이션 하락에 따른 주가 조정으로 주가수익률(PER)이 역사적 최저 수준(6~7배)까지 내려온 만큼 매수가 유망하다고 추천했다.정종태 한국경제신문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