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 용어 중 용해(鎔解)라는 말이 있다. 소금이 물에 녹아 소금물이 되는 과정이 용해다. 그러나 소금을 탄다고 해서 모두 소금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정 비율을 넘어서면 아무리 넣어도 소금은 녹지 않고 물 아래로 가라앉는데 이 같은 상황을 한계용해라고 한다. 현 부동산 시장은 한계용해에 이른 모습이다. 정부발 규제 완화책이 속속 발표되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오히려 일부 지역에서는 정부발 규제 완화가 집값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늘어놓는다.현 부동산 시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에 직면에 있다. 표면적으로만 놓고 보면 1997년 전후와 판박이다. 우선 미분양 가구 수가 사상 최고점을 넘어섰다.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월별 미분양 주택 현황을 살펴보면 8월 말 현재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15만7291가구를 기록했다. 특히 준공 후에도 아직 팔리지 않은 주택이 4만94가구로 전체 24.4%에 이른다. 수도권(2만2389가구)에 비해 지방(13만4902가구) 미분양 주택 수는 6배가 넘는다. 규모별로는 85㎡(25.7평) 이상이 전체 미분양 주택 중 54.0%를 차지한다. 아무래도 총부채상환비율(DTI), 담보대출비율(LTV) 규제가 직격탄이었을 것으로 풀이된다.그나마 업계가 추산하는 실제 미분양 가구 수는 정부 공식 통계의 2배인 50만 가구 선이다. 거래 침체도 심각한 수준이다. 아파트 거래량을 나타내는 월별 토지 거래 실적 내역을 살펴보면 지난 9월 한 달 서울에서는 총 4929건의 거래가 체결돼 지난해 같은 기간(6370건)에 비해 22.6%나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다급해진 정부는 그동안의 규제 일변도에서 완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 용적률, 소형 평형 의무 비율, 조합원 양도 금지 등 재건축 관련 3대 규제와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지정을 강남 3구만 남겨 놓고 모두 폐지, 해제했다. 공공택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경우 분양권 전매가 가능해졌으며 분양가 상한제, 청약 가점제 등도 모두 폐지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헌재 판결로 종합부동산세도 유명무실해졌다. 부동산과 관련된 규제는 거의 모두 풀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하지만 정작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국부동산정보협회에 따르면 11·3 대책 발표 직후인 11월 첫째 주 서울 지역 집값은 한 주 전보다 0.25%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11·3 대책의 최대 수혜주로 평가받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들도 호가 위주의 상승에만 그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일부 지역은 분양권 값이 분양가 이하로 떨어지면서 주변 집값을 끌어내리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불황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정부가 수도권 곳곳에 신도시 건설을 약속하고 있는 것도 공급 과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그렇다면 앞으로 부동산 시장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 정부발 규제 완화책과 과잉 유동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2001년과 같은 폭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당장은 시장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쪽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공급 감소로 추후 집값이 다시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소득 감소와 실물경기 침체는 수요 위축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판단이다. 다주택에 대한 중과세, 종합부동산세, 분양권 전매 제한 허용 등 수요를 진작시킬 여러 대책이 발표됐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반응이 냉담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금리 상승과 소득수준 둔화는 주택 구매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LG경제연구원이 펴낸 ‘주택시장 불안요인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택구입능력지수(HAI)는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개선되다 2006년을 고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으며 최근 하락 폭이 커진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적으로 HAI는 실제 상황보다 약간 선행하는 경향이 있다. 앞으로의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경제성장률이 3%를 밑도는 등 경기가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면 침체 기간은 예상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경기 회복을 통해 내수 진작을 꾀하는 정부로선 피하고 싶은 최악의 시나리오다.금리 향방도 변수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종료 직후인 2000년에는 저금리 기조로 통화 유동성이 커지면서 부동산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은행 양도성예금(CD) 금리가 6%일 때 주택 보유자는 집값이 자기 소득의 8.5배까지 돼도 보유 여력이 충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가 7%대면 자기 소득의 7.7배, 8%대는 보유 여력이 자기 소득의 5.5배로 떨어진다. 이 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대폭락 후 급반등을 기록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도 집값이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데 4~5년 걸렸고, 10여 년 넘게 저성장을 기록한 일본은 아직까지도 부동산 시장이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수도권 규제 완화, 도심지 개발 등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상당수 제도들은 일본의 사례와 비슷하다”고 말했다.일본은 경기 침체로 건설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않자 대도시 주변 위성도시들부터 집값이 큰 폭으로 떨어졌으며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는 인구 유입 증가로 집값이 강보합세를 그렸다. 최근 지방 주택 시장이 악화 일로를 겪고 있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김 소장은 “통계로 볼 때 비수도권 주택들의 투자 메리트는 지난 1990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며 “고령화, 소득 양극화, 저성장 등 우리 사회 전반적인 트렌드를 놓고 볼 때 사실상 회복 불능 상태”라고 분석했다.경기가 어려울수록 투자 심리는 극대로 위축되게 마련이다. 부동산도 예외는 아니다. 투자 수익을 기대하기보다는 실수요로 접근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얘기다. 아파트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커질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114 이상영 대표는 “불황기에 소비자들은 소득 감소에 따라 주거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파트 선택 기준도 경제적 요인에 의해 결정될 공산이 크다”며 “교통 편리성이 뛰어난 곳이 하락 폭이 적고 회복 시 값이 가장 빨리 뛰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단지에 대형 건설 업체가 시공한 곳이 유리하다. 대신 일률적인 판상형보다는 건물의 개성을 살린 탑상형이 차별화 측면으로 볼 때 투자가치가 높다.고분양가 여파로 청약시장은 당분간 침체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기다릴 필요는 없다. 청약 경쟁률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당첨 확률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신이 실수요자라고 판단되면 유망 지역으로 중심으로 적극적인 청약이 필요하다. 미분양 주택을 구입하는 것도 좋다. 할인 분양 등 각 건설사들이 내놓는 판매 전략도 유심히 살펴보자. 이때 분양가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입지다.재건축 시장은 정부 완화책 발표 이후 다소 회복될 기미를 보이겠지만 대세 상승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재개발 역시 마찬가지다. 분양권 가격, 재개발 지분 가격 등은 가격 부침이 심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외환위기 때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약세장에서는 가격 하락세가 일반 매물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강남권은 하락 폭은 컸던 대신 반등 시 상승 폭도 상당하다. 이에 비해 강북은 일부 소형 평형과 재개발 지분을 제외하고는 가격 변동이 크지 않다. 따라서 당장의 가격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수도권은 경기 침체보다 공급 과잉된 경향이 커 당분간 약세장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송창섭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