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을 뛰어넘는 공포가 닥칠 땐 이성적 사고가 쉽지 않다. 공포가 지닌 점염성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다면 반드시 답은 있게 마련이다. 1997년 외환위기가 국내 고도성장에 따른 버블을 해소하는 과정이었다면 미국발 금융 위기가 가져 온 이번의 구조조정은 중국의 고성장과 전 세계적인 부동산 등 자산 버블을 해소하는 과정으로 판단된다. 버블 해소라는 측면에서 보면, 단순히 국내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위기여서 그 심각성이 과거보다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지나친 팽창은 공급 과잉을 만들게 마련이고, 이것은 구조조정이라는 과정을 통해 균형점에 도달하곤 한다.구조조정은 불필요한 공급을 줄이는 과정이다. 다른 말로 살아남는 자와 사라지는 자를 구분하는 시기라는 얘기다. 그 강도가 크면 클수록 양극화는 심해진다. 그리고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 필연적으로 생존자 효과(Survivor’s Effect)가 나타나며, 역시 구조조정 과정이 클수록 생존자 효과는 더 클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사이클은 단순히 국내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생존자 효과 역시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좀 더 크게 누릴 수 있다.글로벌 경기 침체로 세계 1위를 차지하던 제너럴모터스(GM)를 포함해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파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또 자동차 업체들 간의 합병과 일부 공장의 폐쇄 등 군살빼기도 진행되고 있다. 한때 일본을 추월하고 한국과 경쟁할 것 같던 중국의 조선·해운 업체 역시 전반적인 위기에 직면, 구조조정을 맞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끝없는 호황을 누릴 것처럼 보이던 한국의 조선 업체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많은 해외 반도체 회사들도 파산 위기에 놓여 있다.또 미국 금융회사 등 글로벌 플레이어들 역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건설회사 증권회사 조선회사 등 공급 증가가 컸던 산업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된다.국내 주식시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를 앞두고 주가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럴 때 바로 주목해야 할 종목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1등 기업들이다. 위기가 지난 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폭으로 반등한 종목들이 국제 경쟁력을 갖춘 1등 기업이라는 사실은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터득한 바 있다. 경기 침체는 구조조정을 가져오고 그 이후 경기 회복 시에는 이 기업들의 수혜가 한층 커지는 구조 때문이다. 또 최근 경쟁국인 일본 엔화나 중국의 위안화 대비 원화 가치가 크게 하락해 한국 대표 수출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투자자로서는 주가가 하락한 1등주에 투자를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이런 면에서 주목 받는 이는 외환위기 때 단돈 5000만 원을 들고 대박을 터뜨려 한국을 대표하는 가치 투자자로 거듭난 강방천 에셋플러스 회장이다. 모든 자산운용사가 몸을 사리는 최근의 급락장에서 그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위기에서 살아남는 1등 기업에 투자한다’는 그의 투자 철학 때문이다. “어떤 종목을 사야 하느냐”는 투자자들의 질문에 강 회장은 주저 없이 “위기 속에서 살아남아 시장점유율을 오히려 확대할 수 있는 여력을 지닌 1등(가능) 종목에 투자하라”고 답하고 있다. “1등 주식은 당장 주가가 시장에서 오르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상승하게 되어 있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의 경기 순환 원리에 있다. 경기는 좋아지기도, 나빠지기도 한다. 1등 회사의 주식을 사야 하는 이유는 불경기가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좋아지면 3등 4등 5등 회사도 좋아지지만, 불경기가 되면 5등 회사부터 차례로 문을 닫는다. 극심한 불황이 되면 3등, 2등 회사도 문을 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1등 회사는 경쟁 회사가 문을 닫을 때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 외환위기 때를 돌아보라. 1등 기업은 하나같이 살아남아 몇 배씩 주가가 올랐다. 1등 기업은 항상 장기적인 승자로 남는다.”지금 주식시장은 경제 위기의 부담 속에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독점력이 강한 기업들에 대한 차분한 공부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과거 우리 시장에서 실제 사례를 보자. 아래 표는 한국의 대표 기업들과 부동산(아파트), 그리고 금값의 수익률이다. 이전 위기였던 1997년 1월 초에 모든 자산을 매입했다는 가정 하에 계산해 보면 표와 같이 주식 투자의 수익률이 단연 높게 나타난다. 주식은 상대적으로 가격 탄력성이 커서 위기 시에는 상대적으로 더 하락하고 호경기에는 가치 이상으로 오르는 특성이 있다. 1997년 1월 3일 삼성전자의 주가는 3만9100원이었다. 현재 주가는 52만8000원으로 절대 주가 상승률은 1250%에 달하며 배당 등을 감안하면 총수익률은 1815%에 달한다.위기 시에는 상대적으로 주가의 변동 폭이 큰 것이 사실이지만 글로벌 1등주에 대한 투자는 장기적으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대해볼 수 있는 기회다. 현재 전 세계 금융시장과 주식시장은 패닉 상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장기 투자자 입장에서는 좋은 우량주를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한편 세계의 부자이면서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워런 버핏 역시 독점적 경쟁력을 가진 기업을 선호했다. 현명한 투자자는 경제가 어려워 주식 시장이 폭락하고 기업의 주가가 하락할 때, 주가가 아니라 기업이 갖고 있는 독점력의 정도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량한 기업은 경제가 어려워 경쟁 기업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오히려 시장 지배력을 높여 독점의 과실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이는 기업의 이익 증가로 나타나며 주가는 기업의 이익을 반영하게 마련이므로 펀더멘털이 양호한 기업의 주가는 위기 이후 곧 회복되는 것이 일반적이다.실례로 과거 주가 폭락 후 반등한 농심과 신세계의 사례를 살펴보자. 농심은 국내 제 1위의 라면 제조 회사다. 주력 제품인 ‘신라면’은 1986년에 출시된 장수 브랜드이며 라면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이기도 하다. 신세계는 대형 마트에 강점을 가진 업계 1위의 유통 전문 회사다.외환위기 전후로 농심과 신세계의 주가를 살펴보면 외환위기가 발생한 시기(1997년 12월) 농심의 주가는 2만8400원으로 그해 3월 대비 48.8% 하락했으나 이후 반등, 10년이 지난 후에는 이전 가격 대비 6.8배 상승한 19만4500원을 기록했다. 신세계의 상승 폭은 더욱 놀라운데, 외환위기 저점 대비 10년 후 주가는 무려 67.7배나 오른 69만2000원이었다.농심과 신세계의 주가가 급등할 수 있었던 비결은 외환위기를 기회로 우량한 펀더멘털을 더욱 강화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으로 업계 전체가 암울하던 시기에 농심은 오히려 영업활동을 강화해 라면 시장 내 입지를 굳혔다. 신세계는 부동산 가격이 폭락한 시기를 활용해 영업 부지를 낮은 가격에 매입했다. 이것이 이마트 개점을 늘릴 수 있는 계기가 돼 훗날 외형 성장을 견인하게 된다.향후 1~2년간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공급 과잉의 해소 과정이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글로벌 1등 기업들의 장기적인 독점력 강화와 이익 증가, 그리고 주가 상승이 진행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현재의 시점이 글로벌 1등 기업들의 주식을 저점 매수하기 좋은 시점으로 판단된다. 또 불황을 이겨낼 독점력이 강한 내수 1등 기업들 역시 주가 하락이 기회일 것이다.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